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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의 힙합론 17] 예술인들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실존적 독설(毒舌) (3) -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위선이다! 1)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위선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내세우는 처세의 위선이다.
사회라는, 서로 인간의 관계를 필요로 하는 삶이라는 테두리에 얽힌 것이 진실을 숨기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진실을 말하는 순간 그는 사회에서 적이 된다.
소크라테스도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진정으로 정의를 위해 싸우고자 하는 사람은, 만일 그가 잠시나마 목숨을 보전하고자 한다면, 공인(公人)이 아닌 개인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선량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하고, 정의수호를 가장 중요한 일로 삼는다면, 제가 오늘날까지 살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렇듯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얘기한 것은 이러하다.
공직은 우리 현실의 사회의 인간관계를 얘기하는 것이다.
겸손하다는 것은 정의가 없다는 것이다. 겸손은 순종이다.
지배자에 대한 철저한 순종
그러한 순종 없이 자신의 사실과 의견을 떳떳이 얘기한다는 것은 거만한 모습으로 비출 것이다.
솔직하고 정직한 행동은 이익 관계의 인간관계에서는 덕(德)이 아니라 악덕(惡德)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행동 속에 인간의 관계는 허물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은 인간의 이익을 위한 관계 형성이 크나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그러한 행동을 범하였다 하더라도 진정 필요한 사람이라면, 당연 다시 찾게 마련이다.
거만하지 않고 예의 있게 말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독창적이며 창조적인 의견은 예의 속에서 그 주장을 완벽에게 피력하기 힘들 것이다.
‘밀어붙임’이란 때론 건방진 모습으로 비추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것이 없다면 자신은 겸손한 척, 중용을 지키며 평범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평범함이란 일반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복일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들에게는 평범함이란 가장 큰 저주일 것이다.
많은 현자들이 얘기한다. 예술가들은 비도덕적이라고…….
자신의 것을 위해 비도덕적인 예술가는 예술 속에서 선인일 것이며 만인 속의 개인일 것이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나, 예술계 속에서나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점을 솔직하게 윗사람에게 얘기한다면 그는 버릇없다거나 건방지다고 질책을 받을 것이다.
특히 예술계에서는 실력과 재능을 갖춘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얘기하거나 윗사람의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면 당연 버릇없다거나 겸손하지 못하다고 평가받는다.
당연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면 그냥 무시하거나 심한 욕을 퍼부을 것이다.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하지만 실력과 재능을 갖춘 아랫사람을 무조건 적으로 막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이익을 위해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조심스럽게 대하겠지만, 아랫사람의 충고에는 강한 분노를 느낄 것이다.
또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칭찬을 할 경우, 그 아랫사람은 대부분 “아닙니다, 아직 저는 모자랍니다.” 등으로 낮추어 얘기할 것이다. 그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면서 말이다.
“저는 잘합니다. 그렇기에 더욱더 잘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는 당돌하고 건방진 사람이라고 질책을 받을 것이다. 아님 속으로 욕하고 나중에 보자고 생각하던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인 표현이 이렇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윗사람에게 솔직한 의견을 숨기고 가식적이며 틀에 박힌 얘기로 문답 한다면 그는 확실치도 않은 이익에 목말라하는 사회적인 위선이며, 치졸하고 자신을 비굴하게 낮추는 격이 된다.
이런 것이 성공으로 빨리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자신 있게 말하라! “칭잔 해줘서 감사합니다. 저는 잘하기 위해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이러한 얘기는 최소한 자신의 피땀 흘려 노력해온 자존심을 지키며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구질구질한 이익을 위해 억지스런 예의로 자신을 낮추는 것은 자신의 노력을 판 비굴이며 굴욕이다.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의롭게 말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라.
소크라테스 역시 사회적 겸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위선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는 것은 재치 있는 ‘말빨’로 사람의 이성을 흐려놓고 순종하게 만든다.
그는 대단히 개인적인 ‘예술가적 주장’과 ‘논리적인 말빨’을 가지고 있다.
그는 플라톤의 『크리톤』에서 크리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본래 어는 누구의 말에도 따르지 않고 언제나 내 이성이 옳다고 판단하는 것만을 따르는 것이 나의 방식일세. 그러니 내가 지금 이런 처지(사형수)에 놓여 있다고 해서 나의 원칙을 어길 수야 없지 않은가. 내게는 나의 원칙이 역시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될 뿐 아니라 나는 그 원칙을 전과 다름없이 존중하고 있으니 말일세.”
이렇듯 소크라테스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위, 아랫사람 구분 없이 자신이 믿는 주장을 적극 피력한다는 자체가 거만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일반인이나 예술가라는 입장에서도 말이다.
(이것은 여담인데 소크라테스는 너무 유명해서 신격화 되어 그에 대한 비판은 무감각해 졌다. 몇몇의 철학자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무작정적으로 믿는 것이다. 읽어보지도 않고 비판적 고찰도 없이 그가 너무 지혜롭고 유명하다는 그 이유만으로…….)
자신의 이런 독특하고 창조적인 의견을 숨기고 윗사람의 의견만을 순종하여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면 그는 공인으로서 겸손한 사람이 될 것이다. 개인으로선 위선으로 가득 찬 겸손으로 말이다.
현 시대에는 너무 정직하면 불손한 것이 될 이며, 불손하면 정직한 것이 되는 것이다.
단체가 아니면 개인이 되어 강하게 대응하면 되는 것이다.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 현명해 지라는 것이다.
개인이 다수보다 뛰어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한 ‘초인’이다.
지혜로운 무례함은 매혹적이며, 현명한 거만함은 매력적이다.




글_이우재 up_rock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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