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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의 힙합론 16] 예술인들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실존적 독설(毒舌) (2) - 도전하라!

 

예술인들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실존적 독설 그 첫 번째, 도전하라!

세상 모든 것의 가치를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도전이 필요하다!
새로움에 대한 욕망에 목말라 그 목마름을 채워줄 무모한 도전까지도 말이다.
두려움 없이 도전하여 이루어내야 한다.
도전은 강하고 날카로운 사상의 대못을 현실에 박듯이 강하고 날카롭게 행동해야 한다.
절대적 타인과의 타협으로는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키기 힘들 것이다.
타협하는 순간 그것은 보편화되기 때문이다.
모든 변화 가운데는 도전하는 자만이 승리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대가 강렬하게 원하는 목표가 있다면 희망을 갖고 그것에 집중하라. 그리고 그것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수집하여 강인하고, 날카롭고, 유연한 정신의 대못을 만들어라.
그러한 대못을 박을 때에는 강한 망치와 같이 강한 본능, 지성에 의한 판단력, 그리고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
이런 망치와 같은 행동으로 자신의 것을 밀어 붙여라 그리고 현실에 강하게 못을 박아 버려라.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라. 타인의 시선은 엿장수에게나 내주어라.

전 시대의 위대한 영웅보다 더욱더 위대해 지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강한 용기와 힘이 필요한 것이다. 전 시대의 위대한 영웅보다 더욱더 위대해지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영웅이 되는 것이다.
그대의 목표가 옳은 것이라면 어느 누가 막든 강하게 대응하여라.
그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쟁취하라.
경쟁자나 타인이 그대에게 포기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대의 포기로 인해 그들의 목적을 쟁취하기 위한 위선된 위안의 언어다.
이것은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그대의 강한 목표에 어는 누구든 장애물이 되어 그대를 상습적으로 괴롭힌다면, 언쟁은 물론 다툼도 서슴지 마라.
극단에 이를 경우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장애물을 없애고 그것을 쟁취하라.
현실적인 정치는 폭력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극단의 방법을 동원하여 성공하면 선(善)인이 되는 것이고, 실패하면 악(惡)인이 되는 것이다.
크나큰 성공의 비밀은 극단에 서있는 것을 지혜롭게 극단으로 이루는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역사는 폭력과 살인으로 이루어져 지금의 현재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 ‘이데올로기적 목표’라는 ‘올바른 이득’을 쟁취하기 위해서 말이다.
분명 십계명 6번째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나와 있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한 계명을 실천하라고 강력하게 내세우는 종교마저도 그들의 종교를 수호하기 위해 살인을 불사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기나긴 역사를 이어오면서 정당성이 부여 받았다.
그러한 종교는 그러한 투쟁 속에서 살아남아 성공하여, 결국에는 선한 종교로서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도덕적인 믿음으로 존재하고 있다.

본인은 이러한 가치에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긍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계명을 무조건적으로 지켰을 경우 파멸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전통적 종교의 계명을 현실성에 맞추어 어김으로써 전통적 종교의 가치관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모순적인 얘기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고귀한 가치의 존재를 입증하고, 더욱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옳은 선택이며, 옳은 판단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그러한 종교가 승리하여 살아남았기 때문에 선한 것이 된 것이다.
그러한 계명을 죽기 전까지 지켰더라면 그러한 종교는 다른 사상의 만인에게서나 다른 종교에게 지배당하여 사라졌을 것이거나 다른 종교가 이러한 종교를 악한 종교로 역사 속으로 몰아 세웠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도덕적 가치의 교본이 되는 종교도 이러한데 현실의 목표와 새로운 가치의 탄생으로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 있으면 적절한 폭력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폭력의 종류는 많겠지만 말이다. 그중에 가장 무서운 폭력은 친절이다.
물론 목표추구나 이유 없이 감정의 분노로써의 폭력이 아니라, 목표 추구를 위한 인내와 인내에서 오는 현명한 극단의 방법으로써 말이다.
중요한 것은 폭력이든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으로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폭력도 무기력 할 것이다.
그런 자에게는 죽음만이 깨달음일 것이다.
이 말을 잘못 알아듣는 사람은 본인이 폭력을 찬양할 것이라고 말하며 폭력을 무조건적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말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오인된 것이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리라.
마치 ‘마키아벨리즘’이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졸하고 사악하고 무자비한 어떠한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어내기만 하면 되는 사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에 대해 확실히 읽어보지도 않고 누구나 다 그렇게 얘기하니까 대강 그런 줄 알며 따라가는 회의적 이지 못하고, 관찰 적이지 못하며 창조적이지 못한 사람이다.
당연 살인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키아벨리의 그 시대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그가 완전한 정치(니체도 정체에서 완벽한 유형은 마키아벨리즘이라고 얘기하였다.)를 위해서는 자신의 적을 완전히 살해해야 한다는 것은 타당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적의 자식이나 친척을 살려둘 경우 그들이 성장하여 권력을 위해서 그들의 혈육을 살인한 군주에게 살인하기 위해 복수를 해오기 때문이다.

살인이라는 부분은 현시대에 과격하고 공포스러운 일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을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본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성공이 아닌, 너무나 현실적이고 실존적인 방식의 처세법일 것이다.
다시는 적이 소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원래의 적을 완전히 죽여야 되기 때문이다.
적을 친구로 만드는 사람이 가장 강한 적이라고 어느 현자가 얘기하였는데 그것은 현실적 이지 못한 얘기이다.
친구가 될 수 있는 적은 목숨 건 적이 아니라 사소하고 허약한 적이다.
그러나 결국 적을 친구로 만든 다는 것은 완벽하고 강한 복수를 위한 위장에 불가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현실의 사회 속에서 강자가 되고 싶어 하며 지배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것을 이룩하기 위해서 도전하고 쟁취하는 것이다.
만약 보살핌을 받고 복종을 원한다면 그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근성이 강한 것이다.
누구나 사회 현실 속에서 자신의 것을 찾아 나서다 참(忍)으라는 말을 듣게 된다.
참는다는 것 그것은 약한 자만이 강자 앞에서 무조건적으로 참는 것이다.
이러한 참음은 위선적 참음이다.
진정한 참음은 강자가 약자에게 참는 것이 진정한 참음이다.
약자가 강자한테 참는 것은 합리적으로 도덕을 가장한 비굴과 굴욕이다.

이런 것들을 오인하지 않고 현명하게 현실적으로 재인식하여 해석하고 행동한다면 강인하고 유연한 정신과 육체가 조화된 삶으로 인도될 것이다.
본인의 폭력성 주장을 단순한 해석 탓에 오인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도 『공산당선언』에서 그들의 목표와 희망을 위해서라면 어떤 장애물에 부딪쳐 투쟁할 경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폭력도 불사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런 것들의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해석은 읽는 분의 유연한 지성에 맡길 것이다.
말싸움의 대가인 ‘소크라테스’도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자신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들이 꼭 내가 말한 대로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걸세.”
목적을 위한 강한 본능과 지성이 없는 무지한 자는 판단의 기준이 흐릿하므로 군중심리에 쉽게 휩싸일 것이다.
예술인이든 비(非)예술인이든 자신의 목표와 희망을 위해 달려가는 강한 본능과 지성이 있다면 모든 것을 내걸고, 도전하고 투쟁하여 꼭 이루어야 한다.
이것으로 인해 삶은 꽃피고 삶의 가치와 존재는 더욱더 확실히 현실 속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욕은 버리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들의 양심과 책임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표와 희망을 위해 어떠한 것을 불사 하더라도 도전하고 도전하여 쟁취한 것이 우리 모두의 사회에 긍정적으로 이바지할 경우 그것은 과거에 어떠한 사건을 지나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가 이룩해낸 업적만이 중요한 것이다.

많은 적이 있을 수는 있으나 개인적인 원수는 단 한명도 없으리라. -엥겔스-




글_이우재 up_rock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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