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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의 힙합론 12] 힙합 예술인에 대한 넋두리 (3)

 

예술은 표현입니다! 그 무엇 이던 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의 경험이나 마음, 정신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 변환하여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과 사상에 대한 미의 표현, 내적을 외적으로 표현 하는 창조적 육체의 표현입니다.
예술가가 표현한 예술적 표현을 사람들은 오감을 통하여 표현하는 이로부터 받아드려 느끼는 것입니다.
예술가가 표현할 때 확실성을 전하기 위해서는 진실 되어야만 합니다.
즉, 예술가는 솔직하여야 하며 표현에 있어서도 솔직하여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예술가들은 자신의 표현에 대해 솔직했으며 작품에서도 그 성격이 다분히 드러나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거짓은 악을 낳으며, 진실은 선을 낳습니다.
대체로 관습적으로 내려온 도덕적 교리에서 말하는 진리입니다.
사람들은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악한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행동은 악한 것이 편하며, 선한 행동은 노력을 요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받기를 원하지, 주기는 꺼려합니다.
선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삶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이며 공동체 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하나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가는 선과 악을 너무 지켜서도 안 되며, 어느 한 쪽만을 지지해서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간순간을 솔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꺼려한다는 것은 숨은 욕망 속에 부적당한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술가는 대화나 자신의 내부에 대한 사상을 얘기할 때에도 진실의 위치를 잊어서도 아니 됩니다.
이러한 솔직한 대화는, 예술가와 비 예술가의 대화에서 예술가를 광인으로 보는 이도 많거니와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허다할 것입니다.
비예술인하고의 대화는 솔직하되 가릴 줄 아는 것이 상책인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예술세계라던가 작품관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으로 많은 오해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가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자신의 내부에 대한 사상을 솔직하게 피력하십시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 만족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는 말보다는 작품이라고도 하지만, 리뷰가 왜 존재하고 자신의 프로필이 왜 존재하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작품을 보지 않았어도 자기를 알리는 목적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대화에서 확연히 드러나게 해야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과장된 발언은 무릇 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대화에 대해 얘기하는 이유는 바로 예술과 작품에서만큼은 계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관습으로 인한 나이와 성별, 경력 등에 의해 그들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은 겉치장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위선적인 모습이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계급적 울타리로 인하여 작품이나 대화 속에서 발전할 수 있는 솔직한 부분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든다면 너 몇 살인데 그런 건방진 소릴 하니, 너 얼마나 했는데 아는 척하니, 남자 주제에 여자주제에 뭘 하려 하니, 등으로 기를 죽이고 그들의 개성을 막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예술은 아니지만 축구를 예를 든다면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고치라고 제시한 점이 바로 한국의 엄격한 선후배 관계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계급성으로 팀이 원할 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젊은 후배들의 개성과 실력이 묻히게 되고 기죽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그러한 계급성을 없앤 점 하나 때문에 한국이 좋은 성과를 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계기로 인하여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예술계에도 계급적 편견을 조금이나마 완화하고 서로의 존중으로서의 가치로 인식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면 손아랫사람의 작품의 대한 의도나 개성 등을 좀더 열린 개념에서 얘기 할 수 있으므로 아이디어의 폭도 더 넓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윗사람은 손아랫사람을 건방지게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무조건 적인 시선은 사회적 관습과 계급적 교육에서 오는 오류라고 생각 됩니다.
예술은 열린 개념이고 열린 사고로 사물에 접근하는 것인데, 이것을 어떠한 이유로 닫히게 한다면 영원히 진부한 예술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떠나서 좀더 열린 개념을 맞아들인다면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신선하고 새로운 감각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폭넓고 깊은 감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얘기를 좀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자신감입니다.
윗사람에게 너무 고개를 숙이는 것은 겸손이라기보다는 바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지나친 겸손은 자신의 모습을 천박하게 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확실한 예술적 의지를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는 용기는 때론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게 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해일 뿐입니다.
자신의 소신을 믿고 자신의 예술관을 누구의 조소 어린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밀어 붙일 수 있고 그것을 이뤄 낸다면 그것은 오해 속에서도 자신을 빛나 보이게 할 것입니다.
지나친 자신감은 자신을 거만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예술에서는 약간의 거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만은 때로는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게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과 거만은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사용돼야지 잘난 척으로 오용돼서는 안 될 것이며, 자신감과 잘난 척은 냉철히 구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만인에게 바보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극도의 겸손으로 남들의 눈치를 너무 살피다 보면 그들에 맞춰서 표현하게 되고 결국은 개성 없는 예술로서 찬양적인 진부한 예술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감과 거만의 중용에서 오는 용기는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을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함께 동반한다면 세상에 홀로 서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본인의 의도를 꼭 이루어 낼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과 사상을 깊숙이 고찰하여 자신에 대한 확실한 신념이 있을 때 비로소 자아의 내면에 진실 된 예술적 영혼을 살찌우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자신 있으면 거만할 것이며, 너무 겸손하면 바보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중립에 선다면 예술가로서 자신의 독창적인 길을 걷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을 믿고 소신과 용기를 가지고 힘들고 고단하지만, 그 끝은 신비하고 맑은 화창한 진실한 예술가의 길을 걸으십시오.

마지막으로 ‘니체’의 잠언으로 말을 마치겠습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믿어라. 자기 자신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자신을 믿으라!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자는 거짓말을 하게 마련이다(깨끗한 인식에 대하여 중).”




글_이우재 up_rock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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