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들 예술가들은 가난하다고들 합니다.
물론 부자인 예술가들도 있겠지만,
부자인 예술가보다는 부자가 아닌 예술가들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돈이 많기를 원하고 돈이 많으면 행복해 지는 줄 알고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하고 명예든 명성이든 원하는 것,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돈이란 것에 무조건 적으로 반대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원하는 것 중, 사물은 돈으로 살 수는 있겠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흔히들 아는 얘기이지만 돈으로 산 친구는 돈으로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돈에 대한 욕구입니다.
그중에서도 춤추는 예술가 분들인 힙합 댄서나 무용수를 일컬어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춤 예술가들은 돈 벌기가 가장 힘든 예술 중에 하나라고 생각 됩니다.
화가는 그림을 남기고, 조각가는 조각을 남기며, 문학가는 글을 남기고, 음악가는 음악을 남기니까 말입니다.
물론 그 외에 많은 예술이 있겠지만 가장 대중적인 예술을 예를 들어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러한 예술들은 예술가의 사후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
후손들에게나마 물질적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연극은 왜 빼놓았냐고 말하겠지만 연극배우 분들도 가난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연극배우 분들은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대중에게 많은 인기를 얻을 수도 있으며, 순수 연극이라 할지라도 배우로서의 생명은 나이가 먹어서도 충분히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무대에서 공연하는 배우로서의 능력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나이가 먹을수록 그 노련미가 더해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춤 예술가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신체의 사용은 줄어가고 점차 춤추는 동작도 쇠퇴해져 가기 때문입니다.
안무가나 교수, 연출가가 되면 되겠지 라고 하겠지만, 모든 춤 예술가들은 언제까지라도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모두의 마음이라 생각됩니다.
연극배우는 나이가 들어서도 더욱더 성숙해진 연기력으로 무대에서 빛을 바랠 수 있고 그 만큼의 보상의 물질적 이득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타 예술은 물질적 작품을 영원히 남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춤 예술은 비디오에 담는다 해도 그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순간이며 영원성을 남기기는 쉽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고전발레나 현대발레에서는 작품의 물질적 영향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외국무용은 그렇게 크게 작품이 물질적으로 성공하기가 힘들며 성공한다 해도 큰 이득은 보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물론 ‘이사도라 던컨’이 애인이었던 러시아 시인인 ‘예세닌’과 말다툼을 하면서 예세닌은 자신의 작품인 시(詩)를 남긴다고 하니, 이사도라는 자신의 영혼을 남긴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물론 형이상학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무척 까다로운 궤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사도라의 영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녀의 춤은 후세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자서전을 쓰지 않았다면, 후세에 그렇게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얘기하자면, 만약 춤 예술가의 사후에 춤 작품이 남아 있다 해도 타 예술의 작품보다 물질적인 이득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춤 예술가는 그런 짧은 시간에 작품에 투자하는 돈 외에 삶의 훈훈함을 느끼고 살 돈을 벌기는 힘들 것입니다.
집안이 원초부터 부자였거나, 부정을 저지르지 않으면 말입니다.
부정을 저지르면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만의 은폐로 알겠지만, 주의 사람들은 모두들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그 사람에게 얘기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돈이란 약삭빠르고, 치졸하고, 욕망의 허영심을 부추기고, 인간의 관계를 무너트리는 아주 고약한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옛 역사의 패륜행위나 배신, 살인 등은 모두 돈이라는 물질적 부의 욕망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돈을 잃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춤 예술가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가들에게 돈의 필요성을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부자가 되려고 돈을 벌기보다는 가난하지 않으려고 돈을 버십시오”라고 말입니다.
또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돈에 대해 말하기를 “돈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좋지 못하지만, 너무 가난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술가는 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사라질수록 작품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더욱더 깊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부자가 꿈인 사람은 예술을 하지 말고 사업을 하는 것이 훨씬 빠르실 겁니다.
어느 예술가는 당신이 결혼을 해봐야 돈이 소중한지를 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결혼을 하여 큰돈을 버는 것에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큰돈을 벌고 주의 사람과 나눠가질 돈이 있는데도 자신의 부를 축척하기 위해 그들에게 적게 지급하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는 그런 부정을 저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원래 약속했던 원칙에 맞는 돈만을 소유하고 거기에 만족해야 합니다.
그 이상을 원하게 되면 과욕을 부르게 되고 부정을 저지르게 돼, 결국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고 돈만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같은 사업가가 될 것입니다.
그런 부를 갖기 위해 많은 생각을 투자하려면, 그런 시간에 작품에 대한 생각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십시오.
부정으로 모인 돈은 많을수록 모자라고, 모일수록 인색해지며, 부자가 될수록 자신의 걱정만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에 의한 부를 쌓았기 때문입니다.
이사도라 던컨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돈은 불행을 안고 있다.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24시간 내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부는 돈을 좇아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열정에 헌신하다 보면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돈이며 이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자라고 인정받는 그 유명한 ‘빌 게이츠’도 돈을 벌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열정적으로 일한 것인데 자기도 모르게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돈이 많은데도 평온해 보이며 검소하게 사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많은 돈을 불우한 사람을 돕고,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한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들은 살기에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돈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돈 보다도 삶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돈이 어디까지가 필요하고 어디까지가 만족인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지겠지요.
그것을 결정짓는 것은 자신의 ‘양심’입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내면의 의식을 외면으로 전달하는 사람이기에 감정이 특히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양심의 진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의 작품 또한 양심적이지 못한 작품일 것입니다.
돈이 곧 예술이라고 얘기한 팝아트 예술가인 ‘앤디 워홀’도 자신의 기록지인 자서전에서도 양심적인 작품과 비양심적인 작품은 자신이 스스로 분류해 비양심적인 작품을 쓰레기라고 자신의 작품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돈을 과시하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과시하려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가치로 인정받고 만족하며 이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일 겁니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이란 책에서 예술가들에게 짧은 잠언을 남겼습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예술가랄 수 있는 예술가다. 요구하는 것이 소박한 예술가 말이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단 두 가지. 먹을 것과 예술이다.”
니체도 말했듯이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이며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예술가 대부분은 배고프고 돈을 쉽사리 벌지는 못할지라도 그들은 가난을 꿈으로 채우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진실 된 거울을 비춰 어떠한 고통이라도 작품의 창작에 스며들어 그들의 아픔을 치유합니다.
진실 되고 진실 된, 자신의 아이와 같은 작품에 모든 것을 담은 채, 예술과 희망이라는 확실한 이상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 되고 진정한 예술가를 갈망하는 저와 우리 모두와 부자 예술가, 가난한 예술가 모두들

글_이우재 up_rock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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