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힙합을 추는 여러분들은 이 시대의 새로운 예술인입니다.
예술을 하면서 나는 아직 예술을 모르겠다는 겸손은 백치, 바보일 것입니다.
예술을 하면서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니 그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예술은 이해하기보다 느끼는 것이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일 겁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논리만 가지고는 깊게 다가서기 부적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이 무엇인지, 자신이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최소한 자신이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런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보라고 남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예술가는 예술을 이해해야 하며 느껴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그것을 육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과 느낌 없이 춤을 춘다면 그 사람은 기술자일 것입니다.
예술은 객관이 아니라 주관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해와 느낌이 있어 그것을 진실로 표현 한다면 그것이 예술이며 예술가인 것입니다.
어는 누구도 예술에 대해 객관성의 답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주장만이 있을 뿐입니다.
예술에는 진짜와 거짓도 없으며, 선도 없고 악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이 안에 존재하며 모든 것이 이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예술을 하는 여러분이 예술가로서 ‘난 아직 예술을 몰라요’라고 겸손을 떤다면, 자신이 천한 바보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술을 하는 본인이 예술의 주인이며, 주인 자신은 ‘자신의 이름조차 잘 몰라요’라는 것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좀 더 깊게 성찰하고 많은 것을 얻어야 합니다.
‘괴테’가 말한 것처럼 “아는 만큼 본다”라는 말은 무지를 짧은 잠언으로 꼬집는 강력한 충고입니다.
언젠가는 알 것이며, 언젠가는 이룰 것이며,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노력 없는 안주 또한 합당치 않은 기대의식에서 나오는 현실 회피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능력은 현재에 가장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재산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현실이 최고의 경지이지 나중에 더욱더 잘 할 수 있다는 안일한 자기 위로의 생각은 미래에도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없으며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비관적인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굳이 유추하자면 이러 합니다.
미래에 잘 출거라고 현재를 소홀히 한다면 그는 미래에 빠져 항상 현재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연습은 항상 현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춤을 추는 순간은 항상 현재 속에 존재는 하는 순간에만 이뤄지지 미래는 절대 현재에 다가오지 않습니다.
만약 길을 가거나 도로에서 사고가 나거나 몸이 다쳐서 춤을 추지 못한 다면 그는 미래에 대한 기대치는 분노와 좌절로 변하여 그대의 현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현재 춤 출 수 있는 기회에 모든 것을 미련 없이 퍼부으며, 자신이 추는 현재의 춤이 최고라고 자신감 있는 생각을 가지고 춤을 추십시오.
모든 것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구상한다면 당연 그는 현재에 충실 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지혜로운 예술가일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참된 열매를 갖기 마련입니다.
최선은 미련을 남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면 최선을 다해 성공을 하였기에 성공이라는 만인의 인정으로 인한 현재의 보상이 여러분을 만족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실패하였다면 그는 자신이 모자란 면을 알고 현재를 위해 더욱더 자신의 부족한 면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서도 실패로 인해 좌절하거나,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능력을 깊게 드려다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항상 나중이라는 위선된 위안으로만 자신을 더욱더 추하게 만들 뿐입니다.
최선은 최소한 비극적이라도 최소한의 만족을 얻게 됩니다.
그대들의 춤에 아직까지도 아무런 가치도 느끼지 못한 다면 그는 스스로의 일에 많은 생각을 가지고 춤을 줘야 합니다.
그는 춤을 천직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며, 취미로 그저 한낱 지나가는 여흥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여흥 자체도 좋지만 여흥 안에 진실 된 의지가 있다면 그 자체로 그는 예술가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놀이에서도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는 것은, 스스로의 사건을 인식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춤을 추는 것은 움직이는 시체와 같지만, 사유와 감정이 스민 춤은 먹잇감을 노리고 날아가는 독수리의 움직임을 연상케 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술이 어렵다고 생각하시지만, 예술은 쉬운 것입니다.
본인의 말이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예술이 쉽다 안 쉽다는 어는 누구도 그 정의를 내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서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향해 어떻게든 움직여 보십시오, 그 안에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감성을 가지고 움직인다면 그것은 예술입니다.
하늘을 향하는 의도 자체가 자신의 의지와 감정이 담겨 있기에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술은 간단하며 쉬운 것입니다.
그런 예술이 만인에게 인정받기는 어렵지만 말입니다.
인정받기 위해 그것의 표현은 더욱더 세밀해지고 정교해 지며 인간 본성을 드러내는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터가 예술은 어려워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술이 어렵다는 것은 나 아닌 타인을 위해 보여 줘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다만 파렴치한 권력주의 예술가들과 이론가들이 모든 예술을 쉽게 다가서지 못하게 아주 어렵게 만들어 버린 겁니다.
법전의 대부분을 한문으로 쓰고, 의학과 과학이 라틴어나 영어로 쓰이는 것처럼, 아무나 다가올 수 없게 말입니다.
그것이 예술가와 대중을 갈라놓고, 삶과 예술을 갈라놓는 것입니다.
예술은 삶 속에 묻어 있고 삶과 같이 있는 것이지 삶과 동떨어진 예술은 여러분이 삶 속에서 보지도 못한 신과 같을 것입니다.
예술은 이성보다 여러분들의 감각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 자체를 찾아보십시오!
자신의 안을 깊게 드려다 보고 자신의 본능과 원함을 깊게 인식해 보십시오!
찾았으면 그것을 당신의 춤으로 표현해 보십시오! 그리고 완성이 되셨다면 당신이 가지고 있던 내면이 들추어지게 되면 부끄럼 보다는 후련함을 느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열정 속에서 열정은 들끓고 삶은 더욱더 질적이게 변하게 될 것입니다.
고통은 다만 예술의 조건을 위해서 필요로 할 것이며, 고통은 삶 속에서 기쁨을 위해 희생되며, 고통은 자신에게 어린아이가 본능에 갈구하는 울음소리 정도의 고통밖에 주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힙합춤이 이러한 모든 것을 담는다면 삶과 같이하는 진정한 예술이 될 것입니다.
왜 전적으로 힙합춤이 예술이 돼야 하며 예술가가 돼야 한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공연 문화 중에서 제일 인정받는 공연인은 바로 예술가이다.
힙합 공연은 공연 중에서 근래에 가장 관심의 초점을 모으는 공연으로서 우리들도 예술을 하는 예술가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야지만 사회적 인식이나 가치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글_이우재 up_rockper@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평택아트센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성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