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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의 힙합론 9] 예술로 다가가는 힙합!

 

힙합춤이 유행이나 인기로 그 시대의 지나가는 하나의 문화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면과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야 그 생명력이 길어지며,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고 인간 문화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힙합이 예술로 다가서기 위해 예술의 여러 가지 성향을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권위적이며 보수주의적인 예술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얘기를 펼쳐나가 보겠다. 따라서 이번 연재에서는 지난 연재에 이어 여러 예술 중에서도 힙합춤이 현재와 가장 가까운 과거 미술사의 팝 아트의 예술성향과 비슷한 면을 갖고 있으며, 팝 아트가 어떻게 예술로써 그 가치성을 인정받는 지를 분석하고 힙합춤이 필요로 하는 팝 아트의 특성을 살펴 볼 것이다.

보수주의적 예술비판 3부

이러한 이야기에서 괄목할 만한 것은 팝 아트의 선구자 ‘워홀’이다. 그는 카네기 공과대학 디자인과를 졸업하여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순수 미술로 당선되어 기회를 잡아 큰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그가 성공하지 못하였다면 ‘브릴로 박스’는 그저 미친놈의 장난으로 보였을 것이며, 전시장에서 전시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는 그의 명성이 ‘브릴로 박스’를 예술로 인정받게 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회화 중심의 역사가 지나고 그 이후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후 시작된 예술의 역사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했고, 모든 것이 예술 일 수 있었다.

이런 정신을 본받아 힙합 역시 무용의 역사 이후 시대가 시작된 것을 알려야 하고, 모든 것이 가능하고,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에 힙합은 무용을 능가한 독자적인 예술로써 인정받는 선두가 되어야 한다.

미국 액션 페인팅의 창시자 ‘잭슨 폴락’이 유럽회화와 단절하고 미국만의 회화를 창조한 것처럼 한국의 힙합도 외국의 힙합과 단절하고, 그들보다 앞서고 새로운, 한국만의 독특한 힙합예술을 창조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말은 한국에서 외국무용을 하고 있는 예술가들에게도 포함되는 것이다. 힙합예술가들도 이러한 스타적인 예술가들이 등장하여야 예술의 가치기준의 선입견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서 단토’는 예술작품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예술작품이게 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며, 가치 평가에 있어서는 예술이론의 기본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최소한 ‘단토’는 ‘워홀’의 ‘브릴로 박스’에서 ‘워홀’의 의도를 이해하였거나, 느꼈을 것이므로 그의 작품에서 예술적 가치와 새로운 예술의 시작을 선언한 것이리라.

‘단토’의 예술적 가치 기준으로 힙합 작품이 예술이라는 점을 설명하면 대략 이러하다.
대체적으로 힙합 춤은 반응적인 동작으로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힘들 수도 있다. 특히 즉흥 춤은 약속되지 않은 순간적 반응에 의해 춤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순간의 현실에서 느끼는 사상이나 감정은 육체를 통해 본능적으로 표현되어 춤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또한 정해진 동작을 음악에 맞춰 반응적으로 춤을 출 경우 그것은 작품을 이해하는 의도적인 반응으로써 힙합 작품 안에 들어 있는 형식과 내용, 그리고, 사상과 연유된 감정을 토대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충분한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즉 힙합 춤의 육체는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되며, 육체를 표현하는 공간은 ‘브릴로 박스’의 전시장이 될 것이다. 내용은 내용이 없다고 하더라도 춤을 춘 자체가 무대에서 내용이 되는 것이다. 꼭 무엇의 내용의 제목을 부여하는 것 보다, 본능자체에 의존하여 표현하는 것 자체도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우연성의 단어를 뽑아 시를 만드는 것처럼…….

발레리나와 뜨거운 사랑을 교제한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말레르메’가 말한 무용의 관람기준이 생각난다. 그는 “무용작품의 관람은 각자의 지식과 교양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이면 된다”고 얘기하였는데, ‘단토’의 예술 가치 판단 기준과 비슷한 면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중들이 만약 그 교양과 지식이 무지하다 하더라도 그들이 힙합작품을 관람한다면 그 어떤 예술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가져가게 될 것이다. 힙합 예술은 교양과 지식을 뛰어 넘어 삶의 비탄을 비틀고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뒤에 얘기하겠지만 힙합예술 작품은 ‘황홀감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힙합예술에서 가장 강한 주체는 바로 육체이다. 힙합 작품에서 조명과 세트, 의상, 내용과 형식은 부수적인 조건 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예술의 연극이나, 뮤지컬, 무용, 오페라 등은 실제적인 주체성을 상실하여, 힙합예술의 부수적인 것이 이런 예술에게는 주主가 된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 목적이 수단에게 함유되어 그 주체성을 상실한 것이다.

힙합예술의 가장 큰 주체인 육체의 표현은 사상을 넘나들며 관객에게 환상, 즐거움, 인간의 한계 넘어서는 경탄, 충격, 몰입을 준다. 이것은 힙합예술이 육체에 대한 숭고의 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프랑스와 리요타르’는 예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술은 현존을 말없는 경탄 속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숭고의 미학에서 예술은 충격이어야 하며, 최고의 충격은 무엇인가 일어난다는 것이고, 그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벗어나 순간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게 해 준다.” 힙합의 충격은 바로 주체가 되는 육체이다, 이 육체의 움직임을 보는 순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벗어나 즐거운 존재의 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경구는 힙합예술 미학에 대해 짧고 간단하게 언급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부분에 관해 빠지면 서운한 독일의 철학자가 있다, 바로 ‘발터 벤야민’이다. 그는 우리에게 ‘아우라의 몰락’으로 유명한 철학자이다. ‘아우라의 몰락’을 간단히 힙합예술에 인용하자면 이렇다.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에서 고전적(제의적, 종교적)인 아우라는 사라졌다고 하였다. 제의적이던 예술에 대한 몰입이 무너지게 되어 몰입보다는 내면으로 받아들이며 제의적 가치의 마력으로부터 벗어나 관객에게 향유와 비판적 입장을 동시에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제의적 몰입이 반사회적이었지만, ‘아우라의 몰락’ 후 사회적, 정치적으로 예술이 도구화 되었다고 한다.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의 몰락’ 후 사회적 정치적으로 예술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실제로도 힙합 예술가들은 사회적, 정치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한다.

현시대에는 도구라는 이용적 단어 보다는, 호혜주의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1981년에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 때에도 실제로 힙합(비보이)예술가 들이 축하 공연을 하였으며, 요새는 선거 공략으로도 힙합예술가들의 공연을 하기도 한다. 이는 부정적이기 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힙합이 예술이라는 것을 팝 아트처럼 대중들에게 친근한 예술로써 다가가 더욱더 사랑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힙합예술은 ‘벤야민’의 ‘아우라의 몰락’ 속에서 새로운 ‘힙합 아우라’를 탄생 시킨다. 제의적, 종교적 가치의 아우라가 아닌, 강렬한 충격과 경탄의 도취 속에서 오는 강한 엑스타시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현대적 즐거움, 즉 ‘카타르시스의 아우라’를 생산해낸다. 주체적인 육체의 춤 동작에서 나오는 강렬함이 시각을 통해 느껴지게 하는 즐거운 엑스타시의 아우라. 여기서의 아우라는 ‘앙토넹 아르토’의 ‘잔혹 연기론’에서 말하는 연극에 대한 관객이 느끼는 황홀감과 몰입 그리고 거기서 오는 신비적 도취와 비슷한 입장을 가지게 된다. ‘아르토’의 잔혹극은 발리 연극을 보고 영향을 받아 생각해 낸 것으로, 대체로 텍스트 위주의 대사가 아니라, 강한 제스처나, 소리, 움직임으론 인한 극단적 표현으로 관객을 황홀감이나 몰입 도취로 몰아넣는 신비주의적 연극이론이다. 이러한 연극론에 관한 작품은 실제적으로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론적 사상만으로도 현대의 연극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힙합극(유무극)도 ‘아르토’ 잔혹극의 이론과 상당히 비슷한 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아르토’가 봤다면 충분히 좋아했을 극이라고 생각한다. 잔혹극도 현대의 연극에 특히 부조리 연극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면, 힙합극도 공연예술계에 많은 변화를 낳을 수 있을 것이며, 후 시대의 예술계에도 충분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에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댄스컬(비보이 극)이라는 장르로써 새로운 공연 예술이 도입돼 뮤지컬계의 큰 유행이 되고 있다. 힙합극은 시대를 뛰어 넘어 역사에 가장 창조적인 예술이 될 것이며, 된 것이다. 과학은 문명을 변화시키지만, 예술은 정신을 변화시킨다! 힙합 인들은 인간의 정신을 변화시키는 현대의 새로운 진정한 예술가들이다.




글_이우재 up_rock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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