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1.4.10 토 16:08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샤인' 꿈을 이루지 못한 뒤의 인생, 그리고 그 인생 안으로도 비쳐든 가늘고 희미하지만 따뜻하고 고마운 한 줄기 빛

 

먼저 정신 번쩍 차릴 이야기로! 우리가 인생에서 혹은 사회에서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은 참으로 쉽고 간단하고 순식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발을 잘못 디뎌 떨어지고 나면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사회. 1등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사회. 패자부활전이란 제도 자체가 없는 사회. 실수 했으니까 한번 봐달라고요? 그런 건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IMF 이후 10년이 지난 2007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20여 일 앞둔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큼은 절대 낙오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새벽부터 영어학원에 가고 직장에서는 업무 시간이 끝난 뒤에도 한참 야근을 하죠. 주말에는 교회에 가듯 자기계발 강연회에 참석하고요. 서점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변화된 글로벌 신자유주의 환경에 맞춰 개조해야 한다는 자기계발 책과 불로소득으로 자산 10억 원을 만들자는 재테크 책들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과연 정말 우리는 우리의 바람대로 각자 '자신'만큼은 인생에서 혹은 사회에서 절대로 낙오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상당히 의심해봐야 할 일입니다.  

누구나 인생의 밑바닥으로 순식간에 추락할 수 있다!
자, 뮤지컬 「샤인」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샤인」은 2002년 KBS-TV ‘인간극장’에 소개된 ‘성탄이의 열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만들어진 창작뮤지컬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사회에서 한 번 낙오된 뒤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맨 밑바닥까지 떨어져버려 더 이상 구원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아 보이는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박영종(한성식)입니다.
박영종은 인생 초반에 좀 불우한 가정형편과 반항적인 청소년기를 보내기는 했지만 마음속에는 그 누구 못지않게 뜨거운 열정과 빛나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부모님의 또는 바로 우리의 대동소이한 젊은 날의 초상이기도 하죠. 그 시절 그의 인생을 비추어주는 별빛은 바로 음악이었지요. 그는 음악을 하겠다는 자신의 꿈을 좇아 집을 가출합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 꿈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미 8군 밴드 오디션에 합격했으니까요. 그의 꿈은 결코 허무맹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게 확실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음악가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술적 고뇌와 방황 속에 대마초에 손을 대고 맙니다.
그는 감옥에 갑니다.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요. 그 뒤 그의 인생은 미리 정해진 코스라도 있었던 것처럼 밑바닥을 향해 착착 잘도 굴러 떨어집니다. 감옥에서 만난 건달을 통해 출옥 후 카바레에서 기타를 연주하게 되고 예술과 음악과는 영영 멀어진 인생을 살게 되죠. 그에게 음악은 이제 더 이상 꿈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는 심정으로 조폭이 되어 비열한 세계에 편입하고 불의와 타협하고 사회의 어둠이 되어버리죠. 그리고 결국은 그 어둠의 세계에서도 버림을 받고요.
그는 다시 감옥 갔다가 나왔지만 푸른 청춘은 다 지나가버리고 꿈을 좇았던 기억도 다 잊어버린 후이지요. 그때 그는 교회에서 19살 연하의 아름다운 최혜연(양꽃님)을 만납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이후의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우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 모든 역경과 고난을 참고 견뎌낼 수 있습니다. 모두들 노력만 하면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하니까요. 근데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꿈을 향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뛰었건만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꿈을 이룬 성공한 인생 말고요. 꿈을 이루지 못한 이후에 남겨진 인생 말입니다.  
자, 뮤지컬 「샤인」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남루하게 남은 인생 이야기입니다. 그 남루하게 남은 인생에게도 빛은 찾아옵니다. 박영종에게 찾아온 빛은 바로 최혜연입니다. 박영종은 최혜연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정말 착하고 성실하게 살겠다며 아등바등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최혜연은 박영종의 인생에 신이 주셨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난 축복이니까요.
하지만 밑바닥 인생의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련 끝 행복 시작!이 아니라 시련 끝 더 큰 시련 시작!입니다. 최혜연은 아들 성탄이를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정신지체자가 됩니다. 그리고 7년 후 박영종은 교통사고를 내 사람을 죽이고 맙니다. 설상가상 7년 동안 모은 전 재산으로 마련한 교통사고 합의금은 사기를 당하고요. 다시 감옥에 들어가 3년을 살고 나옵니다.
   
인간만이 인간이기에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것을 보지 않았다면 “이건 정말 너무한 이야기잖아?” 하며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너무 비극적으로 썼다고 투덜거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근데 정말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시종 “정말 우리 국가나 사회는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거야? 사회 안전장치란 전혀 없는 거야?” 하는 질문과 놀라움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하여튼 인생은 계속됩니다. 전과 11범이지만 하루하루 사랑하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그 어떤 일이든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하는 박영종, 정신지체자이지만 남편 박영종과 아들 성탄이를 가슴에 꼭 새겨두고 전적으로 사랑하고 의지하는 최혜연, 가난하고 부끄러운 부모를 두었지만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도우려는 아들 성탄.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감동을 주고 마음을 울립니다. 우리들처럼 희생이란 모르는 이기적이고 각박한 사람들에게요. 그들 서로는 서로에게 미안해하지요. 나를 만난 것이 미안하고, 나를 사랑해준 것이 미안하고, 나의 아내가 되어준 것이 미안하고, 나의 아들이 되어준 것이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인간만이 인간이기에 칠흑 같은 어둠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사랑을 가꾸고 지켜낼 수 있습니다. 신이 다시 우리에게 묻습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느냐고. 인간은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삽니다.

‘레미제라블’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한국형 버전 ‘샤인’
뮤지컬 「샤인」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과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만큼 인간과 인생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기존 뮤지컬들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볼거리와 상류 사회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사회의 그늘과 어둠에 관심을 기울이고 애정을 갖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뮤지컬 「샤인」은 마음을 아프게 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이웃을 돌아보게 하고 고개를 숙이게 하고 부끄럽게 하고 인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게 했습니다. 진심과 사랑과 감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줍니다.
그건 단지 실화의 무게 때문은 아닙니다. 배우 한성식은 정말 박영종 역할을 맞춤옷처럼 딱 맞게 소화했습니다. 깊은 고뇌와 좌절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그리움과 사랑을 얼굴 표정과 목소리에 담아냈습니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 다 묻어났습니다. 배우 양꽃님은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때론 아주 작은 고음으로 때론 아주 크고 풍부한 고음으로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노래는 음유시인이 시를 낭송하는 것처럼 슬프고 아름다웠습니다. 노래를 통한 감정 전달에 아주 능했습니다. 능청스럽게 정신지체자 연기도 잘해냈고요. 배우 박인규는 박성탄 역과 젊은 시절 박영종 역을 매끄럽게 연기했습니다. 초등학생 역과 20대 젊은이 역을 다 잘 소화해냈습니다. 한 얼굴이 그렇게 티 없이 환하고 순진하다가 반항적이고 거칠게 변하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배우 최재웅은 M역을 맡아서 무대를 쥐락펴락했습니다. 그는 무대를 휘젓고 다녔고 관객의 웃음을 100% 책임졌습니다. 그만 나오면 웃음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어두운 이야기들을 밝게 이끌어주었습니다. 1인 다역으로 너무도 다채로운 인물들을 연기했음에도 다 그 역에 맞는 연기를 해주었습니다. 혜연과 함께 부른 막간극 1 ‘마법 같은 사랑’과 성탄과 함께 부르는 막간극2 ‘내게만 내리는 비’는 뛰어난 가창력을 자랑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자칫 우울하고 구질구질한 이야기가 될 뻔한 소재를 슬프지만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잘 승화시켜낸 것은 4명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가창력 덕분입니다. 음악은 1980년대 유행했던 로큰롤(rock and roll)을 사용했습니다. 귀에 익숙해서 편안하고 힘찼습니다. 무대에서 따로 도드라져 나오기보다는 무대와 연기에 스미어 흘렀고 시적인 가사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무대장치는 아주 소박했습니다. 대신 연극무대에서처럼 빛을 사용해 ‘집중’과 ‘강조’를 적절히 해냈습니다. 조명은 다양한 빛깔과 효과를 통해 관객들을 무대로 확 끌어당겨 집중시켰고 빨려 들어가도록 해주었습니다.      

자, 이제 이야기를 마쳐야 할 시간입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들에는 유독 슬픈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가슴이 찢어지는 걸 꾹꾹 참아가며 동화책을 읽어야 했지요. 「인어공주」「행복한 왕자」「집 없는 아이」「플랜더스의 개」「장발장」 등. 인생의 백지시기에 읽는 동화책 속에 그토록 슬픈 이야기들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우리 마음에 슬픔을 새겨두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는 법을 잊지 말라는 거였겠지요. 인간은 인간이기에 슬픔에 가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릴 줄 압니다. 그 슬픔이 주는 통증과 눈물이 다시 세상의 빛이 되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뮤지컬 「샤인」은 그런 슬픔이 주는 통증과 눈물 위에서 만들어져 우리 인생을 비춰주는 빛입니다.  

글 :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테이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