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어떤 분이신가요? 이 세상에 절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 분이신가요? 믿지 않는 분이신가요? 저는 한때 아는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유치(?)하게도 이런 걸 묻고 다녔습니다. ‘당신의 정체를 밝혀봐’라고 따지듯 말입니다. 그리곤 이름과 전화번호 옆에 O와 X를 써넣었죠. 평균을 내보자면 사랑이 있다와 사랑이 없다가 반반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알쏭달쏭 했습니다. 근데 뭐, 최근에는 사랑이 없다가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이런~! 그런 거였어?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단 한 번의 사랑을 믿으시나요?
「인당수 사랑가」는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 대책 없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들이 만든 한 편의 웰 메이드 창작 뮤지컬입니다(이런 작품이 나온 걸 보니 그런 분들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우와~!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일 수밖에 없었죠.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새로우면서도 독창적으로 구성한 탄탄한 스토리, 현대적인 옷을 입은 국악과 판소리와 장단, 배우들의 오랜 숙련에서 나온 듯한 고르고 안정된 성량과 연기력, 엑스트라들의 몸을 사리지 않은 몸 개그(중간에 딴 생각을 할 틈을 안 줍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 전개에 따라 인물의 상황에 따라 딱 맞아떨어지는 음악이 무대와 객석을 꽉 채웠습니다. 음악이 아주 좋았습니다. 시종 음악의 아름답고 슬픈 선율들이 영혼과 심장을 두드렸습니다. 때론 바람 난 청춘들처럼 살랑살랑 간지럽게, 때론 숨 막힐 정도로 짜릿한 첫 입맞춤처럼 달콤하게, 때론 가슴이 아플 정도로 슬프게, 때론 무겁고 장엄하게. 가사도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머리만 좋다면 다 외우고 말았을 정도로 시적인 가사들이었죠. 춘향(강윤정)의 테마, 몽룡(장덕수)의 테마, 변 사또(고승수)의 테마 모두 다 다시 듣고 싶습니다. 변 사또를 비롯해 배우들의 대사에도 잠언 같은 구절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적인 음악에 아름다운 한국어가 잘 담겼더라고요.
그래서 결론은 강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 생각이 먼저 납니다. 다음번에 꼭 데려와서 함께 먹어야겠다고 결심도 하고요. 또 혼자만 먹어서 미안한 마음도 들고요.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한 사람들과 다 같이 보면 좋았을걸.
춘향과 몽룡은 정말로 가슴 아픈 사랑을 했더래요!
우리의 고전 「춘향전」은 전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이지요. 「춘향전」의 판본만도 100가지가 넘습니다. 춘향의 정절을 강조한 판본, 변 사또의 백성 착취를 강조한 판본, 춘향의 신분 상승을 강조한 판본, 외설스러운 사랑을 강조한 판본 등 전해지는 판본마다 이야기들도 조금씩 다 다릅니다. 또한 그 다양한 판본들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연극, 발레,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에 수없이 리바이벌됐고 수없이 새롭게 창작돼 왔습니다.
근데 그중에 이번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만큼 “춘향이와 몽룡이가 정말 목숨을 다 바칠 정도로 사랑한 게 맞아?” “아무것도 바란 게 없이 사랑한 게 맞아?”라고 잔인하게 묻는 작품은 없었다고 느껴집니다. 모두가 지금까지의 「춘향전」에서 그 부분을 의심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춘향이가 모진 고문을 다 이겨냈고 죽음 앞에서도 정절을 지켰고 그 상으로 과거급제한 몽룡의 사랑을 얻었고 정경부인의 자리에 올랐다는 걸 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근데 그것만으로는 춘향의 사랑을 믿기 어려웠나봅니다. 「인당수 사랑가」에서 춘향의 시련은 완전 K-1을 넘어 프라이드급입니다. 춘향에게 인간이 감당하기에 최고로 힘든 시련을 던져주고 정말 사랑을 지켜내는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기로 한 것 같습니다.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는 “우리나라 최고의 고전 「춘향전」과 「심청전」을 섞어서 재미있는 뮤지컬을 한 편 만들어볼까?”가 아니라 “「춘향전」의 사랑이 진짜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는 춘향이가 최악의 시련을 겪어야 해. 그럼 춘향이 부모로는 월매 대신 심봉사가 낫겠어!” 이런 판단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런 잔인한 프로듀서, 연출자, 작가 분!
사계절 중 가장 아름답다는 오월 단오, 춘향과 몽룡은 만물이 소생하는 그 아름답고 따뜻한 봄에 우연히 만났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처럼 남자인 몽룡이 먼저 춘향을 쫓아다니며 열렬하게 구애를 펼칩니다. 춘향도 이내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그 둘은 서로에게 마음과 영혼을 통째로 빼앗겼죠. 완전 눈에 콩깍지가 낀 겁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원래 유치하잖아요. 근데 10대들의 사랑이라니 얼마나 유치하겠습니까. 손만 스쳐도 짜릿함을 느꼈을 그 두 사람은 완전 사랑에 홀딱 빠져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사랑도 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지요. 두 사람은 인당수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합니다.
근데 문제는 춘향의 가정환경입니다. 원작 「춘향전」에서도 춘향의 가정환경이 딱히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원작 춘향의 어머니 월매는 어느 정도 세상 물정도 알고 경제력도 갖춘 퇴기였지요. 춘향은 양반인 성참판을 아버지로 기생인 월매를 어머니로 두고 있었고요. 그래서 딱히 가장의 역할을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또한 이몽룡과의 사랑에서도 어머니인 월매가 더 적극적이었고요. 그러니 춘향은 어머니의 적극적인 동의와 추천 하에 비교적 쉽게(?) 몽룡과 사랑을 했던 거지요. 수청을 들라는 변 사또가 준 시련도 본인이 참고 이겨내기만 하면 됐습니다.
자, 이제 「인당수 사랑가」에서 춘향의 시련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춘향은 소녀 가장입니다. 이팔청춘(16세) 꽃다운 나이에 손이 부르트고 발이 부르트도록 일해서 아버지를 봉양해야 합니다. 아버지 심학규는 원래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이긴 하지만 가세가 점점 기울어서 지금은 양반 취급도 못 받는 상태입니다. 설상가상 아버지는 스무 살 때부터 시력이 나빠져 장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춘향에게 사랑이란? 당장 딸린 식구인 아버지를 모셔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으니 당치 않은 일이지요. 사랑은 해서는 안 될 사치입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딸의 사랑을 지지해주고 후원해줄 형편도 못 되었고요. 곧 두 사람에게 시련이 닥치지요. 몽룡 집안의 결혼반대. 몽룡은 춘향에게 함께 야반도주를 해서 살자고 합니다. 물론 춘향의 아버지도 함께 모시고요. 춘향은 정말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요.
몽룡은 강제로 한양으로 끌려갑니다. 몽룡의 아버지 이 사또와 뺑덕어멈은 합작을 해서 춘향의 아버지를 붙잡아 들이고 딸이 양반자제를 유혹했다는 죄명을 붙여 감옥에 가둡니다. 춘향이가 감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춘향의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거지요. 그건 춘향 자신이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시련입니다. 부녀지간의 정이 크면 클수록 더 큰 시련이고요. 사실 가장 큰 시련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대신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이 욥을 벌할 때 당사자인 욥 대신 욥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열 명의 자식을 모두 거두어갔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거두어 가는 것이 가장 큰 형벌이니까요.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봄은 어느새 춥고 쓸쓸한 겨울로 바뀌었습니다. 춘향의 아버지는 여전히 옥에 갇혀 있고 한양으로 끌려간 몽룡은 편지 한 장 없습니다. 춘향은 차가운 감옥에 갇힌 앞 못 보는 아버지 걱정과 편지 한 장 없는 몽룡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상황이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악인이라면 무조건 미워하고 맞서 싸우면 될 텐데 그렇게 하기도 어려운 인간적인 변 사또의 등장이 이어지지요. 변 사또가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변 사또는 변 사또이고 적은 적이지요. 이전 「춘향전」에서 단순 무식 악랄 포악 여자나 밝히는 변 사또가 얼마나 상대하기 쉬운 인물이었던가요. 하지만 「인당수 사랑가」 속 변 사또는 인생의 무상함을 깨달아버린 외롭고 쓸쓸한 인간이지요. 나쁜 사람이라고 몰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여색을 밝히지도 않고 백성을 괴롭히지도 않습니다. 그는 단지 영원한 사랑 따위를 믿지 않을 뿐이지요. 그런 그의 얼어붙은 마음이 봄처럼 따뜻하고 싱그럽고 아름다운 춘향을 품고 맙니다. 사실 변 사또의 캐릭터성이 바뀐 것도 춘향에게는 더 큰 시련입니다. 그 적인지 아닌지 모호한 상태가 가장 나쁜 상태입니다. 변 사또 역을 맡은 고승수의 감미로운 저음은 정말 엄청 헷갈리게 합니다.
변 사또는 춘향에게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란 없으니 몽룡을 그만 잊으라고 얘기합니다. 그건 변 사또의 입을 빌린 어른들의 이야기이지요. 그러면서도 그는 춘향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는 춘향의 사랑을 얻고 싶어합니다. 모두 진실된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질투를 불러오고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방해합니다. 춘향에게 과거에 급제한 몽룡이 보내온 편지를 감추고 대신 몽룡이 사대부 가문의 처자와 결혼했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또한 변 사또는 감옥에 갇혔던 춘향의 아버지를 풀어주면서 춘향을 후처로 삼기 위해 가마를 보내겠다고 합니다.
춘향은 몽룡이 사대부 처자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망하지만 탓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지요. 그리고 그 둘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곳인 인당수에 빠져 죽고 맙니다. 변 사또가 보내겠다던 꽃가마는 상여가 되고 맙니다. 한편 뒤늦게 찾아온 몽룡은 춘향의 상여를 보고 절규하다가 춘향이 몸을 던진 인당수에 몸을 던집니다. 마치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지키겠다는 듯이요.
이쯤 되면 「춘향전」, 아니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가 무척 낯설어집니다. 춘향이가 사랑을 지킨 대가로 상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무도 상을 주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상을 받기는커녕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죠. 이럴 수가~! 한 가지 위안이라면 몽룡이 슬퍼하다가 시간이 지난 뒤 다른 사대부 처자와 결혼하지 않았다는 점이지요. 춘향이 그렇게 사랑했던 몽룡은 죽음을 통해 춘향의 곁으로 갔으니까요.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의 위대한 결말!
자, 이제 손익계산서를 따져볼 때입니다. 이 뮤지컬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죽은 춘향?, 죽은 몽룡?, 변 사또? 답은 변 사또입니다. 그는 영원한 사랑의 존재를 믿지 않았고 영원한 사랑을 방해까지 했으니까요. 결정적으로 사랑을 얻지도 사랑을 해보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럼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건 바로 춘향이와 몽룡이지요. 참,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었다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비극이라고 생각하시는 거는 아니죠?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 낙관주의를 잘 보여준 작품입니다. 비극이긴 하지만 위대한 이상이 살아 승리한 작품이지요. 모두들 슬퍼서 펑펑 울지만 마음속으로는 순수한 사랑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주제인 이웃과 싸우거나 원수관계를 맺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잖아요.
「인당수 사랑가」가 역시 주인공들은 다 죽었지만 죽음으로써 숭고하면서도 비극적인 낙관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은 위대하다는 거지요.
이제 저의 정체를 실토해야겠네요. 저는 사실 변 사또 같은 사람입니다. 인생은 무상하고 이 세상에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따윈 없다고 생각하죠. 사랑은 세계적인 과학자들의 이야기처럼 ‘두뇌의 착각’ ‘호르몬의 작용’ ‘유전자의 음모’라고 믿죠. ‘900일’ ‘37.5°’ ‘5 대 1’처럼 사랑을 숫자로 표현하는 것을 더 쉽게 여기고요. 각각 ‘열정적인 사랑의 유효기간’ ‘임신이 가능한 배란기 여성’ ‘사랑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대화 비율’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 변 사또가 춘향의 죽음을 통해 깨달은 바 있듯 저 역시 깨달음을 얻습니다. 춘향과 몽룡의 죽음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사랑의 위대한 증거가 되었으니까요.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는 변 사또처럼 지식인이지만 “영원한 사랑 같은 것 없어”라고 믿는 비관주의, 냉소주의, 허무주의자들에게 대책 없이 긍정적이고 따뜻하고 낙천적인 사람들이 들려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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