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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처녀에서 골드미스 되기 ‘텔미 온 어 선데이’

 

10월 9일, 두산아트센터에서는 작은 무대보다 너 댓 배는 넓은 객석이 가득 메워졌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모노 뮤지컬이 대세’라는 말이 피부로 느껴졌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국내 첫 모노 뮤지컬이었던 ‘조지 엠 코핸 투나잇’의 시도는 다소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관객들은 혼자서 춤추고 노래하며 연기하는 것이 한국에서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궁금증도 이제 사라진 듯하다. 뮤지컬을 대하는 태도가 꽤 자연스러워졌음을 볼 수 있었다. ‘조지 엠 코핸 투나잇’ 때와는 달리 배우가 실수할까, 힘들지는 않을까, 안절부절 못하며 연신 두 손을 기도하듯 쥐어대는 관객들은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조지 엠 코핸 투나잇’과 ‘텔미 온어 선데이’가 남자 vs 여자 배우로 비교 된다는 것은 매우 유치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확실히 발랄하고 상큼한 분위기가 즐비했다. 배우도 분명 한 층 강력해졌다. 이것은 확실한 우먼파워다. 가냘픈 여 배우가 1시간 반 동안 30여곡의 넘버를 소화한다는 것이 가당하기나 한 일인지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 무대에 더 잘 어울리는 그녀, 바다
모노 뮤지컬이니만큼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오랜만에 뮤지컬 배우로서 다시 무대에 선 바다는 가수보다 뮤지컬 배우 쪽이 더 어울려 보였다. 브라운관에서 비춰진 그녀의 모습은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르나 뮤지컬 무대는 달랐다. 짙은 화장을 한 섹시한 여가수의 모습이 아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연한 화장을 한 자연스런 얼굴의 그녀는 무척이도 아름다워 보였다. 침대에 ‘퐁-’ 뛰어들던 그녀는 귀엽고 감정에 충실한 데니스 그 자체로 관객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가수인 그녀의 폭발력이야 이미 정평이 나 있겠지만 뮤지컬 대사로써의 가창력은 어떨지 누구나 궁금해 할 것이다. 물론 그녀의 정확한 음감과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일인극이라는 어려움을 안정감 있게 이끌었다. 쉽게 뮤지컬에 뛰어든 준비되지 않은 연예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만큼 그녀는 혼신을 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관객의 몰입도도 뛰어났다. 그녀가 강력하게 쏟아 붓는 에너지는 관객들에게 선명하게 흡수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사랑에 빠질 때면 관객도 벅차오르는 사랑의 환희가 전해져 왔다. 가수 바다의 개인적인 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녀에게 반할 수 있을 만한 무대였다.
아무래도 남자보다 더 넘치는 힘과 에너지를 가진 그녀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무대밖에 없을 듯하다.

- 단순하고도 혁신적인 무대구조
처음 이 아기자기한 공간에서 마술처럼 신비로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무대는 뉴욕이라는 도시 분위기에 걸맞게 캐주얼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무대 세트 자체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느 뮤지컬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배우가 직접 무대를 세팅하는 연출도 아니다. 소리 소문 없이 배우 옆에 완벽하게 놓여진 테이블, 의자 등 이건 말 그대로 자동화다. 마치 자석처럼 바닥에서 유용하게 움직이는 소품들이 매우 도시적이며 현대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랑에 좌절이 있을 때 무대 가운데서 하이라이트 조명을 받으며 빙빙 도는 모습은 영상 기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심오한 주인공의 심리를 파고들게 했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무대는 작지만 단조롭지 않다. 또한 빈 공간이 전혀 없음에도 어수선하지 않다. 다양한 구조의 변화를 꾀하는 그곳의 무대는 일인극이 주는 심심함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훌륭한 방편이었다.

- 현실적인 한국 여성의 판타지
이 뮤지컬의 배경은 뉴욕이다. 그러나 관객들이 뉴욕이라 느끼지 못할 만큼 한국적인 느낌이 강하다. 물론 진정한 뉴욕커의 모습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나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떠올리기에는 매우 한국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히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한국 사람이라는 동질감에서 오는 향수와 웃음이 베여있기 때문일까? 거울을 보며 스스로 꾸짖고 자학하는 모습까지 너무 현실적이라 실소가 터지는 장면이 한 둘이 아니다.
사랑에 빠지고 아파하고 또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서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이 작품 내용은 너무도 뻔하지만 또 너무도 공감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손에 닿을 듯한 예쁜 꿈을 꾸는 여주인공에게서 관객들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된다. 가장 힘들 때 가장 힘이 되는 사람인 엄마와의 관계까지도 말이다.
사람 사귀는 일엔 시간이 걸리듯 관객들은 시간이 갈수록 그녀와 친해진 기분을 느낀다. 그녀가 실의에 빠졌을 땐 고민상담 해주듯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 누구나 꿈꾸는 해피엔딩
누구에게나 사랑한 순간은 짧고 이별의 아픔은 길게 남는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도 그 호흡이 그대로 반영된다. 세 번의 사랑에서 이별 장면만이 유독 길게 느껴진다. 보송보송한 사랑이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심정일 것이다. 세 번의 긴 이별 장면은 관객을 다소 지치게 만든다.
게다가 대체적으로 어두운 무대는 더욱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별 앞에서도 엉뚱하고 해맑은 인물을 통해 아픔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데니스가 세 번이나 되는 사랑의 실패를 보여주었는데 결말이 자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것은 용두사미 느낌을 준다. 인기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이 결말을 직접 짓고 싶어 하는 일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과 동일시된 인물이 불행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지막은 새로운 사랑에 대한 희망이나 진정한 사랑의 결말을 암시라도 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것이 진짜 현실적인 판타지가 아닐까?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주옥같은 넘버들로 구성된 ‘텔미 온어 선데이’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무대 위에는 단 한 명뿐이지만 전화로 들려오는 음성들은 모두 무대에 등장했던 인물처럼 느껴지게 한다. 목소리만으로도 각각의 개성과 유머가 드러나는 유쾌한 연출이었다.
골드미스 여성들을 주 타깃으로 한 이 작품은 세밀하게 현대 여성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마치 노처녀에서 골드미스로 거듭나는 성장일기와도 같다. 그녀가 비로소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진정한 판타지를 보여준다. 머릿속 상상이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가득한 푸른 물방울의 조명은 몽환적이고 공상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데니스만이 아닌 관객 한 명 한 명이 주인공이 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주인공이 된 여성들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사랑 이야기를 다룬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한 여인의 드라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텔미 온어 선데이’는 한국에서 모노 뮤지컬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게 한다. 빠른 시간에 안정을 찾은 이 새로운 형식이 과연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지 기대가 된다.


공연일시 : 2007.10.09.
공연장 : 두산아트센터
연출 : 이지나
배우 : 최성희(바다)



김유리 yuri400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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