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으로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만화적인 비주얼과 함께 그려낸 창작뮤지컬이다. 지난해 초연 되어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현재 시즌2가 올해 말까지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올려 질 예정이다.
'캣츠비’는 어느날 애인 ‘페르수’에게서 그녀의 청첩장을 받는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나타난 ‘선’, 하지만 그는 ‘페르수’를 잊지 못하고, 그의 친구 ‘하운드’ 또한 충격적인 비밀을 안고 있다.
- 만화, 뮤지컬과 사랑에 빠지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만화적 판타지의 완벽한 구현이다. 만화라고 해서 ‘미키마우스’나 ‘톰과 제리’를 상상했다면 큰 실수다. 절대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만화적 요소가 작품의 곳곳에 들어 있다. 이들이 구현하는 만화는 판타지에 가깝다. 무대 뒤 보이는 빼어난 영상미는 작품 속 아침, 낮, 저녁 그리고 밤까지 모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주인공들의 머릿속 상상은 곧 무대 위의 현실로 쏟아진다. 또한 그들의 속마음을 영상으로 보여줄 때는 친밀감을 더한다. 특히 사랑을 노래하는 ‘캣츠비’의 등 뒤에 나비의 날개가 솟을 때 객석에서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혜성이 떨어지는 장면, 유난히 밝은 별, 비가오고 낙엽의 떨어짐, 구름의 움직임까지 영상 속 비주얼은 매우 세밀하다. 이처럼 소극장무대의 호흡은 영상과 조명을 만나 또 다른 권능을 지닌다.
- 빠르고 간결한 장면연결, 그리고 자연스러움
소극장 뮤지컬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 바로 작은 무대의 효과적 사용이다. 이 작품은 배우들의 등퇴장이나 장면연결에서 매우 세밀한 속도감이 느껴진다. 특히 무대의 효율적인 사용은 이들의 공간이 매우 입체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무대 아주 작은 곳까지 그들의 사랑과 아픔이 가 닿는다. 이처럼 이들의 작은 무대 안에 참으로 많은 것이 있다. 객석은 그 잡히지 않는 디테일함에 곧 매료된다.
- “내 냄새 기억해줄 꺼지?”
‘캣츠비’는 ‘페르수’의 냄새를 잊지 못한다. 그녀의 냄새는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립고 또 간절하다. ‘냄새’라는 단어가 ‘사랑’과 그리 어울리지 않지만 관객들은 충분히 공감한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흔적이 더욱 가슴 아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지나치게 이기적인 ‘페르수’의 캐릭터는 관객의 큰 이해를 얻지 못한다. 그녀가 조금만 더 진실했더라면 ‘캣츠비’, ‘하운드’, ‘부르독’ 이 세 남자가 모두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냄새’로 기억되는 사랑 앞에는 어느 누구도 힘이 없다. 잡아도 잡히지 않는 그 이유를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지나간 사랑은 집착을 낳았다. ‘기억’이라는 끈으로 이들의 새로운 사랑은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 기막힌 반전, 그러나
‘부르독’의 돈을 보고 결혼한 ‘페르수’, 그녀의 불행한 결혼생활, ‘캣츠비’를 잊지 못하는 ‘페르수’, 여기에 혼외임신까지 그야말로 진부한 멜로다. 이들에게 새로운 사랑이란 없다. 관객들은 오히려 ‘캣츠비’의 사랑이 마음 착한 ‘선’과 이루어지기를 더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과거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다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 중 양념으로 삽입된 에피소드는 실제와 상상을 자유롭게 오가며 극 진행에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극의 후반부 ‘하운드’와 ‘페르수’의 비극은 매우 충격적이다. 그 반전으로 이 작품이 결코 진부한 멜로가 아님을 알려준다. 하지만 큰 공감을 얻기는 힘들다. 또한 결혼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페르수’의 선택은 분명 잘못되었다. 이 작품에서 ‘결혼’은 곧 사랑의 종착역이다. 그것이 아쉽다.
- 자, ‘뮤지컬’ 그 정의부터 생각해보자
‘뮤지컬’이라 함은 음악, 안무, 극의 이 3박자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장르이다. 물론 작품에 따라 집중하는 부분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간다면 최소한 그 이름에 맞는 연출이 필요하다. 이 작품은 연극적 요소가 너무 많이 강조되어 있다. 안무나 음악이 주는 즐거움이 없이 극의 진행에만 중점을 두었다. 더군다나 주연배우들이 작품의 빈 곳을 채워주지 못한다. 배우의 가창력, 연기력은 물론 무대를 채우는 능숙함이 더 요구된다.
뮤지컬 넘버는 기존의 가요들을 짜깁기해서 극 속에 끼워 넣은 듯하다. 마치 주크박스뮤지컬 같다. 모든 넘버는 서로 비슷하여 특색이 없다. 특히 발라드풍의 노래에서 사용된 스트링(string, 현악기)의 사용은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의 편곡은 빠른 극 전개에 다치지 않으려고 본 역할에서 자꾸 비켜서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제 뮤지컬에서의 편곡은 각 악기의 특성이 주는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한다. 즉, 다양한 악기와 폭넓은 음역과 리듬의 감각적인 사용을 통해 노래(멜로디라인)와 대등한 위치에서 관객들을 끌어 당겨야 한다. 더 이상 멜로디를 보조하는 수단이 아닌 좀 더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이면서도 극 속 의미가 담겨 있는 음악이 필요하다.
- 성장통, 우리의 청춘이 주는 축복
사랑, 참 어렵고도 어렵다. 이 작품에서처럼 우리 모두는 사랑으로 상처받았지만 또 어느 누군가에게 죄인이다. 자신의 사랑이 준 고통은 누구에게나 가슴이 아프다. 이 작품은 그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그 깊은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기증 나는 그들의 지난날을 억지로 정리하지 않아도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들 사이로 ‘사랑’과 ‘감정’과 ‘시간’이라는 것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들의 사랑을 ‘C급’이라 말하지만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C급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이라는 것은 등급 따위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사랑에 관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양한 모습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그래서 누구나 한번 해봤을 법한 사랑이야기들, 이들의 사랑은 관객을 만나면서 새로움의 옷을 입었다.
극 중 '캣츠비'처럼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해보자. ‘내가 너의 아픔까지 다 사랑하겠다’고. 그것이 바로 ‘캣츠비’가 노래하고 있는 ‘위대한 사랑’의 본 모습이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_예술마당 4관 2007년 10월 5일 공연
제작_다온커뮤니케이션
예술감독_정진욱
cast_곽병진, 김태한, 김소향, 김가은 등
공정임 kong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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