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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 보이즈’, 자유로운 몽상가들...

 

콘셉트 형 뮤지컬 ‘펌프 보이즈’는 1950년대 말 제임스 딘으로 인한 청바지의 붐처럼 젊은이들을 끓어오르게 했다. 스토리도, 구성도, 확연한 시작과 끝도 없는 ‘펌프 보이즈’는 뮤지컬의 어떠한 형식도 거부하는 반항아적 기질이 뚜렷하다. 그 곳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벌어지는 상황과 캐릭터뿐이다.

‘펌프 보이즈’는 어지럽게 찢어진 청바지에 소매 없는 티셔츠, 거꾸로 쓴 모자와 헝클어진 머리를 한 캐릭터에서부터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이 개구쟁이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상황극은 실수도, 더듬거리는 대사도 없다. 꼬일 듯 꼬이지 않는 즉흥적 상황이 관객을 유쾌하게 할 뿐이다.

관객들이 공연장에 들어와 막 자신의 자리를 찾을 때 객석에서 능글맞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L.M이다. 물론 멋지게 말을 받아치는 사람도, 쑥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실 당황하는 쪽은 관객들이다.  
또 한명 Jim은 나르시시즘에 빠진 듯 무엇도 의식하지 않은 채 무대에서 나지막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그리곤 어떠한 신호도 없이 극이 시작된다. 관객들은 또 한 번 당황한다. 딱히 설명도 없이 그들의 성격, 스토리, 분위기 등 모든 것을 보여지는 대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은 매우 자유롭다는 것을...

초반에 무작정 펼쳐진 상황에 어리둥절했던 관객들이 가장 몰입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게임 장면이다. ‘어떻게 뮤지컬에서 게임을 할까?’라는 질문이 무색할 만큼 모두 열성적이다. 관객석을 반으로 나눠 팀을 가른 후 관객들에게 율동과 환호를 유도하고 경쟁하게 한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관객들도 결국 이 부분에서 왕성한 집중력을 보이게 된다.
결국 신나게 게임을 벌인 후 이긴 팀의 좌석 중에서 추첨하여 상품까지 나눠준다. 이 대목에서 다음 이야기가 과연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하지만 역시나 그들은 능청스럽게 다음 상황을 만들어 나간다. 그 상황들은 실로 관객들을 정신없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이것이 ‘펌프 보이즈’의 매력일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극에서는 주인공 2명 이외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두 배우의 영향이 너무도 큰 것이다. L.M 역의 송용진은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장난기 어린 그의 모습은 주유소의 쾌활한 젊은이를 표현하기에 적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Jim 역의 조정석은 또렷한 눈을 가졌다. 그로인한 선명한 그의 이미지는 조정석이라는 배우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극 안에서 볼거리가 두 남자 배우 밖에 없다는 것은 위험하다(실제로 객석의 반응은 그들의 팬이 대다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뮤지컬은 관객의 반응에 따라 극이 유동성 있게 변하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배우들이 관객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에 몰입 된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연기는 관객들도 극에 몰입하기가 힘들게 한다.  극장 안에 밀집된 에너지를 흡입하여 극대화된 감정의 깊이를 뿜어내는 배우, 스스로의 에너지만으로 관객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배우에는 큰 차이가 있다. 폭발력을 느끼게 하기에는 전자가 더 유용할 것이라 본다. ‘펌프 보이즈’의 배우들은 관객과 작품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게임보다 관객을 몰입시키는 일이 우선 일 것이다.

콘셉트 뮤지컬이란 기승전결의 형식이 아닌 하나의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계속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형식을 빌린 ‘펌프 보이즈’는 극적인 요소가 많이 배제되어 있다. 그러고도 관객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유별나게 경쾌한 콘셉트 자체는 높이 살만 하다.
그러나 있어야 할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상황의 하나하나가 짜임새 있게 흘러가야 한다. ‘펌프 보이즈’는 무대 자체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이 좀 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무대구조가 필요하다. 또 이 특수한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재미를 더욱 부각 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고속도로 옆 주유소와 커피숍이라는 설정에 대해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굳이 필요 없는 설정이라면 그것은 낭비이다.

어쨌든 누가 뭐래도 ‘펌프 보이즈’에는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현실을 잊게 하는 즐거움이다. 복잡한 도시의 거리와는 동떨어진 고속도로 옆의 주유소는 우리를 몽상가로 만든다. 게다가 그곳엔 젊음이 있다. 이 얼마나 짜릿한가? 그렇게 ‘펌프 보이즈’는 나이와 일 따위의 현실에 반항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편한 청바지 차림에 차를 끌고 서울 외곽으로 떠나보자. 숨이 트이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면,  바로 그것이 ‘펌프 보이즈’가 추구하는 즐거움일 것이다.


공연장 : 대학로 예술마당
공연일시 : 2007.09.18.
연출 : 이지나
캐스트 : 조정석, 송용진


김유리 yuri400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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