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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공길戰, 거칠 것 없는 인간들의 거친 삶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공길戰’은 연극 이(爾)(원작 김태웅)를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영화 ‘왕의남자’와 작년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이(爾)와는 또 다른 해석으로 새로이 태어났다. 특히 ‘문화게릴라’로 불리고 있는 이윤택의 손길로 만들어져 화제가 된 작품이다.

- 500년 전의 이야기, 현 시대에서 그 진짜 모습을 드러내다
이미 연산과 공길의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스토리를 알고 있는 관객들은 연산과 공길의 사랑에 큰 애틋함은 없다. 다만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토해내는지가 궁금하다. 이 작품은 그 동안의 공길의 이야기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영화가 가장 한국적인 비주얼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드라마틱함을 주었다면 뮤지컬 공길戰은 좀 더 확연한 캐릭터에 힘을 실어 준다. 공길은 더욱 더 여자에 가깝고 녹수는 더욱 표독스럽다. 그리고 장생과 연산은 내면의 유약함을 숨기기 위해 겉으로 더욱 남성성이 강조된다. 반면, 각 캐릭터의 내면은 더욱 숨겨져 있다. 진심을 말하는 것인지 거짓을 토하는 것인지, 또한 과연 누가 악인(惡人)인지 선인(善人)인지 알아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인물들의 사이사이 흐르는 내밀한 감정을 읽어낸다.

- 왕, 비단 도포에 싸여 권위를 잃다
녹수, 장생, 공길 그리고 우인들까지 거침없이 왕의 권위를 넘나든다. 왕의 침실을 훔쳐보는가 하면 시종일관 왕에게 훈계를 하고 호통을 친다. 이미 왕은 왕이 아니다. 공길戰은 그가 얼마나 나약하고 가여운 인간인가를 작품 내내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이 왕을 그토록 비루한 인간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단지 연산이 ‘포악한 왕’이었던 점만을 보여준 점이 아쉽다. 왕을 위한 변명도 필요한 듯 보인다. 왕은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마음 하나 뉘일 곳 없었다. 그렇기에 암울한 궁에서는 더욱 공길의 여성성이 빛을 보인다. 다 가졌지만 아무것도 없는, 그래서 더욱 외로웠던 왕은 비참한 생의 마지막 놀이 한 판을 맞이한다.

- 우인들의 소학지희(笑謔之戱), 그 속에 숨은 의미에 무게를 싣다
우인들의 소학지희가 매우 돋보인다. 특히 연기와 춤이 함께 어우러지는 광대들의 춤사위는 전통의 모양에 컨템포러리(contemporary)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이들의 춤이 화려하고 역동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유로운 그들의 내면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이며 흥겨우면서도 슬픔을 담고 있다. 우인들의 노골적이고 상스러운 성(性)적 표현은 권력과 가식에 대항하는 이들만의 방식이다.    

- 왜 ‘눈’인가?
이 작품의 절정은 바로 첫 장면이다. 노여움의 탈과 갈기갈기 찢어진 공길의 장삼은 슬픔에 찬 왕을 휩싼다. “내가 다 죽였소”하며 낮은 목소리로 흐느끼는 연산과 그를 노려보는 탈 속 두 쌍의 눈동자들은 음산하기까지 하다. 이 작품으로 인간의 ‘눈’을 다시보고자 한다. 우인들은 왜 ‘장님놀이’인가? 연산은 왜 장생의 ‘눈’이었나? 왜 장생은 두 눈을 잃고 나서야 공길의 마음이 보이나?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은 인간의 ‘눈’이 아닌가 보다. 인간은 두 눈 멀쩡 뜨고도 못 보는 것이 있다. 바로 ‘진심’이다. 인간들은 자신이 가진 ‘진심’을 잊고 또 그만큼 잊힌 채 살아가고 있다. 곳곳마다 눈뜬 봉사들 천지다.

- 음악,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놓치다
극 속의 다양한 음악은 각 에피소드별로 독립적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통일감이 부족하여 극이 음악의 지배를 받는 듯 보인다. 스트링(string, 현악기)의 실내악 반주에 애절한 해금 멜로디, 스탠다드한 피아노 발라드, 강한 비트의 록, 몽환적인 재즈 등,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음악적 양식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극과 융합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전체적으로 멜로디는 특징이 없고 평범하다. 이 멜로디에 비해 편곡은 지나치리만큼 짙고 다양한 색깔을 보인다. 전체적으로 이 여러장르의 음악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즉 캐릭터를 분명하게 하지도, 감정을 더 끌어 올리지도, 음악으로 무엇을 말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선한 도전은 높이 살 만 하다.

- “마지막으로 한판 놀고 싶소”
슬픔에 가득 찬 연산의 궁은 우인들의 소학지희에도 크게 웃지 않았지만 그들의 마지막 한 판 놀이를 허락한다. 이 상스러운 대사의 놀이 한 판은 이들의 마지막을 더욱 비극으로 내몬다. 공길戰은 삶과 죽음, 권력과 희생, 사랑과 욕망의 부자연스러운 동거를 그려낸다. 이들의 엇갈림은 권력인지 욕망인지 사랑인지 구분할 수도 없지만 이들의 마지막 놀이 한 판에 크게 웃는다. 인간은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두 발로 세상을 걸으며, 입으로 사랑을 말하고, 두 손으로 권력을 쥐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자신의 것이 아니다. 마치 한 순간 사라질 안개와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것도 놓지 못하는 묘한 인간들은 생의 마지막에 와서야 그것을 안다. 바로 이 뮤지컬 공길戰처럼 말이다.

뮤지컬 공길戰, 9월 15일 충무아트홀
연출_남미정
예술감독_이윤택
출연_김재범, 홍경수, 정유희, 박원묵 등

공정임 kong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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