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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질러진 꿈을 위한 제3의 이야기,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400년이 넘게 사랑받은 세계의 명작소설 ‘돈키호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로 1965년 뉴욕에서 초연된 이후 2002년까지 수십년에 걸쳐 브로드웨이에서 5번이나 리바이벌 되었다.
신성 모독죄로 감옥에 끌려온 극작가이자 배우인 ‘세르반테스’는 지하 감옥 안에서 죄수들과 함께 자신의 소설 속 이야기로 즉흥극을 펼친다.

- 아득하게 빨려 들어가는 음악의 향연
이 작품의 음악적 완성도는 깊이 성숙된 시간의 축복을 받은 듯 하다. 극의 시작 전 울려지는 서곡(overture)은 돈키호테의 주옥같은 곡들로 채워진다. 트럼펫의 강한 울림으로 시작해 피콜로, 트롬본 그리고 이어지는 클라리넷과 호른의 중후하고도 간명한 멜로디는 작품전체를 아울러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신나는 3박자 리듬은 드라마틱한 관악 편곡과 함께 스페인의 정열처럼 심장을 뛰게 만든다.
깔끔한 관악 편곡은 전체적으로 매우 훌륭하다. 각 관악기의 특색을 고려한 편곡으로 가장 매력적인 음색 조합이 돋보인다. 가령, 돈키호테가 달려 나가는 장면에서는 중고음의 금관악기가 미끄러지듯이 빠른 움직임으로 그와 발을 맞추고, 감옥에서 누군가 끌려 나가는 장면에서는 저음의 바순이 음산하고 두려운 멜로디로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특히 ‘알돈자’가 노새끌이들에게 처참하게 희롱 당하는 장면에서 이끌어낸 음악적 완성도는 비극을 절정으로 그려내는데 큰 몫을 한다.
드라마틱하고 흡입력이 강한 멜로디는 빠르게 혹은 느리게 진행되어 기악적인 움직임으로 작품전체를 지배한다. 관악 반주는 독립적이며 멜로디와 대등한 움직임을 보인다. 리듬의 세련된 분할과 멜로디의 도약은 고전주의과 낭만주의의 음악적 형식을 모두 담고 있으며 음역이 매우 넓고 탄탄한 코러스의 음악적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배우들의 가창력이다. 완벽한 남성합창은 그 역동성과 중후함을 더해 더욱 드라마틱함을 주었으며 ‘돈키호테’를 따르는 ‘산초’의 연기와 가창력은 극의 생기를 더해 준다. 주연배우는 물론 조연 배우들 모두가 넓은 음역대를 자유자재로 소화하며 독특한 목소리와 빼어난 가창력으로 제 역할에 각각의 살아있는 생명을 심어주었다.
극 속 ‘맨오브라만차’의 음악은 마치 전등과도 같이 관객들의 단단했던 감성을 비춘다. 빼어난 음악적 감흥은 무대위에서 분수처럼 흩어져 객석 구석구석 스며들고 관객들은 그것을 충분히 느끼고 향유한다.

- 관객을 깨우는 ‘대사’와 끝없는 감흥
이 작품이 현시대에도 소통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쏟아내는 감흥에 있다. 세상은 변했어도 진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풍차를 괴물로 착각하고 허름한 여관을 웅장한 성이라 하며, 면도대야를 황금투구라 하는 등 말도 안되는 억지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자아내지만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그의 단 한마디가 그들의 잡다한 생각을 바로잡는다. 극 속의 ‘돈키호테’가 가장 크게 말하는 바는 ‘꿈’이다. 그를 미치광이 노인네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그는 더 큰 소리로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미친짓’이라고 말한다.
극 속의 ‘돈키호테’는 현재 우리 스스로가 가장 많이 말하고 있는 단어, 바로 ‘꿈’과 ‘사랑’을 시처럼 읊어 내려가고 있다. 현 시대에 ‘미쳤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사람들은 아마도 힘든 현실에도 ‘꿈’을 놓지 못하는 사람과 또, 힘겨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렇듯 허망하고 어이없는 ‘돈키호테’의 스토리가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 있다. 바로 ‘꿈’과 ‘사랑’에 대한 열정이다. 또한 이 작품은 삶의 매순간 종종 나태와 피곤함을 느끼는 관객들에게 일종의 후련함을 안겨준다. 내가 못하고 있는 말들, 내가 못하고 있는 행동들을 그가 대신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바로 뮤지컬 ‘맨오브라만차’가 현 시대에서 더욱 돋보이는 이유이다.

- 아주 확실한 목적성을 부여받은 웃음이 주는 진중함
극 속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주인공 ‘돈키호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그들이 ‘돈키호테’의 일부로 보여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를 보좌하는 자랑스런 길동무 ‘산초’는 ‘돈키호테’보다 더욱 엉뚱하다. 그는 어리숙하지만 매우 밝은 성격으로 극의 분위기를 이끈다. 또한 ‘산초’외에도 정신이 나간 ‘돈키호테’를 걱정하는 조카와 그녀의 약혼자, 신부님, 여관주인 등은 매우 뛰어난 기량으로 그들만의 캐릭터를 극 속에서 살려낸다. 그들의 속마음으로 체스게임을 벌이는 장면이나 ‘산초’가 ‘돈키호테’의 편지를 ‘알돈자’에게 전해주는 장면, 여관주인이 ‘돈키호테’에게 기사작위를 내려주는 장면 등은 생(生)을 언제나 직시하고 있는 이 작품의 주제를 가볍고도 진중하게 건드리면서 관객들을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이 작품이 무겁고도 넓은 그들의 주제를 ‘웃음’이라는 코드 없이 풀어내려 했다면 관객들은 무척이나 힘들어했을 것이다. 어두운 지하 감옥에 내리쬐는 그 햇살 같은 웃음이 허무맹랑한 ‘돈키호테’의 가르침을 더욱 진중하게 만들었다.

- ‘슬픈 수염의 기사’ 돈키호테, 그 허무맹랑한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다
‘현실은 진실의 적이다’라는 대사처럼 어떤 변명도 진실 앞에서는 힘이 없다. 이 간단한 진리를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돈키호테’의 휘어진 칼처럼 현 시대의 진리는 그 길을 잃었고 힘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진리는 더욱 특별한 권능을 부여받는다.
죽음을 맞아하는 돈키호테의 마지막은 슬프지 않는데 눈물이 난다. 무엇이 그를 강한 믿음으로 그토록 강하게 만들었는지를 알게 된다면 현실에 안주하려는 우리 자신을 다스릴 줄 알게 되지 않을까? 그의 마지막 노래 ‘Impossible Dream(이룰 수 없는 꿈)’이 울릴 때 관객들은 마치 도약을 위해 의지할 곳을 찾은 기분이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우스꽝스러운 몸싸움을 벌이는 ‘돈키호테’지만 둔탁한 대지의 소리처럼 진중하게 마음 깊숙이 그의 노래가 울린다. “꿈을 이룰 수 없어도 운명의 길을 따르리라. 슬픔을 견딜 수 없다 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그의 이 노래로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끊임없이 오가는 감흥을 느껴보자. 그리고 그가 그토록 말하는 ‘정의’가 대체 뭔지 한번 더 깊숙이 생각해 보자.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8월4일 LG아트센터
연출 데이비드 스완
출연 정성화 김선영 권형준 최민철 등

공정임 kong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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