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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댄싱 섀도우 [Post Performance]

 

모든 태어난 것들은 죽고 죽은 것들은 어딘가에서 다시 되돌아온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 회귀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뮤지컬 댄싱 섀도우는 그러한 회귀를 노래한다.

댄싱 섀도우는 태양군과 달군의 전쟁에 휘말려 낮에는 태양군에, 밤에는 달군에 조공을 하며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콘스탄자 마을 여자들의 이야기다. 가장 연장자이자 우두머리 격인 ‘마마’를 위시한 그녀들은 전쟁으로 인해 떠나간 남편과 자식들을 그리워하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군인들에게 ‘난 필요해, 좀 더 붙어봐요 가까이’라며 인간의 양면성을 표출한다. 단, 나무들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소녀 ‘나쉬탈라’만은 군인들이 땔감으로 나무를 베가는 것을 반대하며 숲을 지킨다. 그러던 어느 날 ‘나쉬탈라’는 달군과 태양군 사이에서 박쥐처럼 도망 다니며 살아남은 나무꾼 ‘솔로몬’을 구해주게 된다. 숲을 지키던 ‘나쉬탈라’는 숲을 파괴하는 ‘솔로몬’과 사랑하게 되지만 ‘나쉬탈라’의 사촌인 ‘신다’가 솔로몬에게 반해 그를 유혹하여 ‘솔로몬’의 아이를 가진다. 이 사실을 안 ‘나쉬탈라’를 포함한 삼각관계의 세 사람은 괴로워한다.
그 때 마침 태양군과 달군이 협력하여 다른 나라 군사들과 맞서 싸운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 동안 태양군과 달군 양쪽에 모두 조공을 바쳐왔다는 사실이 탄로 나고 ‘마마’는 군인들의 신임을 잃는다. 한편 숲에서 ‘신다’의 아이를 놓고 괴로워하던 세 사람은 흩어져 엇갈리게 된다. 적군이 들이닥친다는 소식을 듣고 태양, 달군 연합군은 숲을 태워버리기로 결정한다. 이 때 이를 막으려던 ‘나쉬탈라’의 아버지는 대령의 손에 죽고, 경악한 사람들은 숲에 ‘나쉬탈라’와 ‘솔로몬’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군인들에 의해 숲은 불타고 ‘나쉬탈라’와 ‘솔로몬’, 그리고 모든 숲이 재가 되어버린다. 모든 상황을 눈뜨고 볼 수밖에 없었던 콘스탄자 여인들은 망연자실해 한다. ‘솔로몬’의 아이와 함께 남은 ‘신다’, 그리고 ‘마마’는 그래도 남은 건 씨앗만한 희망과 새 생명이라며 잿더미뿐인 숲을 어루만진다. 그전에는 절대 들을 수 없었던 숲의 소리, ‘나쉬탈라’와 ‘솔로몬’의 목소리가 드디어 콘스탄자 여인들에게도 들려온다. ‘기다려 달라고. 새 생명으로 돌아올 자신들을 기다려 달라고’.

변칙적인 드럼 리듬으로 시작한 ‘댄싱 섀도우’는 이어지는 이국적인 아이리쉬 음악과 실감나는 나무 세트,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독특한 의상, 배우들의 낭창한 노랫소리로 그 매력을 발산한다. 이 이국적인 분위기는 낯익은 것과 낯선 것의 결합에서 온다. ‘산불’이라는 우리나라 소설을 외국인 스텝들이 풀어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의 남한 군과 북한군을 달군과 태양군으로, 등장인물들도 외국이름으로 바꾸어 낯설음을 부각시켰다. 즉, 뮤지컬 댄싱 섀도우는 낯익은 것들에 대한 낯설음의 미학을 전달한 작품이다.
작품의 후반부에 더욱 확실히 나타나는 자연으로의 회귀는 비단 자연뿐이 아니다. 인간 존재 자체로의 회귀이기도 하다. ‘마마’와 ‘신다’가 그토록 원하는 도시는 곧 오늘날의 현대 문명을 뜻한다. 거미줄처럼 얽힌 지하철, 건조한 인간관계, 사이버 문화… 그녀들은 자연에서 벗어나 사람의 홍수, 미디어의 홍수 속으로 빠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결국 희망은 불타버린 숲에서 찾게 된다. 생명, 자연, 인간의 근원인 그 곳에서.
다만 배우의 체격에는 무리일 성 싶은 안무와 단조로운 세트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는 아마 댄싱 섀도우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작품이 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형태론적 과제일 것이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배경이지만 전쟁의 참상, 비뚤어진 사랑의 결과, 자연으로의 회귀는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신모아 ilovernb@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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