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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임리뷰]뮤지컬 <바람의 나라>

 

뮤지컬 2007 <바람의 나라>
2007년 5월 10일
연출 이지나
출연 고영빈 여정옥 홍경수 도정주 등


이 작품은 김진 원작의 만화 <바람의 나라>를 뮤지컬로 각색한 것으로 고구려 무휼왕의 거스를 수 없는 운명과 사랑을 중심으로 엮어낸 판타지 뮤지컬이다. 작년 초연되어 올해 다시 리메이크 되는 작품으로 작년에 비해 극 곳곳에 디테일함이 느껴지며, 특히 폭넓고 다양한 음악과 비주얼한 무대 셋트가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한국 고전의 이야기를 미래적 시각으로 엮어 상상력을 극대화시켰다는 점에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을만하다.
서울예술단의 <바람의 나라>는 5월 25일까지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 바람의 운명, 무휼
‘무휼’은 왕이 되었지만 군사를 담보로 한 구신들의 압력에 ‘이지’와 혼인한다. 그는 사랑하는 ‘연’을 지키지 못하고 아들 ‘호동’과도 다른 부도(한 국가가 나아가야 할 이상향)를 꿈꾸며 상극을 이룬다. 하지만 그의 죽은 형 ‘해명’의 혼령이 이승에서 그를 돕고, ‘해명’의 군사 또한 얻게 된다. ‘괴유’와 ‘마로’ 그리고 누이인 ‘세류’ 까지 그의 곁에서 고구려의 부도를 향해 뜻을 함께 한다.
극은 ‘무휼’의 정신적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숙명에 외로운 길을 걸어가며 “왕이 대체 뭐냐”고 반문하는 왕, 그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한다. 이 작품은 ‘무휼’의 인간적인 면은 배제한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고 너무 많은 이들의 희생을 받은 ‘무휼’, 그가 자신의 운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에 별 관심 없는 관객들은 단지 그의 외로움에 함께 마음 아파하며 해의 움직임을 쫓듯, 여기저기 감흥을 찾아 그와 함께 극 속에 머문다.

▲ 아득하게 빨려 들어가는 캐릭터와 대사 그리고 두드림과 액션
이 작품은 11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에피소드는 독립적이며 서로 큰 연관성이 없다. 각 인물은 무게중심 없이 모든 등장인물이 수평적으로 주인공이다. 각자는 독창 혹은 중창을 하면서 캐릭터를 확고히 지켜나간다. 또한 거의 모든 대사는 문어체에 가깝다. 시를 읽는 듯 읊조린다. 그들의 대사는 상대배우에게 말하는 것이지만 마치 객석의 관객들에게 던지는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극의 중심이 관객은 아니다. 가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늘어놓거나 역사적 진실과 맞물리는 허구적 상상력은, 극 속에서 관객을 크게 배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문어체의 대사가 주는 의미 있는 무게감이 더욱 빛을 발한다.
극의 하이라이트는 8장의 전쟁씬이다. 전쟁의 임박해오는 장면은 빠른 리듬으로 세분화 된 발자욱 소리와 습한 바람소리로 그 긴장감을 높였으며 칼소리, 방패를 두드리는 소리 등 장엄하면서 지극히 남성적이지만 리듬의 섬세함으로 완성도를 더욱 높인다. 전쟁씬은 최고의 앙상블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런 등퇴장으로 전쟁을 하는 두 무리들이 춤의 미학을 그대로 액션으로 승화시킨다. 이런 특징은 극의 전반에 머무는데, 1장의 ‘망무기굿’의 장면, ‘무휼’에게 숙청당하는 구신들, ‘호동’과 ‘무휼’의 갈등 등의 장면에서 크게 도드라진다. 이렇듯 춤의 미학은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다. 숨가쁜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쏟아내는 역동성은 이 작품이 현시대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 형식미학(形式美學)으로 둘러싸인 영상과 조명 및 무대셋트
무대는 마치 깊은 가을밤에 펼쳐진 흐드러진 암향 같다. 철저하게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장성이 짙다. 이 무대가 아니면 다시는 못 볼 것 같다. 무휼이 등장할 때마다 지독하게 푸르른 조명으로 그 위엄은 돋보인다. 특히 구신들이 계략을 모의하는 장면은 형광색 조명으로 그들의 간사함과 비열함을 드러내었으며, ‘연’이 ‘호동’을 지키려다 죽임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검붉음으로 그 긴박감을 표현하였다. 한순간 과거였다가 현재가 되고, 죽은자와 산자가 공존하는 등 자칫 극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 장면들은 움직이는 계단식의 무대와 조명으로 그 혼란스러운 공간을 채운다. 이렇듯 허상과 실재의 공존은 무대의 입체감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무대의 길이가 긴 ‘토월극장’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다.
빼어난 영상미는 관객의 이해를 돕고 각 장면의 ‘이미지’성을 더욱 드러내도록 한다. 영상은 ‘무휼’과 ‘해명’ 그리고 ‘호동’의 운명을 다독거리듯 읊어준다. 또한 ‘이지’의 첫날밤, 외로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바람에 흔들리는 창밖의 흑백 영상이 매우 애처롭다. 어둡고 비극적인 그녀의 마음을 음악과 영상이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뛰어난 영상과 조명으로 작품의 짙은 색과 향이 묻어난다. 이 사실성과 환타지는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극의 전반에 머무른다.

▲ 아버지와 아들, 각자의 ‘부도’를 꿈꾸다.
‘호동’과 ‘무휼’의 애증은 ‘연’의 죽음보다 훨씬 가슴 아프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주몽왕과 유리왕, 유리왕과 해명태자, 유리왕과 무휼왕으로 그대로 대물림해 왔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험한 산과 같다’는 호동의 대사가 더욱 절절하다. 결국 ‘호동’은 자결하고 극은 비극으로 결말짓는 듯 보인다. 하지만 운명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그들이 만들어갈 ‘부도’가 궁금하다.

▲ 무휼의 ‘광시곡(狂詩曲)’
성난 바다처럼 지독하게 푸르른 ‘무휼’의 심장은 이미 그에게서 떨어져 나와 없다. 그들이 쏟아내는 분노와 그들이 빚어내는 시간은 거센 물살에 씻겨 둥글한 돌이 만들어지듯 현시대에서는 판타지로 다가온다. 마치 한곡의 뜨거운 ‘광시곡(狂詩曲)’을 듣고 나온 기분이다. 민족적, 영웅적, 서사적 스토리가 몽환적 이미지로 잘 어우러져 있다. 하지만 그들의 푸르름은 아름다움보다는 웅장함에 머무른다. 깊은 겨울 잠든 가지에서 봄의 생명력을 읽듯 읊어 내려가는 숨겨진 ‘무휼’의 이야기는 그 웅장함으로 ‘서울예술단’의 끊임없는 도전의식과 함께 강한 끌림으로 절정을 다한다.


공정임 / kong24@hanmail.net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7년 5월 18일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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