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1.2.25 목 13:00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뮤지컬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

 

평범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사랑이야기가 여기 있다.
‘사랑’, 그야말로 흔하디 흔한 소재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그만큼의 무궁무진한 이야기꺼리를 내놓는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 ‘사랑’은 인간 개개인의 다양함과 결합하므로 어떤 흔한 사랑이라도 같을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이 극은 ‘사랑’이 주제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결론은 내리지 않는다. 그 결론은 관객에게 맡길 뿐이다. 그래서 특별하다. 그 자유로운 특별함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첫 번째 이야기 - 너무 가까운..그래서 더 먼 사이, 친구
이들은 아주 오랜 친구다. 그래서 스스럼없는 사이이며, 그래서 늘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도 잘 한다. 그리고 그 상처를 감싸주는 법도 잘 안다. 한창 싸우면서 마치 결혼이 인생의 목표인양 “’니가 그래서 결혼을 못하는거야!” 라며 으름장을 놓고는 또 어느새 “그 마음 내가 알지!”라며 마음이 맞는다. 반복되는 싸움에서 사실은 그들이 서로를 아끼고 있음을 그들보다 관객이 먼저 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놓아진 ‘진실게임‘, 그것이 이 이야기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코믹스러운 코러스의 등장은 매우 독특하며 통통 튀는 음악과 함께 활기 넘치는 웃음으로 다가온다. “진실을 말해요, 그대의 진실만을!” 이들 코러스는 남녀의 진실하지 못한 대답에 대한 관객들의 속마음을 노래한다.
사람들은 친구들끼리의 사랑은 ‘우정(友情)’이라 칭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우정’은 사랑 앞에서 관대하며 세월 앞에서도 강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먼 사이, ‘친구’다. 그들이 실재 연인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극 속에서 그냥 티격태격하는 그자체로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삶과 조화를 이룬다. 그것이 ‘시간’ 아니, ‘나이’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

두 번째 이야기 - 미워할 수 없는 남편, 그리고 아내
이 이야기 속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느닷없는 웃음에 관객들은 마음을 빼앗겼다. 인물들의 정확한 캐릭터 속에 관객들은 녹아들었다. 배우들의 나무랄데 없는 연기는 쉴새없이 빠르게 사실감을 전달한다. 극 중간 깜짝 등장하는 앙상블은 최고의 조화로움을 노래하며 이 부부의 이야기에 한껏 힘을 실어준다.
사고뭉치 남편이지만 그를 믿고 의지하는 아내, 그리고 무심한척 하지만 그녀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남편, 그래서 그들은 그 어떤 부부보다 행복하다. 그리고 그를 쏙 빼닮은 ‘아들’까지, 이렇게 그들은 일반적인 사랑이야기가 범하는 평범함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이들 모두는 세상의 가운데서 그들만의 과감한 인생을 누리고 있다. 감히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는 인생의 중심에서 말이다. 이 똑같은 헤어스타일의 두 부부는 그렇게 서로의 간절한 부름에 공명(共鳴)하며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 - 벼랑 끝에선 사랑, 끈을 놓지 못하다.
이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사랑이 없었다면 이들이 저렇게 힘들지는 않았을까? 지난날 뜨겁게 사랑했었지만, 남편의 병으로 인해 그들은 바닥을 치닫는 증오로 가득 차 있다.
극은 스토리가 주는 심각성으로 매우 어둡지만 밝아오는 새벽이라는 시간적 상황과 이상하게도 조화로움을 이룬다. 아내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성경책마저 등을 돌린 삶의 끝에선 버둥거림,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가 보다. 죽음이 두려운 남편은 “내가 사라져야 니가 행복할까..”라며 새벽공기에 얼굴을 맞댄다. 사실은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그것을 누가 알려줘야 할 것만 같다. 관객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이 안타깝다.

네 번째 이야기 - 귀여운 후배 녀석, 그녀의 남편으로 찍히다.
첫 장면, 술을 잔뜩 먹은 다음날 여관방에 함께 누워있는, 아니 뻗어있는 선배와 후배가 있다. 후배의 계략(?)에 넘어간 남자선배는 그녀의 남편감으로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나 보다.
이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매우 귀여운 여자후배의 통통거림으로 꽉 차 있다. “책임져!”라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는 마치 권능을 부여받은 듯 선배를 꼼작 못하게 한다. 그리고 선배는 얼토당토않게 그녀의 미래의 남편이 되어버린다.
극 속에서 그들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며 결혼에 대한 각각의 다른 의미를 토해낸다. 새 인생이 시작된 듯 들뜬 여자와 인생이 끝나버린 듯 좌절하는 남자, 이들은 극단적인 두 갈래만을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결혼에 대한 흑백논리를 강요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가벼움 속에 사랑에 대한 나태함과 피곤함을 잊게 해주는 활력소가 있다. 그들이 지금 저 곳에 함께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 알고는 있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랑에 대한 상상력이 결국엔 싹을 틔워 이 이야기 속에서 웃고 있다.

다섯 번째 이야기 - 시간은 충분해
오랜 세월을 서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온 60평생, 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40년 동안 서로를 사랑해 왔다. 그리고 지금 할아버지는 남은 여생을 할머니와 함께 하고픈 작은 바램을 노래한다. 할아버지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꿈’이라고 한다. 사랑한다는 그 말이 그렇게 어려워 젊은 날을 그냥 보냈던 게 못내 후회스러운 할아버지, 그는 이제 그녀에게 남은 꿈을 펼쳐 보인다.
이들은 서로를 유채꽃과 소나무에 비유한다. 그렇게 서로를 평생을 기억한 그들이다. 언제나 그렇듯 자식을 걱정하고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걱정하는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시간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자신이라고 했던가? 사랑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노래하는 그들은 여느 사랑하는 연인들과 다름이 없다.

여기 이 여관방의 다섯쌍의 남녀는 그 특유의 ‘친근함’으로 관객들과 호흡하며, 극과 배우들의 노련함이 매우 잘 어울려 연극인지 실재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10여년 동안 연극으로 다져온 만큼 탄탄한 스토리와 구조 및 배우들간의 기막힌 호흡 등, 세심하고 디테일한 면들이 극 속에 그대로 묻어나 뛰어난 연출력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 모두는 남녀 사이의 갈등 해소로써 ‘소풍’을 선택한다. ‘내일 소풍 가자!’ 이 한마디로 화나있던 마음을 푼다. 세상의 어떤 사랑도 부럽지 않다. 늘 함께하던 가장 평범한 것이 서로에게 가장 경이로운 존재임을 이 작품에서 알려준다.
뮤지컬의 매력 또한 여기저기 튀어나온다. 간주 중에 대사를 넣어 빠른 진행을 유도한다던지, 특히 적절한 부분에서의 신나는 노래는 더할 나위없는 분위기 메이커이다.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호응하고 그에 배우들은 더 큰 웃음으로 보답한다. 하지만 일부 진부한 멜로디 라인과 지나치게 다양한 음악장르가 등장함으로써 극의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등 오류를 범하곤 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인생이라는 그릇은 무엇을 담아도 참 아프고 힘에 겹다. 그 사이사이에서 빛나는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견뎌낼지 막막한 삶이다. 누구에게는 가벼운 별것 아닌 ‘사랑’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인생을 통째로 갖다 바친 ‘사랑’일 수도 있다. 어쨌든 세상 모든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사랑이라는 것을 곳곳에서 만나고 있다. 단지 자신들은 그것을 모를 뿐이다. 사랑, 그것이 내 심장의 그늘위로 햇살을 쏟아낼 때의 그 경이로움이란 그 어떤 진귀한 것보다 더 빛날 수 없다. 불에 구운 흙이 뒤틀리면서 더욱 단단해지듯, 사랑에 아파하는 이 세상 모든 이들이 더 깊고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을 향해 다함께 노래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을 우리가 해요!”라고.


공정임 / kong24@hanmail.net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테이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