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는 지금 ‘하이서울 페스티벌’로 70~80개의 축제가 열리고 있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이다. 그 열기가 대학로에서 서울 전역 곳곳까지 퍼져 있다. 지난 9월 21일과 22일,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가 ‘이용인’과 ‘김판선’이 아르코예술 대극장에서 그 열기를 촉진시켰다.
현실은 이상의 적, 이용인 ‘소녀와 죽음’
이용인의 ‘소녀와 죽음’은 현실과 이상 속에 갈등하는 우리 자신의 내면을 대변한다. 맞춰질 수 없는 현실과 이상의 퍼즐은 모순적이고 비관적이지만, ‘소녀’의 염세적이지 않은 의지는 붉고 온기로 빛나며 희망적이다. ‘이용인’의 숨결로 춤추고 있는 ‘소녀’는 우리 모두의 자아에게 호소하며, 수수하고 과장되지 않은 움직임으로 진실하게 다가온다.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졌다. 첫 번째 파트인 ‘죽음’은 거칠고 매혹적인 현실 사회의 단면이다. 현실 사회는 두려운 존재이자 매혹적이며 거부하기 힘든 힘의 존재이다. 전자음악에, 무채색의 단조로운 의상을 입은 다섯 무용수들은 독창적이며 거침없다. 율동적이고 유연한 그들의 움직임은 하염없이 거미줄을 뽑아내는 거미를 떠올리게 한다. 거미가 실을 뽑아내어 거미줄을 만들 듯, 점과 점, 선과 선으로 이어지는 라인의 연결성은 공간을 가득 채우며 4차원적인 거미줄을 형성해 나갔다. 그 신비로운 거미줄은 우리가 쳐놓은 덧이며, 동시에 저항할 수 없는 사회의 모습으로 이상을 가두려하는 듯 보여 진다.
타자와 자아 사이에 혼란의 길을 걸어가는 ‘소녀’, 그녀의 여정은 무거운 전자음악과 대비된 클래식 선율을 타고 전해진다. ‘소녀’의 절도 있지만 연결이 부드러움 움직임은 ‘죽음’ 앞에서 한 없이 작은 존재이지만, 결코 초라해지지 않는 소녀의 강한 의지였다.
군무와 솔로는 밀도 있게 배열되어 시각적으로 끊어짐 없는 공연을 선보였다. 음악의 호흡과 춤의 호흡 또한 조화롭게 짝을 이룬다. 무용의 아름다운 본질은 현실의 무자비한 비포장도로를 미화 적으로 개선해가는 매력에 있다. 움직임이 충실한 ‘이용인’의 무대는 관객을 끌어가는 외유내강적인 카리스마로 다시 한 번 그 매력을 발산시켰다.
부조리의 순간을 포착하는 도발적인 무대, 김판선 ‘moment’
김판선의 ‘moment’는 이미지로 각인되는 무용이었다. 그의 예리한 표현력은 강한 심상으로 기억을 지배하며, 일반 관객들에게도 흥미롭게 인식될만한 비범함으로 번뜩인다. 내면으로부터 정념이 베어 나오는 몸의 이미지와 실질적이며 은유적인 소품들의 이미지는 찰나의 순간을 파고들며 관객의 단말기에 메시지로 전이된다.
언어의 장벽이 없는 무용은 ‘상징성’으로 그 장점을 고조시키며 해석의 길을 폭 넓게 열어준다. 이에 상징성이 강한 김판선의 ‘moment’는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절대자와 추종자, 다른 절대자의 등장으로 형상화된 인간의 부조리는 절대자와도 같은 지도자를 따라야하는 무용인들의 현실, 넓게 확대해서는 돈과 권력으로 경계 지어지는 암묵적인 계급층의 모습으로 투사되어진다.
신과 인간, 철학과 실존, 집단과 개인 간의 물음으로도 시도되어지는 ’moment’의 무한대적 발산은 인간근본의 수수께끼를 거침없이 토로하는 도발적인 무대였다.
이정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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