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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performance] 새로운 합(合)을 찾아가는 움직임, 최지연의 ‘천축(天竺)’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무가 최지연의 작품 ‘천축’을 동양적이다, 서양적이다를 정의내리는 것부터가 무의미한 일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안무가 최지연을 비롯한 창무회의 무용수들이 보여준 움직임과 그 외의 것들은 모든 것을 하나로 모으는 ‘합(合)’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사운드다. 무대의 양 끝을 오가며 달리기를 반복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사물놀이를 배경으로 한다. 한국인의 정서와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 하는 방법으로 작품의 문을 연 점이 이후 작품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한다. 여기에 무용수들이 직접 입으로 뱉어내는 구음과 비와 바람, 천둥 등을 연상케 하는 자연의 소리가 더해져 별다른 장치 없이도 무대를 자연의 한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자연의 소리와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보여주는 조화의 미(美)는 움직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음악과는 별개로 빠름과 느림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작품의 이완을 결정짓는 요소가 된다.


움직임만 보자면 작품 ‘천축’은 전통의 신내림 장면을 보는 듯 하다. 몸 전체를 부르르 떨며 요동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다분히 격렬하고, 광적인 최지연의 움직임은 한국적인 요소 중에서도 무속신앙, 그 중에서도 신내림을 택한 듯 보인다. 특히 안무가 최지연이 무용수로서 보여주는 독무는 팔을 휘젓고, 손으로 자신의 몸을 쓸어내리는 등의 많은 상체 움직임과 입으로 끊임없이 주문으로 보이는 듯한 중얼거림을 내뱉는 모습이 전형적인 한국적 정서를 풍기고 있다.

한국적 컨템포러리의 선두주자에 서 있는 창무회가 보여주는 최지연의 작품 ‘천축’은 실타래라는 오브제의 등장으로 그 절정에 다다른다. 각자가 가진 하얀 실타래를 중심에 위치한 최지연의 위에 거침없이 풀어헤치는 동작은 마치 새로운 종류의 무속신앙적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실을 풀어내는 행동은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문제처럼, 같은 동작을 하고는 있지만 결코 하나의 모습으로 모아지지는 않는다. 실이 모아져 엉키는 곳은 한 곳이지만 그 실을 쉬지 않고 풀어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하다가 중간에 멈추는 사람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가 갖고 있는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오브제인 실타래는 결국 한데 엉켜 모두가 공유해야만 하는 문제로 변화된다. 어느새 소복이 쌓여 엉켜버린 실은 어느 순간 그 아래에 깔려있던 최지연의 격렬한 움직임으로 풀어지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보여주는 최지연의 움직임은 마치 자신의 업, 혹은 이 사회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풀어내기라고 하듯이 광적이고 처절하다. 각각의 격렬한 움직임을 보이던 무용수들은 최지연이 실타래를 털어냄과 동시에 변화의 국면을 맞게 된다. 모든 것의 시작은 각자가 갖고 있는 문제였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엉켜있음을 인지한 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조화를 이루는 단계에 접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천축(天竺)의 역할을 하는 최지연에게 개개인들이 모아지고 한 곳을 응시하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천축’은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한국적 요소들의 합(合)의 결과물로 세계적으로 통용될만한 컨템포러리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움직임과 음악, 의상 등 모든 것이 말 그대로 한국적인 것, 전통에 기초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합해져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모던한 느낌의 완성품이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안무가 최지연이 작품 ‘천축’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조화’,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분이기도 하겠다.


조하나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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