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정 댄스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김윤정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무용가 중 한사람이다. 활발한 창작활동을 통해 꾸준한 소통을 시도해온 김윤정은 ‘2006 올해의 예술상’ ‘2007 무용예술상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평론가들과 관객의 주목을 사로잡고 있다.
이번 2008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초청된 김윤정의 작품 ‘베케트의 방’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2007년 ‘자유젊은무용’을 통해 첫 선을 보인 이 작품은 작년에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초대되어 큰 호응을 얻어 올해 앵콜 무대를 갖게 되었다. 이번에는 신작 ‘Einmal(단 한번의…)과 함께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 올랐다.
‘베케트의 방’은 제목 그대로 사무엘 베케트의 문학과 관련이 있다. 베케트 문학의 키워드인 부조리의 문제를 춤으로 풀어낸다. 김윤정의 작품은 무용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영화, 문학, 연극, 음악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김윤정을 스치고 간 여러 장르의 영감들이 빈 무대 위로, 배우들의 몸짓 위로 쏟아진다.
무대 위에 세워진 베케트의 방은 온통 흰 색이다. 세 면의 흰 벽들은 그 안에 놓인 것들을 입체적으로 반사한다. 3D 영상을 입히자 공간은 금세 입체적인 건축물로 바뀐다. 색색 깔의 옷을 입은 배우들의 몸과 동작은 흰 벽 안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배우들은 움직인다. 존재자체를 부조리하게 드러내겠다는 듯 장애를 안고 있는 그들의 걸음걸이는 어긋나있고, 움직임은 일그러졌다. 낯선 동작은 공연 내내 계속된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관객 역시 무대 위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삶을 겪고 느끼는 것처럼 그들의 몸짓도 그저 겪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문학을 바탕으로 하는 김윤정의 무용은 말을 가지고 있다. 군데군데 서사를 지니고 있다. 그들의 움직임 속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연애를 하고, 함께 일상적인 삶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한 모습조차도 낯선 동작을 통해 괴상하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 이어질 수 없는 단발마의 말들은 혼란스럽다. 말 속에는 삶과 죽음이 있고, 희망과 절망이 있다. 이 속에서는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베케트의 작품 속의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다. 고도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이곳에 오는가 오지 않는가.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불확실한 고도를 믿으며 살아간다.
매끈하게 움직이는 무용수들이 걸친 형형색색의 옷들은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옷 역시 세상의 부조리를 보여준다. 옷은 소리 없는 말이다. 한 사람의 신분과 정체성을 고스란히 떠벌리고 있는 언어다. 김윤정은 옷을 벗는다. 옷 안에 다른 옷이 이어진다. 그렇게 이어진 옷은 마치 껍질처럼 몸과 연결되어 그녀가 움직이는 곳마다 따라다닌다. 한 사람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을 믿어야 하는가 들리는 것을 믿어야 하는가. 어떤 판단도 흩뜨려놓겠다는 듯 무대는 옷으로, 그리고 무용수들의 동작으로 엉키고 흐트러진다.
김윤정의 신작 ‘Einmal(단 한번의…)’은 독일과 공동 제작한 작품으로, 여기에도 무라카미 하루키, 데이비드 린치 등 서사매체에서 얻은 영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무대의 스크린 위로 도시의 영상이 펼쳐지며, 한순간에 무대를 강남 도로 한복판으로 이동시킨다. 뿐만 아니라 무대 위의 미니 자동차, 입체적인 건축 모형은 호기심을 김윤정의 무용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낸다.
운명적인 만남, 하필 그 장소가 교통사고 현장이었다면? 비극적이고도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놓고 네 명의 무용수는 그날의 사건을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만남과 동시에 이별인 셈이다. 사고현장의 당혹스러움을 표현하면서도 그들의 움직임은 경쾌함과 흥겨움을 놓치지 않는다.
이날 오른 김윤정의 두 작품은 말이 몸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네 명의 무용수가 마이크를 들고 말을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낯설기 짝이 없었지만,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몰입하게 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영상과 연극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연출은 낯설지만 분명히 신선했다. 무용수들의 말하기는 상대의 말을 다시 한 번 발화함으로써 말의 의미와 느낌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몸짓보다 더 많은 언어가 말로 전해져서인지, 이전작품보다 깊이 있는 울림은 덜했다.
두 작품을 통해 보여준 김윤정의 색깔은, 무용수들의 의상만큼이나 또렷하게 다가온다.‘<베케트의 방 & Einmal(단 한번의…)’은 텍스트로 영상으로 확장된 무용의 공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색깔로, 소리로, 이미지로 던져지는 무대 위의 수많은 말들은 낯설면서도 인상적이다. ‘베케트의 방 & Einmal(단 한번의…)’은 무용의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수영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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