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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명의 희곡읽기 11] 셰익스피어에 관한 진실 II

 

To be or not to be, That is a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어느 쪽이 더 사나이다울까?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받아도 참고 있어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밀려드는 재앙을 힘으로 막아,
싸워 물리칠 것인가?
죽어, 잠들다.
그것뿐이겠지.
잠이 들면 만사가 끝나 가슴 쓰린 온갖 심뇌와,
육체가 받는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면,
그건 정말 바라는 생의 극치가 아닌가!
죽어 잠을 잔다.
잠이 들면 꿈을 꿀 테지?
이승의 번뇌를 벗어나서 영혼의 잠이 들었을 때,
그 때 어떤 꿈을 꿀 것인지, 이게 또 망설임을 주니…….
(중략)
나그네 한번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저 미지의 세계가
결심을 망설이게 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
그러니 알지도 못하는 저승으로 날아가느니
차라리 지금 받고 있는 재앙이 낫다고 여기는 것도 당연하지.
이런 걱정들 때문에 우린 더 겁쟁이가 되고,
결의의 저 생생한 혈색도 파리한 병색이 그늘져,
충전하던 의기도 이내 꺾여
마침내는 실행의 힘마저 잃고 마는 것이 고작 아닌가.

-<햄릿> 3막 1장 중 햄릿의 독백-


지난 편에 말한 극장 및 제작 여건들을 알고 나면, 셰익스피어 희곡의 한 가지 특징이 이해될 수 있는데 바로 줄거리에 있어서의 독창성의 결여이다. 극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는 어떤 의미에서 관객의 기호를 재빨리 파악하고 순간의 요구를 충족시키는데 탁월했다.
“몇 가지 예외가 있지만, 셰익스피어는 극중 인물이나 플롯을 스스로 창조한 경우가 없다. 그는 민간전승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주제를 취해왔다. 그러나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빌려온 줄거리를 크게 손질하기도 했고,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른 내용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러한 창작태도 덕분에 당시 관심을 끈 문제들과 화젯거리가 된 주제들, 말하자면, 영국 역사, 낭만적인 음모, 복수, 광기, 마술 등을 용이하게 다룰 수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전업 작가가 되면서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고치는 데 재능을 나타냈다. 즉 셰익스피어는 보통 이야기를 새롭게 지어내는 천재라기보다는 주어진 이야기를 재구성 혹은 재해석하는 천재라고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유롭게 다른 작품들로부터 소재를 빌려왔고 자기 의도에 맞추어 그것을 자르고 붙이고 늘리고 틈矗� 메웠다. 셰익스피어가 어떤 식으로 구성과 인물 짓기를 통하여 생기 없는 이야기에 생동감을, 평면적인 인물에 입체감을, 평범한 주제에 새롭고 깊은 의미를 부여했는지 알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경력은 크게 4개의 단계로 구분되고 있다. 1기는 습작기, 즉 연극을 배우고 실험한 시기, 2기는 등장기로서 보다 나중의 사극들과 즐거운 희극의 시기, 3기는 원숙기, 심각한 희극과 위대한 비극의 시기, 4기는 절정기로 ‘진지하면서 유쾌하고 아울러 고요하면서 아름다운 시’라고 말하는 낭만극의 시기가 그것이다.
3기에 쓰인 <햄릿>은 1600년 ‘지구극장’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폭넓게 채취한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역시 앞선 여러 작품들에서 소재와 주제를 차용했다. <햄릿>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은 셰익스피어 이전의 작가로 <스페인의 비극>을 쓴 토마스 키드가 쓴, 지금은 없어진, 똑같은 이름의 극작품이다. 이 작품은 종종 , 즉 <최초의 햄릿>으로 언급되고 있다. <리어왕> 역시 <리어왕과 그의 세 딸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작자 미상 작품이다. <심벌린>은 복카치오의 <데카메론>(1350)에, <겨울이야기>는 로버트 그린의 <시간의 승리>에 빚을 지고 있다.
특히 교육을 받지 못한 하급석의 관객들이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열광했다. 그 이유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보편성을 어느 정도 밝혀준다. 그의 연극은 문맹자라도 즐길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어 다양한 수준의 기호를 만족시켜 주었다. 즉, 그 속에는 전쟁, 일대일의 싸움, 레슬링, 결투, 거리에서의 말다툼, 폭동 장면, 그리고 광포한 장면 등 흥미 있는 행동이 많다. 또한 망령이나 마귀처럼 초자연적 존재들이 많이 등장하여 원시적인 흥미를 끌기도 했다. 이와 같이 셰익스피어는 볼 만한 구경거리와 화려한 행렬의식, 종교적인 행사를 보고 싶어 하는 그의 관객을 만족시켰다. 그는 바보나 광대도 등장시켰는데, 보다 지각 있는 관객은 이들이 다른 극적 사건과 미묘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을 보거나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이러한 인물들이 하급석의 관객들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익살, 춤, 곡예를 제공하였다. 또한 모든 연극에는 많은 노래와 음악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관객들이 취향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었다. 그리하여, 단순히 여흥삼아 극장에 갔던 관객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풍부한 즐거움을 발견했던 것이다.

당시의 무대 관습에 철저했던 셰익스피어는 극작과정에서 극장 및 무대 공간에서 장면을 어떻게 전개시킬 것인가를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엘리자베스시대의 무대에서 장면이 구성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하여 당시에는 무대배경장치(scenery)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대배경장치/장면이라는 용어가 영국 무대에 등장한 것은 17세기 후반의 일로, 소위 이탈리아식 액자무대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이때 장면은 연극이 발생하는 장소와 무대의 배경을 일치시킴을 의미한다. 따라서 셰익스피어는 구체적인 배경 묘사에 중점을 두지 않고 자유로운 시공간을 구축했다. 장면을 구성함에 있어 한 장면을 위한 특정한 장치가 아니라 이 장면, 저 장면에 두루 응용될 수 있는 장치, 다시 말해, 시간적으로 지역적으로나 불완전하고 불특정화된 공간이 셰익스피어 희곡의 무대배경에 나타난 특징이다.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희곡들은 각 장명의 첫 머리에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를 지적해 놓고 있다. <햄릿>의 첫 장면에는 망루, 두 번째 장면에는 ‘궁정’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필사본, 즉 셰익스피어가 공연을 위해 쓴 그의 희곡 원본에는 무대지문에 장소가 지정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장소에 대한 표기는 18세기에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이 편집되는 과정에서 편집자가 임의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로우(Nicolas Rowe)는 1709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최초로 편찬한 인물로, 그의 편집에 의해 그 이전의 원고본 등에는 없었던 막과 장의 구분이 생기고 장면마다 장소에 대한 지문이 수록되었다. 로우 이후의 많은 편찬본들은 대개 로우의 편찬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실내극장에서의 공연관습으로 인해 희곡에 막 구분이 생겨났고 사이사이 음악연주를 위한 시간을 두어야 했으므로 막 구분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빠른 장면의 전개이다. 가변성과 등퇴장을 통해 극적 연속성을 살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의 연속성과 그에 따른 동시적인 등퇴장은 암전상태(오늘날 우리는 장면이 바뀌었거나 시간이 흘렀음을 표현하기 위해 암전을 둔다. 그러나 햇빛이 쨍쨍한 대낮의 야외공연장에서 아무리 셰익스피어가 천재라 한들 암전은 불가능했으리라.)를 둘 수 없는 무대적 조건에 대처한 방안이다. 그렇다고 해서 배우의 끊임없는 등퇴장만으로 장면이 연속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배우에게 지정해준 퇴장의 신호와 더불어 곧 이어 등장한 배우가 거리낌 없이 장면의 변화를 암시할 수 있는 무대의 가변적인 성격과 관객의 적극적인 수용이 효율성 있게 짜여야만 셰익스피어가 장면의 연속성에서 의도한 효과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햄릿>에서 장면의 연속성은 엘리자베스시대 무대관습의 총체적인 결과이며, 그에 따른 극작술에 나타난 하나의 중요한 특징이다.

당시의 관객은 무대의 삼면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에서든지 퍽 분명하게 볼 수 있었지만 똑같은 시각선을 갖지는 않았다. 그들이 본 것은 그들에게 극적인 효과를 일으켰지만 그림이나 사진식의 사실주의는 아니었다. 이 무대는 다른 종류의 극적 사실성을 부여했고 관객은 이에 익숙해 있었다. 당시의 관객들은 연극의 여러 부분에 내재된 이미지와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연극을 채우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네덜란드의 여행가이자 학자였던 드 위트(Johanness de Witt)가
1596년에 그린 ‘백조극장’스케치.



여기에는 무대 뒷 벽에 두 개의 문만 있지만 ‘지구극장’에서 공연된 희곡의 무대지문에는 양쪽 문 사이에 커튼이 쳐진 공간의 존재가 나타난다. 이 스케치에는 무대 위층에서 배우가 사용한 발코니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 극장 건물 꼭대기에 걸린 깃발이 극장이 공연 중임을 알려준다.



글 김지명(SMG tech 무대감독) jeem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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