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재현적 연극의 추세는 이미 국제적인 것이다. 90년대는 축제와 축제를 통한 해외교류의 시기이기도 했다. 90년대 한국연극의 포스트모던한 특성은 연극의 국제교류에 의해서도 설명될 수 있다. 91년 지정되었던 ‘연극영화의 해’의 국제연극제에 이어 97년의 ‘세계연극축제’와 ‘과천 마당극 축제’는 한달 반여의 기간동안 전세계로부터 초청한 수십 편의 해외공연들을 공연했다. 미국의 <빵과 인형 극단>의《콜롬보스, 신세계》, <라 마마 극단>의《트로이의 여인들》등은 기존 연극의 패러다임을 바꾼 공연으로 국내 연극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축제와 해외교류의 장은 새로운 세기에도 계속 가속적인 속도로 펼쳐질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화적 다국적 기업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에 따른 글로벌리즘에 의해 세계를 하나의 마을로도 만든다. 반면 그동안 서구 열강의 지배에 눌렸던 문화권에서는 새롭게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하고 추구하려는 자각 또한 활발하게 된다. 지난 세기말 이런 자각들에 의해 비롯된 문화상호주의는 문화의 전 세계화와 그에 대한 반발도 함께 심화될 새로운 세기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밖에도 앞으로의 새로운 십년에는 페미니즘과 청소년 연극, 노인을 위한 연극이나 동성애자를 위한 연극 등 마이너리티를 위한 연극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 것이며 시끌법썩한 비언어적 연극에 대한 반동으로 언어중심의 조용한 일상의 연극 또한 다시 주목을 모을지 모른다. 최근 주목을 받는 신예 조광화나 박근형의 연극들은 바로 이런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지난 세기말에 시작된 또 하나의 주목할만한 움직임은 종래의 극장공간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청소년들의 유흥가로 변한 대학로의 악취를 피해서, 뛰어오르는 극장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혹은 보다 신선한 공기와 영혼을 숨쉬고 싶어서 이미 일부 선각적인 연극인들은 동숭동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극단 <무천>과 <미추>는 경기도로, 극단 <연희단 거리패>는 경남으로 거처를 옮겼다. 야외공연도 차차 늘어나고 있다.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 그 자체도 예술이 돌아갈 수 있는 인간적 환경일 수 있다. 연극과 환경사이의 관계를 사유하는 에콜로지적 관심도 커져가고 있다.
앞서 우리의 연극감각과 연극인의 연령이 급속히 젊어져가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지만 이런 우려 속에도 희망적인 요소는 있다. 그것은 연극예술의 새로운 담당자인 신세대들의 가치관의 변화이다. 전반적인 경제사정이 좋아진 탓인지 삶의 가치관이 다양해지면서 예전과 같이 권력이나 높은 보수나 명예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살기를 원한다. 자신이 원하면 훌륭한 요리사, 탐험가, 배우나 연출가로서 일생을 보낼 용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연극환경만 갖춰진다면 이들 미래의 연극인들 상당수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감각으로 연극에 헌신할 것이다. 젊은 연극인들이 예전에 없던 자신감과 확신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연기의 변화에서 드러난다. 새로운 세대의 연기자들은 비록 인간성찰에 의한 깊은 연륜은 아직 지니지 못했지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자유롭게 표현할 줄 안다. 특히 몸의 표현이 강조되고 있다.
당분간 연극관객의 숫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관적이다. 일반 대중들은 더욱 더 영상매체나 비디오 게임 등으로 몰릴 것이며 뮤지컬을 제외한 순수연극은 학교 레포트를 위한 일부 대학생이나 연극영화과 학생들이나 혹은 소수의 열렬한 연극 매니아적 관객들에 의해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의 대부분의 문화예술계는 관심사가 다양해지고 세분화되면서 소규모의 동호인이나 매니아들의 역할이 커질 것 같다. 연극을 만드는 사람 못지않은 열정과 관심을 지닌 연극애호가들이나 동호인들이 연극문화의 주요 요소로서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앞으로의 십년동안 가장 많은 노력과 사고의 큰 전환이 요구되는 분야가 바로 문화지원정책이다. 오늘날 세계 어느 문화선진국의 경우에도 순수 공연예술이 매표수입만으로 자립자존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문화선진국일수록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에서 공연예술에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위기에 빠진 연극예술에 근본적이며 지속적인 영양을 공급하는 일은 우리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오늘날 연극은 대량생산과 유통의 경제구조 속에서 스러져가는 수공업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지난 90년대에도 정부지원이나 국공립 연극단체들의 기획공연들이 그나마 빈사의 연극에 핏기를 불어넣었었다. 수혈은 계속되어야 한다. 다만 현재의 문화지원책을 그 개념과 방법론면에서 많이 보완, 확대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기업들도 이익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측면에서 연극예술에 뜨거운 관심을 가져줄 것을 기대한다.(문화와 나, 2000.5)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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