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근대 연극사는 우연찮게도 대개 십년단위의 변화의 마디를 지닌다. 정치적 변화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60년대적 연극의 성격이 있고 70, 80, 90년대적 연극의 특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소위 세기말이니 세기 초니 하는 선입적 관념이 실제 사회문화 현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지난 90년대 연극의 특성은 세기말적인 감각만능과 해체의 징후를 여실히 드러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소위 금세기 초 새로운 십년은 어떻게 새롭게 펼쳐질 것인가? 그것을 점치기는 쉽지도 않고 또 아직 너무 이르다. 다만 세기말과 세기 초에 걸쳐있는 그 20년의 연극이 전반적으로 어떤 위기와 그리고 전환이라는 점에서 지속적 측면을 지니고 있으리라는 점 정도를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현 시점에서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확산과 생명공학의 무서운 발전이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두려움과 기대로서 바라보게 하듯이….
지난 90년대의 연극의 위기적 측면은 그 이전인 1980년대의 과도한 정치적 연극에 대한 급작한 탈출로서, 그리고 전세계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탈가치적 문화현상의 일부로서 이해될 수 있다. 마당극으로 대표되던 80년대의 정치극은 80년대 말 국내의 일련의 민주화조치와 동구권 공산 이데올로기의 붕괴와 함께 그 저항의 타켓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90년대의 연극은 급속히 사회적, 역사적 관심을 잃어갔다. 그 대신 정치적 무력감, 삶에 대한 개인적 회의, 본능이나 감각 같은 초시대적 관심사를 희극적이며 유희적인 분위기로 풀어내거나 뮤지컬과 같은 가벼운 볼거리로 눈을 돌렸다. 절대적이거나 거창한 형이상학적 진리를 거부하며 국가간의, 순수와 대중문화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고 후기산업사회의 감각적 소비문화와 결탁한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세계적 유행이 이런 가벼움의 풍조와 맞아떨어졌다.
그 결과 연극무대에서 진지함과 언어와 무엇보다 인간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떤 일말의 진지함도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욕구에 의해 웃음으로 해체되었고 진지하며 합리적 사고를 표상하는 언어는 감각적인 스펙터클과 이미지와 사운드에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따뜻하게 숨쉬는 생명체로서의 인간 대신 차가운 공연적 기호들이 무대를 차지했다. 궁극적 진실을 거부하는 시대적 분위기는 극의 주제보다는 형식에, 무엇을 말하느냐보다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게 했다. 많은 연극이 내용보다는 연극이라는 형식 자체에 눈을 돌리는 메타연극적 발상에 주력했으며 극중극 형식의 유행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90년대는 또한 80년대 경제 호황때 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한 연극의 상업주의가-적어도 IMF 이전까지-맹위를 떨치던 시기였으며 이를 대변하는 것이 뮤지컬이었다. 90년대는 실로 뮤지컬의 시기였는데《캣츠》나《레 미제라블》같은 본토 뮤지컬이 다녀갔을 뿐 아니라 국내 뮤지컬의 기량도 크게 성장했다. 대표적으로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했던《명성황후》나 전용극장까지 짓고 장기공연 체제에 들어간 <학전>의《지하철 1호선》들을 들 수 있다. 때로는《불효자는 웁니다》류의 악극이 중년 관객을 울리기도 했다. 이런 뮤지컬의 활성화는 대중연극의 기반을 넓힌다는 긍정적 면도 있으나 이에 상응하는 순수연극을 전제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위기로 해석될 수 있다.
90년대 연극의 또 다른 위기는 정체성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의 마당극은 정치적 저항의 의미도 컸지만 아울러 전통연희의 현대화라는 점에서 평가받을 수 있다. 마당극 외에도 70년대 이래 우리 연극의 뿌리를 찾고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왔다. 개인적 관심이 지배적이었던 90년대에 들어와 이런 의식적 노력은 일단 수면 밑으로 잠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윤택이나 오태석의 작업들의 저변을 통해 맥이 이어지는 정도이다.
이와 관련해 90년대 연극 레퍼토리상의 또 다른 특색은 창작/번역극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87년 이래 저작권법의 시행도 영향을 미쳤지만 더 이상 서구희곡이라는 오리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중심해체의 경향, 그리고 무엇보다 희곡의 절대적 가치보다 공연적 재해석에 비중을 두는 포스트모던의 분위기가 작용했다. 이런 맥락에서 90년대 레퍼토리의 가장 특징적인 경향은 서구 고전의 재해석의 붐이었다. 특히 셰익스피어가 그 주된 대상으로서 한 해에도 수십 편씩의 셰익스피어가 그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공연적 모습으로 태어났다. 이는 서구 명작의 주체적 해석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부분 정체성과 예술적 완성도에서 크게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90년대 중반 이래 연극계는 좀 기이한 현상에 부딪치게 된다. 연예예술계를 선망하는 청소년들의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전국적으로 서른 개 이상의 연극영화과가 갑자기 신설된 것이다. 이에 따라 열악한 제작여건과 급속한 관객 취향변화에 주눅들어있던 40대 이상 중견의 현장연극인들이 상당수 학교 쪽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대학로에 중견 연극인들의 동공화가 빚어진 것이다. 뒤를 이어 삼십대 연극인들이 대거 부상하고 있지만 경륜 있는 연극인들의 연극 활동이 드물어짐에 따라 연극문화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90년대에 들어 한국 연극은 지나치게 젊어진 것이다.
30대가 주요 인력으로 부상됨과 함께 연극이 더욱 가볍고 유희적으로 변화하기도 했지만 아울러 공연의 규모가 축소되는 현상이 빚어졌다. 젊은 연극인들이 기획력의 한계로 소극장 중심으로 활동하다보니, 또한 긴 시간을 집중하기 싫어하는 관객의 취향에 맞추다보니 단막극이나 에피소드 중심의 극에 머물기 쉽다. 이와 함께 무대 공간 연출력의 부족, 극작 구성력의 부족들이 지적된 바 있다.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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