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남편들로 하여금 평화를 맺게 하려면 남자와의 접촉을 삼가야 해.
밤 시간대에 TV를 켜면 다양한 오락프로들이 시청자의 눈과 귀를 끈다. <웃찾사>나 <개그콘서트>와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쓴다. 부락, 마을을 뜻하는 Como라는 단어와 노래를 뜻하는 Ode의 합성어인 코미디(Comedy)는 말 그대로 부락의 노래이고, 확대 해석해 보면 마을을 떠돌아다니던 음유시인들의 노래라는 뜻도 된다.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이 음유시인들� 뉴스를 전해주는 소식통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흥미롭게 각색하고 풍자해서 들려주는가 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일 만한 음담패설을 늘어놓곤 했다고 전해진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희극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희극은 비극과 더불어 발전했다. 고대 그리스시대 비극경연대회였던 디오니소스축제에서는 작가들이 비극 3편과 희극 1편을 발표하는 것이 상례였다. 즉 비극의 정서가 워낙 심각하고 무거우므로 희극을 끼워 넣어 관객에게 숨 돌릴 틈을 준다는 것이 희극의 역할이었다. 희극이 주는 숨 돌릴 틈은 바로‘웃음’이다.
그런데 눈물과 웃음은 이야기 자체의 성질보다는 그걸 받아들이는 관객의 태도에 더 영향을 받는다. 앞서 <시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남이 하면 스캔들이요,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을 언급했듯이 같은 사태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비극과 희극을 구분 짓는다.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이요, 생각하는 자에겐 희극이다.” 비극을 볼 때에는 주인공과 동일시하려는 성향이 강한 반면, 희극을 볼 때에는 오히려 주인공이나 주변 사태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생각하고 비판하면서 보게 된다. 웃음을 통해 비평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희극이다. 우리가 미스터 빈의 신체적 유머를 볼 때 이를 자신에게 닥친 일로 여긴다면 절대 웃지 못 할 것임을 생각하면 희극의 특성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극(드라마) 장르는 크게 비극과 희극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을 구분 짓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종말의 형태이다. 비극은 주인공의 죽음과 파멸로 끝나는데 반해 희극은 조화와 화해로 끝을 맺는다. 희극의 마지막이 주로 마을 잔치나 축제, 결혼식 등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희극은 크게 시대상을 풍자하는 세태희극과 인간의 성격적 결함(구두쇠, 욕심쟁이, 호색한 등)을 부각시키며 인간관계에 치중하는 가정희극으로 나눌 수 있다. 완고한 아버지(주로 구두쇠이고 아들의 연인을 두고 경쟁하기도 한다)와 착한 아들, 그 아들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젊은 여인, 이 둘 사이를 오가며 메신저 역할을 하는 다양한 성격의 하인이 가정희극의 기본 구조를 이룬다.
이번에 만나는 작품의 작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기원전 448-380)는 기원전 400년 이전에 활동한 세태 풍자 희극작가로서 <기사 Knights>, <벌 Wasps>, <새 Birds>, <구름 Clouds>, <개구리 Frogs>등의 작품을 썼다. 편의상 이 시기의 희극을 구희극(old comedy)이라고 부르는데,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구희극만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시학>에서 워낙 상세하게 다루어져 구속과 제약으로 가득 찬 비극과 달리 (구)희극은 시간의 제약(하루 정도에 일어나야 한다)도 받지 않고, 공간의 사용도 훨씬 자유로우며, 등장인물의 수도 대규모이다. 구희극은 항상 사회와 정치, 문화 등을 조롱하는 투로 쓰여 있으며, 등장인물들은 대개 동시대의 인물을 빗대어 만들어낸 인물들로서, 이들 작품의 기본 착상은 해학 그 자체이다(예를 들어 <구름>은 당대의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를 풍자한 작품으로 그들이 뜬구름 잡는 허황된 언변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하여 인물들이 구름을 타고 허공을 떠다니며 이야기를 한다). 독설, 사회풍자, 개인비평, 외설성 등을 아리스토파네스만큼 표현할 수 있는 작가는 현대에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론이 길었다. 어찌되었든 이번에 우리가 만날 작품은 아리스토파네스의 <류씨스트라테 Lysistrata>. 그녀를 통해 장르는 다르지만 비극에서 이어온 드센 여자들의 계보를 이어가고자 한다.
때는 바야흐로 그리스의 모든 남자들이 펠로폰네소스전쟁으로 늘상 전쟁터에 나가고 여자들은 독수공방하며 집을 지키던 시절. 남자 없이 젊음을 잃어가고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아테네의 류씨스트라테는 그녀처럼 욕구불만에 가득 찬 여자들을 선동하여 남자들이 평화조약을 맺어 전쟁을 그만두게 하기 위한 계략을 세운다. 그녀가 내민 비장의 무기는 바로 남편들이 평화조약을 맺겠다고 맹세할 때까지 남편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 것. 이 말을 듣자마자 가뜩이나 굶주린 여자들이 오히려 반대하며 나서지만 류씨스트라테는 그런 그녀들을 설득해서 계획을 실행한다. 우선 나이 든 여자들이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하여 남자들이 전쟁에 사용할 재물을 빼앗아 전쟁을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젊은 여인들은 신전에 모여 남편들이 와서 돌아가자고 꾀어도 평화조약에 맹세할 때까지 돌아가지 않거나 남편을 만나 돌아가더라도 남편의 성적 욕구만을 자극시킨 채 잠자리는 결단코 거부하는 것. 여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해 이탈하려 하지만 류씨스트라테는 그런 여자들을 훈계하며 함께 목적을 달성하도록 고무시킨다. 한편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들은 고대하던 부인과의 잠자리를 거부당하자 타오르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공약을 교환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로써 아테네와 주변국에는 평화가 찾아오고 평화를 축하하는 잔치가 떠들썩하게 벌어진다.
이 작품은 남녀의 성을 풍자해 전쟁과 평화라는 상황에 적용시킴으로써 웃음을 유발한다. 또한 성의 희화화 이외에도 당시 남자들이 여자들을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확연히 알 수 있게 해 준다. 즉 중간 중간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을 보면 여자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우습게보고 전쟁이나 평화에 여자들이 참견하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한다. 남자들의 호전성도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다.
비극이 시대와 지역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룬다면 희극은 당대의 특정지역에 통용되는 문제들을 다룬다. 한때의 유행어라든가 희극의 풍자대상이 주로 당시의 저명인사들임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희극은 비극에 비해 깊이 있게 다뤄지는 예가 드물고 인물의 성격보다는 상황을 통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류씨스트라테> 역시 우리가 앞서 다루었던 <페드라>나 <메디아>처럼 인물의 성격적 특색이 강하게 드러나기보다는 전쟁에 대처하는 여자들의 자세와 여기서 파생되는 남자들의 입장이라는 상황적 요소가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작품은 당시 아테네 사회에 만연된 개방된 성 풍속도를 비교적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음란한 위트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우스꽝스러운 상황뿐만 아니라 풍자와 위트가 번득이는 대사가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들이 대개 동시대의 사건들과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지나치게 빈번하게 언급되어 있어 현대식으로 공연하기에 적절하지 않으나, 이 작품 <류씨스트라테>는 전쟁과 평화라는 상황이 다른 작품에 비해 현대에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오늘날에도 비교적 자주 무대화된다.

글 김지명(SMG tech 무대감독) jeem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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