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99년 서울 연극제’는 두 가지의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고 하겠다. 첫째는 그 동안의 경연형식을 축제형식의 진행으로 바꾼 것이고, 둘째는 90년대 혹은 20세기의 마지막 연극제라는 점이다. 이 글은 ‘99년 서울 연극제’의 제도적, 진행적 측면보다는 참가한 공연 작품에 관해 평가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쓰는 글이다.]
세계적으로 20세기의 후반은 페미니즘과 젠더이론으로 들끓었다. 남녀의 개념은 더 이상 고정된 권위나 제약과 관념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식과 행동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 연극계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여성주의 연극은 단계적 발전상을 보이지 못한 채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주춤하다. 그러나 그 불씨는 잠재해 있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고도 하지 않는가.
《레이디 맥베드》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기존의 성관념을 해체했다는 점이다. 맥베드 부인에 내재되어있던 남성성과 맥베드에 숨어있던 여성성을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맥베드 부인은 모성까지를 거부하며 권력욕으로 치닫고 심리극 치료사로서의 정동환의 유약하며 희화화된 연기는 치료를 위한 전략이라기보다는 맥베드 안에 숨어있던 비남성성의 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연출자는 남녀의 전통적 위치가 전도된 성행위장면이나 연희장면에서의 남성 소프라노의 설정을 통해 이를 장면화하고 있다.
한편 생명공학에 의한 복제인간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모성의 담론을 부각시키게 된다. 《2031》은 정체성의 문제와 함께 어머니의 복제인 젊은 여성과 사랑하게 되는 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부각하고 있으며 《철안 붓다》역시 모성을 심판대에 올려놓는다. 이제 미래사회에서 모성은 필연적인 것인가? 작가는 남녀양성을 갖춘 유전자조작인간을 제시하며 자연인 어머니를 파괴의 여신 칼리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번 연극제에서 유일하게 현실의 일상성을 다룬 《훼밀리 바게트》에서도 여성성은 회의의 대상이다. 삶의 정체성을 잃고 부유하는 24시 체인점의 군상들 속에서 주인공이 그나마 구원의 가능성으로 여겼던 소녀는 화장실에 설치된 몰래 카메라에 의해 남성의 몸을 가진 것으로 포착된다. 파괴된 환상, 혼란된 정체성의 극단적 모습이라고 하겠다.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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