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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인간 20] 마무리와 시작의 사이 – (4) 중심에서 물러나는 인간

 

[이번 ‘99년 서울 연극제’는 두 가지의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고 하겠다. 첫째는 그 동안의 경연형식을 축제형식의 진행으로 바꾼 것이고, 둘째는 90년대 혹은 20세기의 마지막 연극제라는 점이다. 이 글은 ‘99년 서울 연극제’의 제도적, 진행적 측면보다는 참가한 공연 작품에 관해 평가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쓰는 글이다.]

20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예술(연극)의 소재가 다양해졌다. 기술문명의 발달과 가치관의 변화 등에 따라 인간의 생활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인간의 위상 자체에 변화가 오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이 우주의, 무대의 중심이라는 전통적 사고가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병복의《옷굿》은 옷이 주인공이다. 이는 일종의 전복적 의미를 지닌다. 작가-연출-배우-무대 및 의상이라는 서열에 반란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인간이 옷에게 중심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이병복은 ‘주어진 무대 시공에서 배우의 몸과 더불어 연소되는 옷들’의 ‘서러움’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창작의 계기를 밝힌다. 근래의《그, 불》이나《물체극》에서도 명목상은 인간이 주인공이지만 흙, 불, 바람, 밀가루 같은 물질이 무대 위의 사실상 중심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레이디 맥베드》에서도 밀가루는 사실상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거나 표현한다기 보다는 행위예술적 강조를 통해 인간과 동격에 놓여있다.

이번 연극제의 첨예한 화제는 유전자 조작이나 복제인간에 관한 연극들이다. 30대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두 작가가 함께 비자연적 인간이라는 획기적 소재를 들고 나온 것이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만화나 영화들이 주로 액션이나 SF적 스펙터클 자체를 부각했던데 반해 이 두 연극 작품의 경우는 매우 진지한 철학적 담론으로 이어진다. 《A.D. 2031, 제3의 날들》은 극작기교나 연출적 감각의 부적절성으로 첨단의 소재를 다루면서도 한 세기 전의 공연양상을 보이는 부조화를 보이고 말았다. 그러나 ‘인간 아닌 인간’들에 관해, 혹은 ‘인간 아닌 인간들이 파고드는 사고의 진지함’은 주목할 만 하다. 최근 가벼움과 허무주의에 물든 ‘자연인’들의 행각과 비교될 만 하다.

《철안 붓다》역시 생명공학에 의한 복제인간들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진지한 종교적 주제이다. 그 주제란 불교적 힌두적 생명관이요, 풀어 말하면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집착을 버리고 인조인간도 같은 생명체로 인간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참신한 주제를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도식적으로 풀어간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도 자연인들은 불멸에의 집착에 빠져있으며 붓다의 깨달음에 도달한 것은 실리콘의 몸을 가진 유전자 조작 인간이었다.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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