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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인간 19] 마무리와 시작의 사이 – (3) 고전작품의 자기화

 

[이번 ‘99년 서울 연극제’는 두 가지의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고 하겠다. 첫째는 그 동안의 경연형식을 축제형식의 진행으로 바꾼 것이고, 둘째는 90년대 혹은 20세기의 마지막 연극제라는 점이다. 이 글은 ‘99년 서울 연극제’의 제도적, 진행적 측면보다는 참가한 공연 작품에 관해 평가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쓰는 글이다.]

기존 작품을 재해석하는 경향은 원작의 해체와 다양한 해석의 쾌락을 부추기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 특징일 수 있다. 근래 들어 창작극과 번역극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렇다고 해서 좋은 창작극도 드문 우리 연극계에도 고전, 특히 셰익스피어를 자기화해서 공연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서울연극제에서도 이런 상황을 반영하여 몇 년 전부터 번안극을 참가대상에 포함시키기 시작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의 이런 공연들을 보면 재해석이라기보다는 자기화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아무리 셰익스피어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지만 원작에 내재한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낸다기 보다는 무대만들기의 목적이나 편의대로 공연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화의 보다 긍정적 의미로서 다시 만들기의 과정에서 정체성이 결과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햄릿 프로젝트》나《레이디 맥베드》는 앞의 범주에 가깝다고 하겠다.《햄릿 프로젝트》는 전후맥락에 대한 충분한 고려없이 햄릿의 광증만을 부각한 셈이 되었고《레이디 맥베드》가 보여주는 권력욕과 죄의식에 사로잡힌 여자의 모습 역시 굳이《맥베드》원작과 관계짓지 않아도 성립될 수 있는 보편적 인간상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석만이 연출한 브레히트의《하얀 동그라미》와 임영웅 연출의《고도를 기다리며》는 자기화의 강도나 양상은 다르지만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브레히트극에 고전적 모델링이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의 서사극의 핵심인 소외효과자체가 친숙함으로부터의 끝없는 배신을 요구하며 새로운 상황 속에서의 변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시대와 상황에 따른 수많은 세계의 브레히트, 한국적 브레히트가 가능하다는 데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김석만은 이번《하얀 동그라미》에서 한국적 대사번안과 움직임과 노래들을 시도했다. 그러나 알레고리의 보편성이 어설픈 한국화와 섞여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는 못했다.

자타가 공인하듯 임영웅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고도를 기다리며》는 자기화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다.《고도를 …》는 이제 전 세계 모든 현대인의 고전이다. 무의미하게 기다리며 시간을 메꿀 수밖에 없는 두 건달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공감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메꿔야 할 그런 지루함 시간들을 극중의 시간이자 공연의 시간을 통해 그대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 무료한 시간을 메꾸는 모습은 누구나 서로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초연때와 지금의 공연이 다르고 영국의《고도》와 일본의《고도》와 우리의《고도》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고도》는 가라앉은 사색보다는 떠들썩한 희극성을 강조하는 편인데 일부 평자들로부터 너무 가볍다고 지적받는 반면 많은 외국인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들었다. 아마도 한국인들의 화르쓰적 기질, 그리고 한국 연기자들의 유연성과 흥들이 오랜 공연경륜을 거쳐 자기만의 맛으로 무르익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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