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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인간 18] 마무리와 시작의 사이 – (2) 퍼포먼스성의 강화

 

[이번 ‘99년 서울 연극제’는 두 가지의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고 하겠다. 첫째는 그 동안의 경연형식을 축제형식의 진행으로 바꾼 것이고, 둘째는 90년대 혹은 20세기의 마지막 연극제라는 점이다. 이 글은 ‘99년 서울 연극제’의 제도적, 진행적 측면보다는 참가한 공연 작품에 관해 평가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쓰는 글이다.]

70년대 드라마센터를 중심으로 한 실험 이후 80년대를 거치면서 비언어적 연극이나 총체극으로 명명된 일련의 흐름은 90년대 이후 퍼포먼스라는 개념으로 모아질 수 있을 것 같다. 비언어적 연극이나 총체극에 있어 비재현적이며 감각적 총체적 표현을 중시하며 장르들이 서로 섞인다는 등의 특성 외에 퍼포먼스적 연극에 있어서는 내러티브나 의미구조가 더 철저히 파괴되고 연희자의 행위성이 더 강조되며 연희자로서의 자아가 더 부각되고 삶/예술의 경계가 더 희미해지며 상황성이나 우연성에 더 의존하게 되는 점등을 들 수 있겠다.

우리에게 있어 70년대의 이런 계열의 극들이 아르토나 그로토우스키적 형이상학에 뿌리를 두고 있었고 80년대에는 탈 서구적인 민중연희의 장으로서 부각되었다면 90년대에 이르러 이런 류의 연극들은 감각 자체의 탐닉과 해방적인 유희성의 경향을 띠게 된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난타》같은 작품이 그 예다.

이번 연극제에는 이런 퍼포먼스의 경향이 강화된 점이 우선 눈에 띄었다. 이는 지금까지의 연극제에서 언어중심의 보수성 경향이 짙었던 점과 대비되어 새시대의 문턱에 선 이번 연극제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극단측이 놀랄 정도로 관객층의 뜨거운 호응을 얻은《레이디 맥베드》는 작품의 출발이자 핵심이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이영란의 물체극과 원일의 음악 퍼포먼스와 구음, 그리고 서주희와 정동환의 연기 데몬스트레이션이 한태숙에 의해 혼융된 퍼포먼스는 완성도가 높아 극의 의미나 주제와 연관 짓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감각적 기쁨을 주었다. 그에 비하면 치료술로서의 극중극의 형식은 한 틀에 머문 셈이다. 예컨대 모든 퍼포머들이 유희를 벌이는 연회장면은 치료를 위한 극중극이라기 보다는 퍼포먼스 자체가 전경화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햄릿 프로젝트》는 감각적인 스타일리스트로서의 김아라의 면모를 발휘한 작품이었다. 그녀는 특히 야외극장인 죽산 캠프로 옮겨가면서 전통적인 공연어법을 해체함으로써 퍼포먼스성을 강화한다. 햄릿을 해체한 마로위츠의 의미마저 포기하고 햄릿의 광기만을 강조한 이 공연은 전자음악과 이미지와 무용 같은 연기자의 동작들을 통해 거의 의미가 배제된 도취적 퍼포먼스로 남아있다.

이병복의《옷굿》은 사실 세레모니성 이벤트냐 연극공연이냐의 정의구분이 모호할 만큼 획기적 발상에 의해 이루어진 퍼포먼스다. 삶과 예술, 현실적 인물과 극적 인물의 경계를 무화 시킨 이 공연은 어쨌든 공연의 지평을 넓혔다는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매우 정교하게 꾸며진 총체극식의 전반부와 의상 디스플레이식의 후반부 그리고 커튼 콜로 이루어진 이 공연은 한 편의 연극 작품이라 하기엔 매우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굿이라는 하나의 판짜기에도 아쉬운 점들이 있다.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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