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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인간 17] 마무리와 시작의 사이 – (1) 들어가며

 

[이번 99년 서울 연극제는 두 가지의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고 하겠다. 첫째는 그 동안의 경연형식을 축제형식의 진행으로 바꾼 것이고 둘째는 90년대 혹은 20세기의 마지막 연극제라는 점이다. 이 글은 이번 연극제의 제도적, 진행적 측면보다는 참가한 공연 작품에 관해 평가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쓰는 글이다.]

이번 연극축제를 긍정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행사를 위한 행사로부터는 벗어났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의 경연방식에서 흔히 발견되었던 바, 단지 희곡이 예심을 통과했다는 이유만으로 졸속 제작된 공연이나, 심사를 의식한 나머지 강요된 진지성이나 시대착오적 감각으로 관객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던 그런 몇몇의 연극들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이번 연극제는 대부분의 공연이 관객의 자발적 관심권으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일단은 축제의 기본바탕은 마련되었다고 본다.

이번 연극제가 내건 주제는 ‘양식의 재발견’이었다. 그런 주제와 관련해 이번 연극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주제에 따르면 우리 연극의 기존의 대표적 양식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구현된 공연들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공연들을 찾기는 힘들었다. 양식의 재발견이라는 주제에 수반되어야 할 전통의 문제나 정체성에 관한 진지한 탐구도 부족했다. 이를 다룬 세미나도 별 성과나 관심을 얻지 못했다.

97년부터 98년까지 내걸었던 국제, 혹은 세계연극제라는 명칭이 이번에는 슬그머니 없어졌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외국관객들과 축제전문가들이 몰려오는 명실상부한 국제연극제란 우리 현실과 아직 멀다. 우리에게 축제는 우선 우리끼리 없는 흥과 힘이라도 만들어보는 안간힘이요, 따라서 해외작품의 초청 역시 국제적 상호교류라기 보다는 우리에게 자극과 정보를 주는 인센티브 정도로 보는 편이 현실적일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해외초청공연에서 비록 로버트 윌슨의 초청은 무산되었으나 서구 고전의 품격과 향기를 실은 이태리 <피콜로>극단의《아를레끼노》가 오랜 여운을 남길 것 같다.

축제당국에서 내건 주제와 상관없이 이번 연극제의 특성은 동시대성과 다양성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감독은 작년까지 다소 보수적이며 문학지향적이던 참가작의 기준과 성향을 공연중심으로 대폭 바꿔놓았다. 오늘의 우리 연극의 현실이 그렇듯이 참가자들의 연령도 낮아졌다. 이런 한국연극의 동시대성은 또한 다양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는 기존 연극계에 늘 참여했던 오태석의《코소보》와 이윤택의《바보각시》외에 퍼포먼스성이 강한《햄릿 프로젝트》와《레이디 맥베드》, 이병복의《옷굿》, 마임 두 작품과 무용 두 편, 신인급의 장성희와 조광화의 논쟁적 신작, 중견과 원로 연출가에 의한 브레히트와 베케트, 그리고 변치않는 아웃사이더 격인 극단<76>의《훼밀리 바게트》를 섞어 놓았다. 이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연극계 식구들을 포용하고자 하는 고심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이번 연극제에는 공식 초청 못지 않게 눈길을 끈 자유참가작들이 많았는데 앞으로의 진정한 축제는 이런 주류 외적, 프린지적 공연에도 더 열린 애정을 보여야 할 것 같다.

연극제에 참가한 개별 공연에 대해서는 이미 평가들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번 축제에 동시대성과 다양성으로 나타난 여러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추출되는 경향들을 중심으로 논해볼까 한다. 이런 공통적 경향들은 99년 연극제의 특성이자 곧 오늘의 한국연극의 현주소이며 이제 새로운 십 년과 백 년을 기다리며 싹트기 시작한 우리 연극계의 움직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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