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제 6장에서 비극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며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를 사용하되 각종의 장식은 작품의 상이한 제부분에 따로따로 삽입된다.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바로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극시의 구성요소를 플롯, 성격, 사상, 조사, 노래, 장경(spectacle)의 6가지로 기술한다. 위의 정의에 따라 이 비극의 구성요소를 파헤쳐 보자.
우선 비극은 진지한 장르다. 희극이 인간의 추악한 면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면 비극은 숭고한 인간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속된 표현이 감정적 거리두기를 적절하게 나타내듯이 비극과 희극의 차이는 바로 관객에 대상에 대해 갖는 감정적 거리에서 비롯된다. 즉 관객은 비극의 주인공에게는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기 쉬운 반면, 희극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다. 나보다 나은 인간과 같아지려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크기란 진행되는 사건의 길이가 관객이 극장 객석에 앉아 공연을 보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정도여야 함을 의미한다. 앞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은 가능한 한 태양이 일회전하는 동안(24시간)이나 이를 과히 초과하지 않는 시간 안에 사건의 결말을 지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한다. 관객이 극에 몰입하려면 무대에서 진행되는 사건이 허구임을 인식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나치게 물리적으로 긴 시간을 공연한다든가 두세 시간의 공연길이 동안 장구한 세월의 흐름을 담아서도 안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극의 발단부터 결말까지 걸리는 시간을 하루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후에는 일종의 법칙처럼 간주되어 사건의 길이는 하루라는 원칙으로 정립되어 비극작가들을 옭아매는 근거로 작용한다. 바로 17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시대에 만들어진 3일치가 그것이다. 즉 하루의 시간, 하나의 장소, 하나의 사건이라는 제약을 작가들에게 부과했는데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작가는 혹평과 비난, 심지어 공연 중지의 상황을 겪기까지 했다.
이런 제약을 만들어낸 배경에는 당시 무대기술의 한계가 그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작품이 무대에서 공연되는 동안 허구임을 인식하지 않는 극적 환영(illusion)을 유지해야 하는데 장소가 바뀌거나 시간이 흘러도 물리적으로 이것을 표현할 수 없었으니 장소의 이동이나 시간의 흐름이 극적 환영을 깨는 건 당연했다. 따라서 극적 환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장소를 하나에 묶어두고 관람시간에 수긍할 수 있는 길이로 제약을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꿔 말하면, 오늘날 3일치의 제약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은 어떤 시공간도 무대기술을 통해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결된 행위란 플롯을 의미한다.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가진 사건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플롯이 바로 행동의 모방이다. 뒤에 오는 사건은 앞선 사건의 필연적 결과이며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견과 급전, 그리고 파토스라는 고통을 수반하는 플롯을 좋은 플롯이라 조건 지었다. 아울러 플롯의 주체인 행동자의 성격을 그 다음 중요한 요소로 두고 있다. 다음으로는 행동자들이 자신의 행동원리로 삼는 사상(그것이 작품의 주제라 할 수 있겠다)을 중시했다. 성격은 행동자가 무엇을 의도하고 무엇을 기피하는지 분명하지 않을 때 그의 의도를 분명하게 해준다. 반면 사상은 무엇을 증명 또는 논박하거나 보편적인 명제를 말할 때 담고 있는 내용이다.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란 운율이 있는 언어, 즉 시어를 가리킨다. 지난 호에서 언급했듯이 일상회화체가 등장한 건 1800년대 중반, 사조적으로 사실주의시대에 접어들면서였다. 이전의 희곡은 모두 시어로 쓰인 시다. 셰익스피어 인물의 독백이 모두 시였음을 상기하라. 비극은 고상한 인물이 주인공이니 그들의 입에서 고상한 언어가 흘러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시어는 직설적이기보다는 비유적이다. 그래서 사실주의 이전의 대사에는 비유적인 표현이 많다. 여담이지만, 사실주의 연극과 함께 등장한 일상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 이를 처음 대하는 관객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비극에는 비극만의, 희극에는 희극만의 운율이 있었다. 간혹 비극에서 신분이 낮은 인물에 한해서 산문체가 허용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맥베드> 2막 1장에 등장하는 문지기의 음란한 대사는 산문체이다. 비극의 주인공인 영웅이나 귀족은 시어를 써야하지만 신분이 낮은 인물에 대해서는 산문체를 쓰는 것이 허용되었다. 대부분의 비극은 살아남은 사람들 가운데 신분이 가장 높은 인물의 대사로 마무리한다. 그만큼 비극에서는 언어적 조건이 까다로웠다.
플롯과 인물(성격), 주제, 시어(조사)의 비극은 무대 공연을 통해 실현되었다. 노래와 장경은 무대 공연에 수반되는 요소이다. 그리스 비극에는 코러스라는 합창단이 있었다. 10-15명으로 구성된 이 코러스는 주인공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등장인물), 해설자 역할을 하는가 하면, “울고 싶구나” 하면서 관객의 반응을 미리 느껴주기도 하고, 장면의 처음과 끝을 구분지어주거나(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막과 장의 구실을 한 것이다) 그 자체로서 볼거리 역할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코러스가 플롯의 연결을 단절한다는 이유로 코러스에 반대했다. 또한 그는 장경이 우리를 매혹시키기는 하나 예술성이 가장 적으며, 작시술과는 가장 인연이 멀다고 말했다.
현재의 공연 구성요소와 비교해 볼 때 정반대의 배열이다. 지금은 오히려 플롯이나 인물보다는 노래나 장경에 더 큰 비중을 둔다. 비극의 구성요소를 보면 앞의 네 가지는 희곡의 구성요소라고 하는 편이 옳고 뒤의 두 가지는 공연의 구성요소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해 보인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공연보다는 희곡이라는 문학적 형식을 더 가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이는 아마도 공연은 일회적이고 그 결과를 보존할 수 없기에 가치를 두기 어려웠을 테고 공연보다 영속적인 언어/희곡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러한 비극이 구현하려는 효과는 바로 카타르시스다. 카타르시스는 비극이 궁극적으로 관객에게 미치는 효용이다. 다음 편에서는 바로 이 카타르시스를 집중 분석한다.

글 김지명(SMG tech 무대감독) jeem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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