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대 연극 레퍼토리상의 또 다른 큰 변화는 소위 창작극과 번역극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개화기 때 일본을 통해 서구적 희곡이 도입된 이래 우리나라 연극의 가장 큰 문제의 하나는 번역극에의 의존이었고 창작극의 부진이었다. 그런데 80년대부터 민족주의적 분위기 때문인지 창작극의 비중이 차차 커지더니 90년대에 들어서는 번역극이 비중이 크게 낮아졌다. 여기에는 87년이래 저작권법의 시행도 영향을 미쳤지만 더 이상 서구희곡이라는 오리진을 인정치 않으려는 중심해체의 경향, 그리고 무엇보다 희곡의 절대적 가치보다 공연적 재해석에 비중을 두는 포스트 모던의 분위기가 작용했다. 이런 맥락에서 90년대에 가장 주도적인 레퍼토리의 경향은 서구 고전의 재해석 공연이었다. 특히 셰익스피어를 한국적으로, 혹은 어떤 연출적 관점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공연한 경우가 많았다. 한 해에도 수십 편의 셰익스피어가 때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으나 재해석의 필연성이나 재구성의 창조성 면에서 함량미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재창조 작품들의 경우 창작/번역의 구분은 의미를 잃게 된다.
궁극적 진실을 거부하는 시대적 분위기는 극의 주제보다는 형식에, 무엇을 말하느냐 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게 했다. 많은 연극이 극중극을 비롯해 연극이라는 형식자체에 눈을 돌리는 각종 메타연극적 발상을 강조했다. 표피적 찰나적 감각을 즐기는 젊은 층의 취향과 젊은 연극인들의 제작능력과 구성력의 부족이 맞물려 90년대의 연극은 날이 갈수록 규모가 작아졌고 길이가 짧아졌다. 뮤지컬을 제외한 90년대의 연극은 젊은이들에 의한 소극장 창작극이 주도했는데 단막극 모음이나 옴니버스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개별 연극을 되짚어볼 때 90년대 연극의 대표주자는 극단 <연희단 거리패>의 이윤택이라고 하겠다. 그는《오구-죽음의 형식》,《불의 가면-권력의 형식》,《바보각시-사랑의 형식》등의 삼부작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근원적 욕구들을 새로운 연극적 형식으로 풀어냈다. 아울러 90년대 최고 화제작의 하나였던《문제적 인간-연산》과《어머니》로 이윤택 스타일의 인간탐구를 보여주었고《허재비놀이》나《느낌, 극락같은》으로 신체적 표현을 중시하는 양식적 실험을 제시했다. 또한《햄릿》,《파우스트》,《리어왕》,《폭풍》같은 고전의 재해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70년대부터 한국연극계의 중심에서 활동해오던 극단<목화>의 오태석은 90년대에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였다. 그는 전통적 양식에 탐닉했던 80년대와 달리 90년대에 들어 남들이 외면하는 사회현실이나 역사에 눈을 돌린다. 우리의 비정한 현실을 폭로한《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역사상의 테러리스트들을 새롭게 조명한《도라지》와《천년의 수인》조선족 동포를 그린《여우와 사랑을》전쟁을 다룬《코소보, 그리고 유랑》들이 그것이다.《백마강 달밤에》는 대동제의 형식을 빌어 90년대의 한 화두였던 화해의 문제를 다루었고《로미오와 줄리엣》,《서푼짜리 오페라》에서는 고전의 재해석을 시도했다. 90년대 중반부터 두각을 나타내 차세대 선두주자로 주목 받은 조광화는《남자충동》,《여자의 적》,《미친 키스》,《철안 붓다》,《오필리아》로 가족제도와 젠더문제에 폭발적인 에너지로 도전하고 있고 김광림은《그 여자 이순례》,《사랑을 찾아서》,《날 보러와요》로 휴머니즘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지피족》,《미아리 텍사스》을 올린 <극단 76>의 기국서는 후기 산업사회의 분열된 인간상을 뒤틀린 일상의 시선으로 잡아내고 있고 20대의 신예 장진이《택시 드리벌》,《매직 타임》등의 신세대적 희극성으로 주목 받았다. 지금까지 언급한 경우는 작가가 연출을 겸한 작가-연출가들로서 이런 작가-연출 겸업은 연출작업이 중시된 90년대 연극계의 또 하나의 특징적 현상이라고 하겠다.
이밖에 연출의 영역에서 주로 활동한 경우는《동지섣달 꽃 본 듯이》,《사로잡힌 영혼》,《오이디푸스의 여행》,《햄릿 프로젝트》,《봄날》들을 화려한 여성적 스타일로 무대화한 <극단 무천>의 김아라와 30대 연극인의 리더로서 연기자들과의 집단창작을 통해《전쟁음악》,《매직 아이스크림》,《미스터 맥케토씨》들을 발표한 극단 <작은 신화>의 최용훈들이 있는데 이들 역시 강력한 번안이나 집단창작을 통해 사실상의 작가적 역할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
90년대에 순수 희곡작가로서 활동한 경우는《영월행 일기》,《뼈와 살》,《물고기 남자》등을 발표한 이강백 정도라고 하겠다. 이상의 문제작을 발표한 연극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극단을 가지고 활동해왔지만 이는 리더의 역량과 단원들의 헌신에 밑받침된 소수의 성공적인 경우이다. 90년대 들어 배우지망자가 늘고 극단은 제작의 경제적 부담에 시달리면서 전속 극단원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공연을 올리는 극단제도는 많이 와해된다. 따라서 많은 연극들이 개별 기획사나 제작자에 의해 단일공연이 기획되는 프로듀서 시스템에 의해 제작되고 있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해야겠다.
90년대에 들어 젊은 배우들의 연기는 과거의 상투성과 유형성을 벗어나 자연스럽던 생동감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특히 감각위주의 연극은 배우의 신체적 표현의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연출적 과시의 연극은 무대에서 인간묘사의 볼륨을 줄이고 배우들을 수단화하거나 기호화시킴으로써 배우들의 연기의 깊이가 얕아지는 면도 있다. 대형 뮤지컬이 자주 제작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과거의 기능적인 단순한 무대에 구상적인 이미지가 되돌아옴으로써 무대미술과 조명 의상 등에도 장족의 발전이 있기도 했다.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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