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세기의 마지막 십 년이었던 1990년대의 연극을 뒤돌아보면 그것은 우연찮게도 세기말적 특성을 다분히 내포했던 감각과 쾌락과 가벼움과 해체의 시기였다. 그리고 이런 경향들은 우선 그 이전의 십 년이었던 1980년대의 정치적 연극으로부터의 탈출로서, 그리고 전세계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범람의 일부로서 이해될 수 있다.
다른 모든 예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1980년대의 연극은 5공화국의 정치적 악몽과 압제의 무게를 같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사회적 사회적 문제점들을 전통연희의 양식을 빌어 직설적으로 고발했던 마당극의 활성화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80년대 말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취해진 일련의 민주화 조치 이후 90년대를 맞으면서 연극은 그 이데올로기적 저항의 표적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허탈감과 냉소와 감각지상주의와 해체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1990년대의 한국연극은 급속히 사회적, 역사적 관심을 잃어갔다. 그대신 정치적 무력감, 개인적 삶의 회의, 감각이나 본능 같은 초시대적 관심사를 희극적이며 유희적인 분위기로 풀어내거나 뮤지컬과 같은 가벼운 볼거리로 눈을 돌렸다. 절대적이거나 거창한 형이상학적 진리를 거부하며 국가간의, 순수/대중 문화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고 후기산업사회의 감각적 소비문화와 결탁한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세계적인 유행이 이런 가벼움의 풍조와 맞아떨어졌다.
1990년대 한국연극의 포스트모던한 특성은 연극의 국제교류에 의해서도 설명될 수 있다. 연극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진지한 주제나 언어 대신 공연적인 볼거리 중심의 감각적 표현에 치중하게 된다. 6, 70년대 이후 서구를 중심으로 점차 일반화되기 시작한 포스트 모던 연극은 88년의 서울 올림픽 문화축전 이후 활발해진 연극의 국제교류에 의해 우리 연극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90년대는 실로 연극의 활발한 국제교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기로서 기억될 수 있다. 91년에 제정되었던 ‘연극영화의 해’의 국제연극제에 이어 97년 I.T.I.(국제극예술협회)국제 총회 유치와 함께 열린 ‘세계 연극제’와 ‘과천 세계 마당극축제’는 한달 반여의 기간 동안 전 세계로부터 초청한 수십 편의 외국연극들을 공연했다. 이 기간들 동안 공연된 미국의 <빵과 인형>극단의《콜롬보스: 신세계》, 폴란드의 <비브제세>극단의《황제 칼리규라》, 미국 <라 마마>극단의《트로이의 여인들》등은 연극인들 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기존의 연극처럼 대사전달 위주가 아니라 충격적인 공간배치나 인형이나 나체 등을 이용한 파격적인 연기들은 기존연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 행사 이후 해마다 열리는 ‘서울 연극제’는 국제연극제로 탈바꿈했으며 이 밖에도 한국, 일본, 중국이 해마다 돌아가며 연극잔치를 벌이는 ‘베세토 연극제’도 상설 개최되고 있고 서울뿐 아니라 수원, 춘천, 거창 등 지역도시에서도 국제연극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그러나 국제연극제의 화려한 외양만큼 국내연극계의 실상이 내실 있는 것은 아니었다. 90년대의 연극은 그 가벼운 연극내용처럼 들뜬 상업주의에 오염되어 있었다. 연극계의 상업화는 80년대에도 다소 진행되었지만-적어도 I.M.F. 이전까지-경제가 표면적인 순항을 계속하던 90년대에 더 본격화되었다. 82년 이후 공연법 개정에 의해 누구나 극단을 만들 수 있게 됨에 따라 대학로의 뒷골목은 아르바이트로 제법 두둑한 대학생의 용돈이나 데이트족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극장들로 가득 찼고 일부 극장은 소위 ‘벗기는 연극’으로 노골적인 장삿속을 채우기도 했다. 대부분의 연극들이 조악한 소극장 환경에서 가벼운 웃음거리로 뜨내기 관객을 끌었지만 이런 상업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질적, 양적인 성장을 거듭한 것이 뮤지컬 연극이었다.
1990년대는 실상 뮤지컬 호황의 시대이기도 했다.《캣츠》나《레 미제라블》같은 본토 뮤지컬이 다녀갔을뿐더러 국내 뮤지컬의 역량도 많이 성장했다. 춤과 노래 실력이 급성장해《코러스 라인》,《42번가》,《페임》 등이 거의 브로드웨이를 넘보는 수준으로 공연되었으며《드라큐라》,《갬블러》등 동유럽풍의 뮤지컬도 선보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창작뮤지컬이 주요 레퍼토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브로드웨이로부터 금의환향해서 이제는 국민뮤지컬로 자리잡은《명성황후》가 그 대표격이며 김민기는 동숭동에 학전소극장을 중심으로《지하철 1호선》이나《의형제》,《모스키토》같은 번안성 창작 뮤지컬로 롱런하고 있고 그밖에《동숭동 연가》니《블루 사이공》,《겨울나그네》,《하드 락 카페》같은 순수 창작뮤지컬도 호응을 받았다. 명절이 가까우면《비나리는 고모령》,《불효자는 웁니다》같은 복고풍의 악극들이 중년 이상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기도 했다.
이처럼 가벼운 상업주의가 판치던 90년대적 상황에서 그나마 진지한 주제와 공들인 공연이 가능했던 것은 70년대 말 이래 지속되어온 ‘서울연극제’ 및 ‘대한민국 연극제’와 일련의 기획공연들 덕분이었다. ‘서울 연극제’는 과거의 희곡심사제도를 공연심사로 바꾸고 사랑티켓 제도를 통해 관객저변을 넓히며 국제연극제의 성격으로 탈바꿈하고 경연대회 형식을 축제형식으로 바꾸는 등 많은 변신의 노력을 거듭하며 그 해의 문제작들을 탄생시키는 산실의 역할을 지속했다.
예술의 전당이 기획한 ‘오늘의 작가 시리즈’는 94년 오태석, 95년 최인훈, 96년 이강백 등 현존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모아 역량 있는 연출가들을 통해 공연함으로써 오늘의 한국연극의 주소를 확인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극단 <연우무대>의 ‘한국 현대연극의 재발견 시리즈’는 그 동안 묻혀서 잊혀있던 과거의 희곡작품들인 오영진이나 함세덕의 작품들을 오늘의 감각으로 재공연함으로써 연극사의 줄기를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이밖에 젊은 연극인들의 집단인 <혜화동 일번지 연극실험실> 동인들은 94년 이래 매회 주제를 달리하는 페스티벌을 통해 소극장 실험극들의 좌표를 확인시키고 있다.
전반적으로 소모적이며 부박한 90년대의 연극현실에서 몇 몇 긍정적인 사건들이 있었다면 97년 숙원이었던 시립극단이 우여곡절 끝에 창단되었다는 점과 지방자치적 행정의 변화에 따라 90년대 전반에 걸쳐 인천, 경기도, 포항, 전주 등등에 시립 및 도립극단들이 생겨 척박한 지역 연극문화 발전에 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90년대 극계의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연극교육환경의 변화이다. 예술연예인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의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90년대 중반까지 전국에 다섯 개 정도였던 대학 연극영화과가 90년대 말에는 무려 40여 개 과로 늘어났다. 1993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연극원이 개원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연극전문인력과 미래의 연극인들을 길러낸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대학로 연극의 공백이라는 뜻밖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그 동안 대학로 연극을 담당하던 4~50대의 연출가들이 대거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연극현장에 남는 연극인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그 공백을 급히 메우게 된 것이 30대의 젊은 연극인들이다. 개성적인 가치관을 지닌 일군의 젊은 연극인들은 점점 젊고 어려지는 관객들의 취향과 맞물려 90년대의 감각적인 연극문화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대교체는 어느 시대 어느 분야에도 당연한 것일 수도 있으나 90년대 후반의 연극계는 이런 특수상황아래서 다소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면 이런 90년대의 연극환경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연극들이 공연되었을까. 80년대에 비해 정치사회적 관심이 퇴조하고 감각주의의 연극이 주류를 이루었다는 점은 이미 지적했지만 우선 전통과 정체성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80년대의 마당극은 정치적 의미도 컸지만 아울러 전통연희의 유산을 현대화했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또 70년대이래 마당극 외에도 우리의 연극적 뿌리를 찾고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왔다. 개인적 관심이 지배적이었던 90년대에 들어와 이런 의식적 노력은 일단 수면으로 잠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태석이나 이윤택 같은 9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활동의 저변에는 이런 노력이 면면이 이어져옴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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