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김방옥의 연극론집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를 일부 연재한 것이다. 기획연재 ‘연극과 인간’은 김방옥의 연극론집을 통해서 한국 연극의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전반적인 한국 공연문화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함이다.]
창조자-비평가-관객의 삼각형을 중심으로
연극삼각형의 크기의 축소나 창조자-관객-비평가들 사이의 접근은 시대와 문화감각의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추세일수도 있고 그 나름의 순기능도 있다. 드라마투르기로서 공연에 이바지하는 비평가나 참여적 관객은 분명 생산적으로 기능한다. 연극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더라도 이제 양방향성의 디지털적 사고가 지배하고 사이버 공간의 하이퍼 텍스트가 번성할 21세기에서 누구나 작가가 되고 누구나 상호 비평가가 되고자 할 것이다. 또한 연극환경 자체가 상대적으로 축소되면서 연극계가 사실상 한 가족, 한 동네처럼 변해가는 추세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창작은 부실해지고 비평은 스스로의 욕망에 더 충실하며 창작과 비평의 예비군으로서의 관객만이 있는 연극계, 연극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을 위해 연극을 만드는 동어반복적 동네잔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점차 작아지는 연극이라는 이 섬이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고 자리바꿈하며, 못났거나 잘났거나 서로간의 애정만으로 엮어지는 그런 의식부재의 연극 공동체로 후퇴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연극 창조의 행보가 오리무중을 헤매고 있고 창작-관객-비평이라는 전통적 삼각 관계가 변질되는 이런 때 비평의 의미와 기능은 더 빛을 발해야 한다. 현재로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가장 큰 기량의 축적과 잠재력을 갖춘 비평가 그룹이야말로 동호인화 해가는 연극계를 각성시키고 폐쇄회로의 순환을 끊어내며 연극계에 새로운 출구를 제시하는 그런 임무를 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비평 계는 다음의 몇 가지에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 연극비평의 지면이 확대되어야 한다. 해방 후 본격적 연극비평이 자리잡기 시작했던 1970년대에는 사회전체가 연극문화를 존중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그런 속에서 연극협회에는 『한국연극』을 매달 발간하기 시작했고 전문지로서 계간 『연극평론』이 몇 년간 간행되었으며 일간지 문화 면과 『주간조선』 등 고급 시사지에서도 적극적으로 연극평론에 지면을 할애해주었다. 80년대에는 연극이 정치사회적 발언의 간접적 창구역할을 하던 시기였기에 일간신문 및 보다 많은 문예지, 시사지, 교양잡지, 사보들에서 연극비평을 다투어 실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연극비평의 지면이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간신문에서는 문화부 기자들이 공연스케치나 기획기사로서 전문비평을 대신하고 각종 일반 잡지에서는 연극비평의 자리를 광고비평이나 만화비평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연극비평가들은 급격히 늘어났으나 거꾸로 연극비평의 지면은 줄어드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일간지의 문화 면의 비평란을 잃게 된 것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연극과 비평을 보는 언론과 일반의 입장을 대변해준다. 우선 연극 기사를 내보내더라도 단순한 안내기사나 감각적 화제거리가 되는 배우의 인터뷰가 주류이며 가끔은 리뷰라는 제하에 전문적 지식이나 충분한 관극경험이 없는 담당기자가 일반적 감상문 수준의 글을 싣는다. 때로는 잘 알려진 소설가나 기타 인기인으로 하여금 화제의 연극을 관극하도록 하고 그 감상문을 싣기도 한다. 한마디로 전문 비평가의 글은 너무 무겁고 어려워 요즘 가벼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 점은 앞으로 더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일간지나 시사, 문예교양지와 같은 대중적 지면을 잃은 오늘의 연극평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지면은 사실상 연극협회의 기관지인 『한국연극』과 한두 종류의 공연예술 종합지뿐이다. 최근 들어 전문비평 지면의 부족을 느낀 연극비평가들이 『오늘의 연극비평』 같은 간소한 비평 모음집을 시도하기도 했고 젊은 연극비평가, 소장 연극학자들의 모임인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에서 『공연과 이론』이라는 잡지가 곧 나올 예정이며, 한국 연극평론가 협회에서도 『연극 평론』의 복간을 추진 중에 있다. 그러나 대중성을 지니지 못한 연극관계 잡지를 지속적으로 출간하는 데는 많은 재정적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평론도 현장작업과 함께 문화정책상의 지원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면은 아니지만 공중파 방송, 유선방송, 인터넷들도 오늘의 연극비평이 개척해야 할 영역으로 남아있다.
둘째로 연극비평은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주는 창조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비평의 전통적 기능으로부터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창조자-관객-비평가들이 서로 익숙해지고 사랑함으로써 빠져들 수 있는 중독성 폐쇄회로로부터 벗어나 거리를 두고 보다 더 넓고 다양한 의미의 망으로, 그 의미망의 또 다른 밖을 향해 연극을 자극하며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개별공연을 꼼꼼히 읽어내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연극 공연들의 사회적 역사적 컨텍스트를 찾아내고 인문 사회학, 기술과학 등 다른 분야와의 상호관계적 연구 등 보다 넓은 시야로서 관심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펼쳐지는 미래 속에서 연극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21세기 여기 한국사회에서 연극의 의미는 무엇인지 연극은 과연 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존재론적 성찰로 밑받침을 삼아야 할 것이다. 70년대부터 비평활동을 해온 원로 비평가인 한상철 교수는 최근의 한 좌담회에서 요즘의 연극비평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요즘의 비평은 대개 작품단위의 리뷰에 그칠 뿐 연극현상에 대한 지적 구성력이 부족하며 연극의 사회적 사명감을 일깨우거나 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 존재를 정당화시키지 못하는 등 방향감각이 없고 비평의 폭이 좁으며 전체적으로 무력증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비교컨대 7~80년대의 연극비평은 정치적이거나 종교적 측면, 그 밖의 사회적 측면 등에 관해 폭넓은 관심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원로 비평가의 이런 비판에 물론 귀 기울여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오늘의 연극비평이 퇴보했다거나 무력화되었다고 만은 볼 수 없다. 연극비평이 위축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비평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우선 연극의 사회적 위상 자체에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연극이 정치 사회와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존재하지 못하고 문화예술 전체가 후기 자본주의의 소비적 감각적 문명의 늪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반대 급부도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창조자-관객-비평이라는 전통적 삼각형을 변질시킬 만큼 비평가의 인적 자원이라는 면에서 풍부해졌다. 뿐만 아니라 연극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요즘의 대부분의 연극비평은 문학적 주제분석에 치중했던 과거와 달리 공연 텍스트 자체를 섬세하고 꼼꼼하게 읽어내고 음미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섣불리 작품의 우열을 판단하기보다는 공연 자체가 지니는 다양한 의미들을 끌어내려고 힘쓴다. 아직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의 비평가들은 학제간 연구라는 학문적 패러다임에 익숙해있다. 이들의 관심은 문학뿐 아니라 기호학, 인류학, 사회학, 여성주의 등에 다양하게 열려있는 편이다. 앞으로 보다 활발한 비평의 장이 열릴 때 이들의 비평적 잠재력이 현동화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덧붙여 연극비평도 양적으로 늘어나니만큼 전문화되고 그 기능도 다양해져야 하겠다. 지금도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지만 연극 장르에 따라 뮤지컬 비평, 아동극 비평 등, 마임 비평, 창극 비평 등을 보다 심도 있게 펼쳐갈 수 있는 전문성을 확보해야겠다. 아마추어 비평과 변별될 수 있는 전문성에 뒷받침되면서 때로는 대중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신문 외에도 방송이나 인터넷 등 각종매체들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재정적 지원과 보조인력이 확보된다면 공연비평의 체계적 자료화도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공연비평의 기능의 하나는 일회성 공연예술의 기록에 있기 때문이다. 또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일중의 하나가 정부의 문화정책, 연극정책에 방향을 제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이다. 최근 이런 성격의 모임들이 한 둘씩 결성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처럼 비평이 스스로의 의미를 심화시키고 확장하며 그 영역을 다양화하고 전문적으로 활성화시킬 때 비평가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활동이 될 뿐 아니라 창조자 그룹에 창조적 자극을 주고 또 결과적으로 보다 바람직한 관객 군을 생산할 수 있다. 이처럼 건강한 연극 삼각형의 관계를 모색함으로써 연극비평은 21세기라는 첨단기술문명의 시대에 연극예술을 지켜내며 나아가 새로운 연극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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