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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인간 13] 연극비평과 창조적 삼각형 (1)

 

[아래는 김방옥의 연극론집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를 일부 연재한 것이다. 기획연재 ‘연극과 인간’은 김방옥의 연극론집을 통해서 한국 연극의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전반적인 한국 공연문화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함이다.]

창조자-비평가-관객의 삼각형을 중심으로

연극을 포함한 모든 예술행위는 창조자, 관객(감상자), 그리고 비평가를 세 개의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조자가 있으면 그것을 보는 관객, 독자, 혹은 감상자가 있고 또 예술작품을 보다 전문적인 관점에서 감식하면서 창조자와 일반 감상자 양쪽에 영향을 미치는 비평가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좋은 예술문화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이 세 요소가 각자 건강하며 상호간의 적절한 긴장감과 거리감을 유지함으로써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창조, 감상, 비평이 비교적 동일한 시간대와 공간대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예술의 경우는 이 삼각형의 관계가 더욱 두드러지기 쉽다.

비평의 문제점을 논하기 앞서 근래 우리 연극계의 이런 삼각형의 관계에 대해 점검해 볼 필요를 느낀다. 비평은 공연이나 관객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세 요소들의 상호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창작, 감상, 비평이 서로 지나치게 접근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이다.

첫째로, 문제의 출발은 이 삼각형을 에워싸는 전체 동그라미, 즉 연극환경 자체의 크기가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공감하다시피 90년대 후반 이후 연극의 문화적 사회적 위상은 매우 낮고 좁아졌다. 이는 연극 활동 자체의 양적인 수축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문화적 엘리트주의 보호를 받았던 70년대나 연극이 정치적 저항의 한 출구였던 80년대에 비해서, 그리고 후기 산업사회로의 진입이 가속화되면서 영상, 정보산업의 기세에 상대적으로 눌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로 시각적 쾌락과 감각적 가벼움을 중시하는 비디오게임, 광고, 만화, 뮤직 비디오 등의 이미지 산업들의 호황 속에서 뮤지컬을 제외한 연극은 대학생 중심의 소수 애호가들의 예술로 그 영역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연극환경의 원이 축소되면서 세 요소들은 당연히 서로 밀착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둘째로, 연극 창조자의 그룹 자체가 취약해지고 그 창조의 내용면에서 불안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그 동안 연극창작의 중심세대였던 40대, 50대의 기존 세력들이 급속히 사라지면서 창작의 주체가 30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원인으로는 90년대 소비적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소비의 주체가 젊어지고 따라서 대중의 문화예술적 취향 역시 급격히 감각화되면서 기존의 기성연극인들은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 I.M.F를 거치면서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는 재정여건이 더 나빠지면서 기성연극인들이 누적된 재정적 압박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렵게 된 점, 그리고 최근 대학 연극영화과들이 급증하면서 40대의 현장 연극인들이 대학강단으로 자리를 옮긴 것 등을 들 수 있다. 30대 연극인들이 대학로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는 점은 미래지향적으로 보면 희망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예술적 비전이나 기량의 축적 면에서 현재로서 불안하고 취약한 면을 노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누구나 느끼듯이 오늘의 연극은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다. 기존의 모든 진리와 가치와 규범에 대한 회의가 지배적이지만 누구도 아직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몰가치의 진공상태 속에서 단지 감각적 유희를 즐기거나 해체를 위한 해체, 철학 없는 파괴들이 젊음과 실험을 핑계로 엉거주춤하게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로, 이런 상황에서 연극 비평계는 이례적인 양적 풍요를 누리며 아울러 대체적 창작의 욕망을 부풀리고 있다. 연극이 사회의 주목을 받던 80년대에 국내나 해외에서 연극공부를 시작했던 이들이 90년대 중반부터 공부를 마치고 속속 연극계에 들어오기 시작함으로써 연극평론계는 전례 없는 양적 팽창을 맞이했다. 70년대에 불과 대여섯 명, 80년대에 기껏 열명 정도의 연극평론가들이 활동했다면 현재 활동하거나 활동할 준비가 되어있는 연극평론가들은 삼사십대를 중심으로 거의 오십 명에 육박할 것이다.

이로서 연극계에는 창작자와 비평가 사이의 상식적인 비례관계에 이상이 발생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보아 창작그룹은 취약해지고 비평그룹은 비대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마침 오늘날의 비평적 조류는 창작의 숨겨진 욕망을 가동시키게 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비평가가 재판관이었다면 오늘의 비평가는 또 다른 창조적 예술가이기를 꿈꾼다. 원래 비평가는 누구나 창작의 경험이 있거나 창작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도 무대에 선 적이 있다, 나도 저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에서부터 ‘비평도 창작이다’에 까지 그 욕망은 이어져 온다.

20세기 중반 롤랑 바르뜨가 ‘저자의 죽음’을 선포한 이후 저자의 원래적 작의는 무한히 지연될 수 있고 누구나 그 나름의 저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누리게 되었다. 희곡을 무대화하는 연출도 그것을 형상화하는 연기자도 그것을 감상하는 관객도 모두가 해석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비평가도 물론 그 대열에 낀다. 이제 비평가는 작가나 연출가 못지 않은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창조적 해석의 춤을 춤 수 있는 시대이다. 법관에 못지 않은 심판의 권위를 휘두르던 신고전주의 비평에서 일반의 취향을 계도하던 비평을 지나 작품의 사회적 의미를 짚어내고 그 형식적 완성미를 음미하면서 작품의 우열을 가르던 비평으로부터 이제 작품의 창조자에 버금가는 창조적 연극읽기를 즐기는 비평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연극도 역시 함께 변해가고 있다. 연극은 과거의 물샐틈없는 재현의 욕망을 포기하고 무대 기호들을 헐겁게 엮은 공연적 직조물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공연적 기호들이 던져진 성긴 무대는 흔히 비평가들의 해석의 놀이터이며 무대 창조자와 함께 의미의 춤을 추는 유희공간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 연극계에서 자기 나름대로 연극을 읽어내고자 하는 비평가들의 의욕은 극작이나 연기 등 다른 어느 연극분야의 경우보다 뜨겁다. 적지 않은 숫자의 비평가들은 사실상 소극장 위주의 공연에 큰 관객이기도 하며 단 하나밖에 없는 연극 전문지인 󰡔한국연극󰡕의 지면은 매 호마다 필진이 갈리는 비평가들의 열기로 후끈하다.

이런 탓인지 요즘 한국 연극계의 젊은 평론가들과 젊은 창조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서로 가까워졌다. 예전의 비평가와 현장 연극인들이 대체로 서로를 경원하던 것과 달리 요즘의 젊은 현장 연극인들과 비평가는 좋은 동반자 관계다. 한 공연에 대해 연출가와 평론가들이 함께 토론도 하고 매년 봄 열리는 신춘 단막극제에는 비평가들이 작품선정 및 평가자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많은 공연에서 비평가들은 드라마트루기로 참여하고 있다.

넷째로, 관객 역시 변해간다. 오늘의 연극 관객들은 비평가의 자리를, 때로는 창조자의 자리까지를 넘보고 있다. 문화예술과 소비산업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예술은 그 순수성을 훼손 받게 되었지만 대신 대중들의 문화수준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정보미디어의 발달 확산과 함께 일반대중도 문화적으로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되었으며 요리나 재즈 등 누구나 한 두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된다. 연극환경의 동그라미의 크기가 줄어들고 연극이 소수 애호가들의 예술로 변해가면서 이제 연극관객들 역시 상당부분 연극전문가로 변모해가고 있다. 그들은 동호인 내지 마니아그룹을 형성하며 통신망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연극감상문을 통신망에 올려 서로 읽는다. 양방향성을 특성으로 하는 디지털 시대에 그들은 연극에 자신의 영향력을 미치려고도 한다. ‘나도 비평가’라는 교육방송의 영화관계 프로그램도 있듯이 그들은 비평가 못지 않는 전문지식을 자랑하며 저마다 비평가의 시선을 품고 객석에 앉아있다. 더 나아가 관객들은 인터넷상으로 캐스팅에 참여하고 리허설을 참관하며 때로는 동호인들끼리 모여 대학로에서 공연을 올리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오늘날 우리의 연극문화는 또 다른 ‘비평적 관객’군을 안고 있다. 그것은 웬만한 연극객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연극의 이해’ 관객 군이다. 대학의 교양과목으로 개설된 연극관계 과목에는 많게는 천명 이상의 수강생들이 몰리는데 이들에게 연극감상문의 레포트숙제를 내줌으로써 대량의 비평적 관객군이 발생된다. 물론 이들이 연극비평을 지망하지는 않으나 비평적 감상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순수관객보다는 비평 쪽에 가까워 있다.

최근 급증한 대학 연극과의 재학생들도 세 요소를 서로 근접하게 하는 매체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5년 사이에 40개 정도로 늘어난 연극관련학과의 재학생이나 졸업생, 혹은 대학 부설 사회교육원이나 사설 연기학원의 수강생들 역시 요즘 극장가의 주 관객이다. 이들은 연극을 보러 온 관객이면서도 미래의 창조자 혹은 잠재적 비평가라는 점에서 삼각형의 세 요소들을 일원화시키는 역학을 할 수도 있다.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편집부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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