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곡읽기를 시작한 후 본의 아니게 “드센 여자들”을 여러 관계 속에서 차례로 다루게 되었다. 부녀관계의 아가멤논과 엘렉트라, 모자관계의 페드라와 히폴리투스. 이제 그 완결판이다. 주인공은 바로 부부관계의 이아손과 메디아.
서양 연극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시대를 대표하는 세 명의 비극작가가 있다. 에스킬러스(Aeschylus), 소포클레스(Sophocles), 에우리피데스(Euripides)가 그들인데 이들은 각각 그리스 연극의 전기, 중기, 후기에 속한다. 전기에 속하는 에스킬러스는 신과 인간의 문제에서 신의 우위를 인정하는 작품 성향을 보였고 보다 후기에 속하는 소포클레스는 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의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강조했으며, 가장 후기에 속하는 에우리피데스는 오로지 인간만이 존재하는 세계의 모습, 특히 여자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렸다. 에우리피데스에 의해서 많은 정념과 정열의 여인들이 탄생했고 메디아도 그들 중 하나다. (에우리피데스가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소피스트에 의해 길러지면서 여성혐오증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메디아 Medea>는 기원전 431년 봄 大디오니시아 제전 때 상연되었다. 최초의 상연 때는 불행히도 경연의 최하위인 3등상에 머물렀는데 이 작품이 현존하는 에우리피데스의 것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또 작품으로서도 백미에 속한다. <메디아>의 소재가 된 신화는 당시 널리 알려진 이야기의 하나로서 이 극은 유명한 아르고선(船) 원정의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다.
메디아는 원래 변방의 왕녀이자 마법술사였다. 그녀는 그리스에서 멀리 떨어진 흑해 동쪽 끝에 있는 콜키스 땅 출신인데 그의 아버지 아이에테스 왕(그도 마법사였다)이 황금모피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곳에 이아손이 아르고 선대를 이끌고 황금양모피를 찾으러 원정 온다. 메디아는 첫눈에 이아손과 사랑에 빠져 그녀의 힘으로 이아손은 아이에테스 왕이 걸어놓은 함정을 모면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황금양모피를 손에 넣는다. 이아손과 더불어 자기 나라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메디아는 쉽사리 도주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동생을 살해한다. 시체를 토막 내어 바다 위에 버려놓는 바람에 뒤를 쫓는 아버지의 배들은 그 시체의 토막을 모으느라 시간이 걸려 도망이 쉬워졌다.
그 곳에서 도망쳐 나와 메디아와 이아손은 이아손의 왕국인 이올코스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아손의 삼촌인 펠리아스는 그를 속여 그의 권리를 빼앗아 버린다. 술법에 능한 메디아는 여기서도 이아손을 위해 한 가지 계책을 꾸민다. 펠리아스의 딸들을 속여 아버지를 회춘시킨다는 명목 아래 딸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죽이게 한 것이다. 이렇게 복수를 하였으나 이아손은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다시 귀양을 떠나 코린토스에 도착한다. 이렇게 맺어진 이아손과 메디아의 앞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여기서부터 이 극이 시작된다.
비록 도망쳐 온 땅이기는 하나 이아손과 메디아는 매사에 힘과 마음을 합해 사람들의 호감� 샀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다. 그러나 이아손은 메디아와 아이들을 버리고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딸과 혼인하는 지경에 이른다. 메디아는 자신이 이아손을 위해 한 일들을 상기시키며 이를 반대하지만 이아손은 오히려 왕가의 피를 이은 동기를 낳아 메디아와 그들 사이의 자식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변명을 한다. 설상가상으로 크레온이 메디아와 아이들에게 추방명령을 내린다. 남편의 배반에 상처를 입은 메디아는 복수의 칼을 빼들고 우선 이아손과 아이들을 시켜 이아손의 새 부인에게 비단옷과 황금관을 선물한다. 크레온의 딸이 옷을 입고 관을 쓰는 순간 고통에 차 죽게 되고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크레온 역시 딸을 안자마자 신음하며 죽는다. 분개한 이아손이 메디아를 찾아오지만 그때 이미 메디아는 격심한 분노 속에서 그들의 두 아이를 죽인 후였다. 메디아는 아이들의 시체만이라도 만져보게 해달라는 이아손의 간청을 물리친 채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사라진다.
이 극에 다뤄진 이야기는 에우리피데스 이전에도 있었던 듯한 데, 다만 한 가지 메디아가 자식을 죽이는 대목은 에우리피데스의 창작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남편의 배반에 대해 자식을 죽여서라도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는 여주인공의 강렬한 성격은 이 극이 갖는 특색, 인간 집념에 대한 집요한 추구라고 할 수 있겠다.
대체로 사건과 성격이 단순하면서도 강렬할 것이 그리스 비극의 가장 큰 특징인데, 직선적이면서도 강렬한 악센트를 줌으로써 비극의 깊이가 보장되는 것이 또한 그리스 비극의 독자성이다. 그런 관계로 인물들, 특히 여주인공들의 성격이 강렬하게 부각되어 나타난다. 메디아는 그 가운데서도 윤곽이 특히 선명하다. 이 작품의 매력도 거의 전적으로 메디아의 대담하고 선명한 성격과 행동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디아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비판자’ ‘알고 있는 자’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예쁘고 공손한 모습으로 남자의 소유로 살아가기를 인내하는 여성들에게 있는 그대로 주체적인 자신의 삶의 길을 알려주는 인물이다. 독일 작가 하이네 뮐러의 <황폐한 물가 메데아 자료 아르고호 사람들이 있는 풍경>에는 메디아가 아이들을 죽인 이유가 아이들이 ‘남자의’소유이기 때문이며 메디아 자신도 ‘남자의’ 소유물에 그치므로 그 ‘남자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로 바로 자신과 혼연일체인 자식을 죽인다는 것이 아주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
메디아의 분노와 그녀가 택한 복수의 방법을 두고 사람들마다 입장차이가 있을 것이다. 특히 남자들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낄 법도 하다. 결혼을 영원한 사랑의 맹세로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진부하다고 여겨질 만큼 부부간의 신의가 떨어진 지금의 현실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남편의 배반에 극한의 방법으로 대응한 메디아에게서 우리가 무엇을 봐야할 것인가는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꿈은 꿈일 뿐 현실이 아니니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수년 전 수원 화성연극제에서 본 일본 전통극 방식의 <메디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치 분라꾸(文樂: 일본 인형극)에서와 같은 인형의 무표정과 노(能)의 절제된 연기를 보이던 메디아가 아이를 죽이는 순간 눈에서 뚝 흘린 눈물 한 방울. 그 눈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글 김지명(SMG tech 무대감독) jeem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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