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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은의 퍼포먼스 뮤직 2] 예술, 지상으로 내려오다

 

20세기 들어 예술에서는 ‘아름다움’의 개념에 대한 대대적인 의심의 작업이 진행되었다. 매튜 아놀드나 리비스 주의자들의 표현을 빌려 ‘인간 사고와 표현의 정수’로서의 전통적인 예술. 음악에서도 그러한 고귀한 메시지나 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에 봉기를 든 일련의 현대음악 흐름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예술이 평범한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생활과 세계의 추한 단면들, 보통사람들의 일상적 경험 등을 재구성하여 전통적 의미에서의 아름다움을 부정하며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고자 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상향에 고착되어 자체 비판력을 상실해 가던 ‘아름다운 음악’을 현실 (혹은 진실)의 차원으로 끌어내려 하였다. 예술은 변화해야 한다. 왜? 세상이 변하고, 또 평범한 대중의 삶이 변화하고 있으므로.

그러나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주시하여 같이 변화했다고 하는 현대예술이 오히려 평범한 우리에게서 더 멀리 떠나 버린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사전 정보 없이 현대예술과 대면해 무언가를 얻기란 사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도 현대회화의 갖가지 경향들에 일찌감치 두 손 들어 버린 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예술 장르에 ‘현대’라는 타이틀만 걸려 있어도 ‘먹지 않고 체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나 역시 예술이란 어떤 메시지로 이해되어야 하고,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오랜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현명한 방법을 찾게 되었으니, 바로 「케이지와의 대화」에서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가 표현한대로 ‘이해’가 아닌 ‘경험’으로서의 예술 감상법을 체득하는 것이었다.

케이지식 예술 감상법
존 케이지에 의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예술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래서 현대예술을 난해하다고 느끼며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다. 특히 현대음악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변화했지만 여타 예술장르 보다도 우리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대예술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경험하는 자세’를 갖는 것. 다시 말해 마음을 열고, 비판적 기능의 작동을 멈추고, 그저 그 경험을 즐기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에 순순히 정신을 맡기고, 이해의 차원과 전통적 아름다움의 차원을 떠나 또 다른 의미에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기까지는 아마 앞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다.
또 다른 일면에서 ‘현대예술’이라는 이름 밑에 숨어 어설픈 퓨전이나 자아도취로 물을 흐리는 이들이 아주 없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을 구별해내는 것은 해프닝과 치기 어린 장난을 구별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 어떤 예술 장르에서든 수용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다.

이야기 하나
오래 전, 류이치 사카모토의 내한공연을 보러 예술의 전당에 간 일이 있었다. 많은 팬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좌석을 꽉 채우고 있었는데, 정작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현대음악의 실험적 작업은 물론 테크노 팝의 선구자로까지 추앙받는 전방위 음악가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마지막 황제>의 영화음악과, 비 내리는 날이면 FM에서 단골로 흘러나오는 ‘Rain’의 아름다운 선율을 기억하고 그 자리에 온 것이었다.
피아노 외에 이상한 소품들과 그로테스크한 무대 조명이 시작부터 심상치 않더니,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 피아노 앞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계속 반복되는 음을 눌러댔다. 스피커에서는 기괴한 소음들이 시끄럽게 흘러 나왔다. 이쯤 되면 분위기는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몇 분을 귀 기울이던 청중들은 드디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내 주위 사람들의 한결같은 반응. 1-우선 옆자리의 동행자를 쳐다보고, 2-서로의 황당한 얼굴을 확인하고 난 후, 3-한마디 한다. “아니, 이게 뭐야?” 청중들은 새로운 음악을 ‘경험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후 그가 익숙한 피아노곡들을 연주하면서 분위기는 순식간에 수습되었지만, 참으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때때로 대중을 이처럼 당혹스럽게 만드는 20세기의 음악혁명. 1910년대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로부터 음악은 전통적인 조성체계가 붕괴되고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음악의 구성요소인 ‘멜로디, 화성, 리듬’에서 멜로디가 붕괴되며 무조음악과 12음 기법 등이 탄생했고, 규칙적인 박자와 리듬은 음악의 운동성을 강조하며 자유롭게 나타났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는 이전보다 한층 더 실험적인 경향으로 발전했고, 시대적 필연성으로 과학기술과 복잡한 상호관계를 맺게 된다. 베베른의 ‘음렬음악’을 거쳐 전자음악이나 컴퓨터음악, 우연성음악 등을 아우르는 ‘아방가르드’의 물결이 시작된 것이다.
온갖 종류의 실험의 시대였던 아방가르드를 거쳐 ‘지상 위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 (대체로 70년대 이후). 현대음악은 신음악의 혁명정신과 전통적 선율의 인용과 동양적 사고로부터 가져온 단순성 등 광범위한 재료와 양식이 도입되고 또 거부되며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신음악과 2차 대전 이후의 아방가르드,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현대음악은, 그러니까 고전-낭만 시대의 음악적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고 또다시 숙고하게 만든 혁신적인 음악이다. 이러한 현대음악의 미학은 감정에 호소하는 선율 중심의 전통음악에서 더 이상 감흥을 느끼지 못하던 많은 이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으며, 같은 이유로 역시 많은 이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글_고희은 alma97@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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