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를 보았다. 그를 보자마자, 나는 새빨개졌다가 새파랗게 질렸다. 정신 잃은 내 마음속에 혼란이 일어났다. 내 눈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입은 말이 막혔다. 내 온몸은 동시에 얼어붙고 불타고 하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흔히“사랑에 눈이 멀었다”라는 표현을 쓴다. 사랑,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에 빠지면 이성을 잃고 눈이 멀 정도로 정신 못 차리는 것일까? 그 때문에 혹자는 사랑이 두렵다고도 한다. 정념. 한 인간을 향한 정념이 올바른 방향을 가리킬 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서는 안 될 방향을 향하고 있을 때 우리는 비극을 보게 되는 것이리라. <페드라 Phaedra>는 바로 이러한 정념 또는 에로스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에로스는 객관적인 힘이 아닌 주관적인 열정이다. 걷잡을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 비극을 조성하는 큰 요소가 되고 있다.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의 부인인 페드라는 어느 날 테세우스와 전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히폴리투스를 보게 되고 그 순간부터 그를 사랑하게 된다. 의붓자식을 사랑하게 된 자신에 두려움을 느낀 페드라는 히폴리투스와 떨어져 지내고자 다른 지역으로 옮겨 살기도 하지만 결국 헛된 일임을 깨닫게 된다. 테세우스 왕은 워낙 여자를 좋아했기 때문에 곳곳에 애인을 두고 있었고 아들인 히폴리투스는 그런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페드라와 결혼한 후 한동안 다른 여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안도하던 차에 불확실한(?) 이유로 테세우스 왕은 자신의 나라를 떠나 있었다. 그가 수개월 동안 소식이 없자 히폴리투스는 아버지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나라를 떠나기로 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그는 이미 테세우스 왕이 잡아온 적국의 공주 아리시이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던 것. 그녀를 마주하기 힘들어서 도망치려 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테세우스 왕이 죽었다는 전갈을 받게 된다. 페드라의 아들과 히폴리투스를 두고 왕위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히폴리투스는 아리시이 공주를 노예상태에서 풀어준 후 그 모든 상황으로부터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히폴리투스가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페드라는 자유(?)의 몸으로서 히폴리투스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에게 페드라는 아버지의 부인이자 자신의 의붓어머니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갑작스런 새어머니의 고백에 당황한 그는 떠날 결심을 더욱 굳히는데 공교롭게도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 테세우스 왕이 살아서 돌아온다. 자신의 과오가 드러날까 두려운 한편, 히폴리투스가 자신이 아닌 아리시이 공주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낀 페드라는 히폴리투스가 그녀에게 접근했다는 누명을 씌운다. 이에 분노한 테세우스 왕은 히폴리투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뒤늦게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가를 깨닫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페드라는 결국 모든 사실을 밝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들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테세우스 왕은 아리시이 공주를 딸로 삼는다.
페드라는 극심한 갈등 속에서 죽음으로써만 진정될 수 있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다. 처음에 그녀는 혼자서 죽음을 택하려 했으나 히폴리투스를 그 죽음의 길에 동반하기 위해 계교를 꾸미고 죽는다. 그러나 강직한 테세우스 왕은 페드라의 저의를 알지 못한 채 자기 아들 히폴리투스를 책망하고 추방한다. 즉 페드라가 감성과 열정의 여인인 것과는 달리 그는 이성과 신념의 사람이다. 한편 히폴리투스는 순수하며 또 자신의 순수함을 알고서 거기에 대해 어느 정도 자만하고 있는 젊은이로 그려져 있다. <페드라>에서는 이 세 인물의 서로 다른 성격과 사랑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가운데 비극이 펼쳐지고 있다.
페드라는 많은 여배우들이 한번쯤 맡아보고 싶어 하는 역할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지극한 정념에 몸부림치면서 자신과 상대의 파멸을 몰고 온 여자의 역할에 매료될 수밖에 없으리라.
히폴리투스와 페드라의 비극은 인간 감정의 가장 격렬한 사랑과 증오, 저주와 죽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그만큼 극적인 효과도 크기 때문에 많은 극작가들이 작품 소재로 즐겨 사용하고 있다. 그 가운데 라신느(Jean Racine)의 <페드라>가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라신느가 활동했던 시기는 소위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시대(17세기)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비평가그룹이 모든 예술 활동을 엄격한 법칙과 규율로 통제했다. 시간, 장소, 사건의 일치라는 엄격한 3일치를 주장했기에 당시의 작가들은 상상력을 왕성하게 펼치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을 역으로 이용한 작가가 바로 라신느다. 그는 다채로운 사건이나 장소의 이동 등 스펙터클을 택하지 않고 그 대신 인간의 열정을 절제되고 응축된 대사 속에 담은 매우 집중되고 정제된 작품을 썼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정념의 비극이라 부르기도 한다. 응축된 대사와 정적인 표현 때문인지 <페드라>는 또한 글룩을 비롯한 12명의 작곡가들에 의해 오페라로도 작곡되었다.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가서는 안될 방향을 향할 때 불륜이라는 이름표가 붙게 된다. 불륜.. 금기이기에 더욱 유혹을 느끼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가? 누르면 누를수록 솟아오르는 정념.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기에 안타깝고 사무치는 게 아닌지. <페드라>는 우리에게 지독한 사랑의 열병과 질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정신분석은 사랑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란다. 사랑만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생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이 아니라면 한번쯤 심장이 멎고 눈이 머는 그런 사랑으로 생의 에너지를 되찾아 보는 건 어떨지...?

글 김지명(SMG tech 무대감독) jeem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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