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김방옥의 연극론집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를 일부 연재한 것이다. 기획연재 ‘연극과 인간’은 김방옥의 연극론집을 통해서 한국 연극의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전반적인 한국 공연문화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함이다.]
내일의 삶과 연극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희곡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양시론적이며 절충적인 입장을 피해가기 힘들다(흥미롭게도 불과 얼마 전까지 희곡의 존재에 회의적이었던 프랑스의 연극학자 파비스는 최근의 글에서 다시 문학적 희곡의 도래를 암시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년 사이 프랑스에서 발표되었던 일련의 시극들을 평가하면서 다시 독자적인 희곡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는 것이다). 이중 삼중으로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는 오늘의 극작가들에게 위안을 줄 말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가장 원론적인 위안이자 충고가 있다면 어쨌든 희곡은 연극이라는 일련의 창조적 체계 안에서 첫 불을 당기는 작업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또한 희곡은 창조성과 완성도 높은 작품생산을 통해 계속해서 자신의 독자적인 위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희곡이 출판되고 시 못잖은 일반 독자를 얻는 그런 순간까지 말이다. 사실 언제 다시 연극문화의 사이클이 바뀌어 다시 언어가 주도하는 연극의 시기가 올지 모르는 일이다. 아니 지금도 진정으로 강한 작품성을 지닌 희곡은, 풍요한 의미와 거부할 수 없는 구조를 지닌 희곡은 그 자체로 살아남을 수 있다.
오늘의 극작가가 문학성과 연극성을 고루 갖추어야 한다는 주문은 다소 공허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공허한 주문에 기대어 오늘의 희곡작가는, 그리고 연극인들은 함께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연극이란 무엇인지, 희곡이란 어떤 것인지, 무엇이 희곡의 최소치이며 최대치가 될 수 있는지, 어떤 희곡이 작가적 즐거움과 자존심을 만족시키며 동시에 연출가와 관객들을 기쁘게 할 수 있는지, 어떤 희곡이 최소한의 자기 충족감과 함께 연출가와 배우와 관객들을 향해 열려져 있을 수 있는지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오늘의 극작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가장 자유롭고 독창적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과거의 극작가와 달리 여러 가지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어쩌면 무대로부터도 자유로운 그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삶과 세계에 대해 사유할 수 있으며 무대에 가까이 다가갈 수도 무대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지 않은가?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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