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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명의 희곡 읽기 2] 사랑과 슬픔의 여로

 

여자는 고향으로 가고 있고, 남자는 과거 추억의 장소로 향하고 있다. 남자는 중년을 넘긴 나이고 여자는 이제 막 성인이 된 듯. 이 둘은 기차에서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부녀관계. 본인이 좋아하는 샘 쉐퍼드(영화배우 제시카 랭의 남편이기도 하며 우리에게는 <매장된 아이>라는 희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라는 미국의 희곡작가가 남자 역을 맡고 <비포 선라이즈>로 뭇 남성들의 연인 반열에 들기도 했던 줄리 델피라는 프랑스 배우가 여자 역을 맡은 영화 <사랑과 슬픔의 여로>의 줄거리다. 굳이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알� 보니 배다른 남매였다든가, 중년의 남성에게 끌리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소재다. 소위 말해서 근친상간의 일면을 다루는 이러한 이야기들의 원조는 지난 호에 소개한 <오이디푸스>와 <엘렉트라>다. 아들이 모성에 이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닮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딸(여자)들의 욕구는 이처럼 그 연원이 오래되었다.

엘렉트라. 그녀는 트로이전쟁의 선봉장이었던 아가멤논의 둘째 딸이다. 그리스 군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해 출범하기에 앞서 노한 해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맏딸인 이피게니아를 재물로 바친다. 이에 분노한 그의 아내 클라이템네스트라는 아들 오레스테스를 포키스 왕국에 보내고 남편의 사촌인 아이기스토스와 정을 통하며 남편을 죽일 것을 모의한다. 사실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에게 복수의 칼의 갈고 있는 중이었다. 탄탈로스의 손자인 아트레우스 왕은 동생 티에스테스와 왕위를 두고 암투를 계속했다. 티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의 아내를 유혹하고 이에 분노한 아트레우스는 틈을 보아 티에스테스의 아들 둘을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 내어 국을 끓여 티에스테스에게 먹인다. 티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를 죽인다. 대신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이 그를 살해한다. 아이기스토스는 바로 티에스테스의 아들. 둘의 원한은 그렇게 깊었다.
아가멤논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그들은 남편을 따르던 딸 엘렉트라를 하녀처럼 취급한다.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가던 그녀.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귀환한 아버지를 보며 자신이 당한 수모를 밝힐 수 있어 기뻐한 것도 잠시, 클라이템네스트라는 목욕 중인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그리고 정부와 함께 나라를 다스린다.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 제주를 바치던 엘렉트라는 거기서 동생인 오레스테스를 만나고 어머니와 그의 정부를 죽이라고 강력하게 재촉한다. 오레스테스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어머니와 그 정부를 죽인다. 그 후 오레스테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신들로부터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
우리가 엘렉트라를 맨 처음 만날 수 있는 작품은 고대 그리스 작가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이다. 여기서는 제목이 말해주듯 엘렉트라보다는 오레스테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또한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모르고 지은 죄에 대해 스스로 두 눈을 찌르고 유랑의 길을 떠난 것과 달리 그보다 먼저 쓰인 이 작품은 신의 용서를 통해 오레스테스가 세상과 화해한다. 아이스킬로스의 뒤를 이은 소포클레스는 엘렉트라를 주인공으로 삼아 보다 역동적인 인간으로 그려내고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존재가 아닌 실존을 위한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에 따른 책임이라는 실존주의 이론을 설명한 작품 <파리떼>를 썼다. 여기서는 오레스테스의 죄의식이 파리떼로 형상화된다. 유진 오닐은 이 신화와 프로이드의 심리학을 결합하여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를 썼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마농가문에 속하고 신화와 다른 이름을 가졌으나 기본 줄거리는 동일하다. 여기서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사랑하기에 어머니의 정부를 살해하고 어머니가 상심하여 자살하자 엘렉트라에 대해 비정상적인 사랑을 보인다. 물론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어머니를 증오한다. 그런데 공식에 맞춘 작품들이 그러하듯 프로이드가 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에 충실하게 그린 작품이라서 인지 웅장한 대사를 제외하면 읽는 재미는 떨어진다.

아버지에 대한 딸의 애정 또는 그 반대, 부정한 아내와 남편에 대한 복수. 이러한 근친상간, 치정, 모녀 혹은 부자 사이의 경쟁심리 등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욕망들은 실상 기원이 오래된 만큼,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모든 인간의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파생된 불륜 혹은 “일그러진” 사랑의 형태가 TV 드라마의 주된 소재가 되고 있는 게 아닌지? 예전에 TV에서 남녀가 4명씩 나와서 서로의 성격을 파악하다가 마지막에 마음이 기우는 상대에게 화살을 쏘아서 화살이 일치할 때 커플로 탄생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야말로 내가 찍은 상대가 나를 찍었을 때 사랑의 화살이 갈 길을 찾아 온전하게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화살이 빗나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나는 너를 쏘았으나 너는 다른 이를 쏘아 결국 화살이 아픔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극단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이루어져서는 안 되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형태가 다수의 희곡을 채우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페드라. 의붓아들을 사랑하는 새엄마. 우리가 다음에 만날 인물이다.




글 김지명 jeem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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