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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인간 7] 희곡의 위기, 희곡의 존재방식 - 극작가의 미래

 

[아래는 김방옥의 연극론집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를 일부 연재한 것이다. 기획연재 ‘연극과 인간’은 김방옥의 연극론집을 통해서 한국 연극의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전반적인 한국 공연문화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함이다.]

도대체 관객이 연극을 외면하는 시대, 연극 자체가 사위어가는 이런 시대, 그나마 연출가가 극작의 위치까지를 넘보는 이런 시대에 희곡의 의미는 무엇인가? 극작가는 어떤 희곡을 써야 하는가?

지난 98년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연극비평가 마틴 에슬린은 강연을 통해 오늘의 연극의 위기의 하나가 지나치게 비대해진 연출의 위치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오늘의 연출이 독창성과 새로운 해석을 달성하기 위해 절망적인 사투를 벌이고 있으며, 그 결과 지나치게 난해해진 연극으로부터 관객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런 진단에는 희곡의 위기에 대한 경고가 담겨있다.

오늘날 연극에서 연출가가 누구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하게 됨으로써 생겨나는 위험성은 모든 연출가마다 처음부터 대본보다 우위에 서서 대본을 자기의 개인적인 비전을 투사할 수 있는 막연한 재료로서만 간주하고 있다는 데 있다는데 있다.

이 같은 새로운 해석이 과거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는 전적으로 정당하다. 특히 언제든지 항상 다르게 볼 수 있는 고전 작품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새로 쓰인 작품인데도-영원히 잊혀질 수 있을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이런 연출과정을 겪으면서 작가가 원래 말하려고 했던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긴 경우 이는 심각한 일이다.

한편 1987년 프랑스의 연극학자 파비스가 정리한 󰡔연극학 사전󰡕의 ‘희곡’이라는 항목은 다음과 같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희곡이라는 단어는 거의 다시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희곡은 이제, 단지 고전적 작품들이나 혹은 통속극을 위해 쓰인 ‘작품들’만을 가리킬 뿐이다. 현재 희곡보다는 텍스트 혹은 드라마적 몽타주라는 기호학적이고 구조적인 개념을 더 선호한다.

파비스에 의하면 오늘의 유럽문화에서 희곡이라는 단어는 거의 표면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럽의 두 연극학자의 관점이 다소 다르며 이는 영미권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대륙국가 사이의 차이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학자의 견해가 이 시대 희곡의 전반적 위상을 전달해주고 있음은 사실이며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은 현실화되기 시작하는 추세이다.

오늘의 우리 희곡은 사실상 이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 우선 (서구)전통적 의미의 희곡이 기댈 규범들을 잃어버린 채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 연출가 및 공연담당자들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새롭게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구연극사에서 희곡은 전통적으로 잘 짜인 구성에 많은 비중을 두고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이제 인과관계나 고정된 구조에 의한 극구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의 경우에도 80년대의 마당극의 붐에 의한 서사적 해체를 겪으며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의미의 고리를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으면서 일정한 형태를 가진 극구성은 만나기 힘들다. 희곡의 인물이나 언어도 해체적 관점들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인물들은 주체로서의 자리를 잃고 분열되거나 부유하거나 단순 기호로서 변질되고 있으며 언어 역시 부조리극이래 의사소통의 기능으로부터 멀어졌다.

공연과의 관계 속에서도 희곡은 자신을 다시 가다듬어야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오늘날 우리 희곡의 위치는 매우 위태로우며 전업극작가들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어려움에 처해있다. 이에 관한 현실적인 대응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후기 구조주의, 혹은 해체의 시대를 사는 오늘의 극작가는 또한 오늘의 경향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때로는 연극을 위한 하나의 화두로서, 무한한 공연적 독서와 해석을 위한 텍스트로서 자신을 열어야 하며 때로는 연극적 체험을 위해 잘게 자신을 부서뜨린 디딤돌로 남아야 할 수도 있다. 때로 희곡작가들은 ‘작품 뒤에서 기다리는 원천으로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작가의(특히 희곡작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훈장과 같은 미덕’이라는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극작가와 희곡은 많이 낮추고 많이 나눠줄수록 더 강하고 커진다는, 약한 것이 이긴다는 역설을 터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편집부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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