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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명의 희곡 읽기 1] 희곡 이야기

 

공연예술의 필수적인 요소로 꼽는 것이 무대, 배우, 관객 그리고 대본이다. 공연할 장소가 있어야 하고 거기서 공연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또 그걸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연이 되려면 공연할 “꺼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이야기 꺼리에는 대사와 지문, 해설을 실은 작가의 일반적인 희곡이 있는가 하면 몇 가지 단상에서 출발하여 즉흥적으로 장면을 만드는 공동창작의 형태도 있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뮤지컬, 오페라, 연극 모두 공연자들이 대본을 들고 연습을 시작한다. 이 대본에는 해당 작품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시대, 지역에 대한 문화와 경향을 함께 담고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 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나 지역,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번 호부터 새롭게 연재되는 희곡이야기에서는 희곡을 한 편씩 소개하면서 자칫 간과해 버리기 쉬운 대본 속 표현을 찾아 그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기로 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현장 스태프들이 작품을 대할 때 보다 선명한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바란다.

“그럼 절 오이디푸스라고 부르시죠.”

뮤지컬 <맘마미아> 2막에 젊은 페퍼가 추파를 던지자 부담을 느낀 타냐가 “난 네 엄마뻘이야”라고 한다. 이에 페퍼가 대답하길 “그럼 절 오이디푸스라고 부르시죠.” 여기에 포함된 의미를 알아챈 눈치 빠른 관객은 단번에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은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이 슬쩍 미소만 띄운다.

왜 오이디푸스라고 부르라는 건지?

오이디푸스..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지기는 심리학의 거장 프로이드가 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의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또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오이디푸스 속으로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그리스 시대 작가 소포클레스가 지은 <오이디푸스 왕(「희랍비극 1」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편/조우현 외 옮김/현암사, 1998)>이다. 극은 테베를 뒤덮은 돌림병의 재앙을 면하기 위해서는 선왕 라이어스를 죽인 자가 드러나야 한다는 신탁에서 시작한다. 라이어스 왕은 젊었을 때 엘리스의 펠로포스 왕의 궁궐로 망명하여 있었는데 거기서 아름다운 왕자 크리시포스를 사랑하여 소위 동성애를 범했기 때문에 펠로포스 왕의 저주를 받았다. 그래서 테베로 돌아온 라이어스에게는 자식을 낳아선 안 되며, 만약 이것을 어기면 그 아들 손에 죽으리라는 신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왕은 아내 이오카스테에게 접근하여 아들을 하나 얻었는데 그가 바로 오이디푸스였다. 이로 인해서 오이디푸스는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한다는 저주스런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이를 안 라이어스 왕은 신하에게 일러 오이디푸스를 죽이라고 했지만, 다른 이야기가 다 그렇듯이 신하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 발목을 줄로 꿰어 작은 배에 묶어 강물에 흘려보냈다.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의 뜻은 ‘퉁퉁 부은 발’이다. 오이디푸스는 이웃 나라 코린토스까지 이르고 목동이 발견하여 마침 자식이 없던 왕과 왕비에게 아이를 데려간다.
코리토스의 왕자(한번 왕자는 영원한 왕자?)로 자라난 오이디푸스가 어느 날 자신의 신탁을 들으러 갔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이 무시무시한 저주를 듣게 된다. 현재의 왕과 왕비가 친부모라고 생각한 오이디푸스는 당장 짐을 싸서 코린토스를 떠나 하필이면 테베로 오게 된다. 당시 테베는 스핑크스라는 반인반수의 괴물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수수께끼-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두 발로 다니는 것은 누구인가-를 내고 이를 맞히지 못하면 죽이는 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물었다면 쉽게 대답하여 영웅이 되었겠지만 이때만 해도 수수께끼가 널리 보급되지 않아 사람들의 아까운 목숨이 쉽게 날아가 버렸다. 오이디푸스도 스핑크스를 만나게 되었고 당당히 수수께끼의 정답(독자 여러분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을 말했다. 그 충격으로 스핑크스는 바위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고 한다.

의기양양해진 오이디푸스가 길을 가고 있었는데 삼거리에서 마차를 탄 일행과 마주치게 되었다. 이 마차 안에는 스핑크스의 저주를 풀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신전을 찾아가던 라이어스 왕이 타고 있었다. 서로 길을 비키라는 실랑이 끝에 싸움이 붙었고 오이디푸스는 그가 왕임을 알지 못한 채 일행을 죽이게 되었다. 이미 수수께끼를 풀어 영웅이 된 오이디푸스는 갑작스럽게 빈 왕의 자리를 잇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선왕이 죽으면 후왕이 선왕의 부인과 자식을 그대로 인수인계 받는 것이 관례였다. 그리하여 오이디푸스는 관례대로 왕비와 결혼한 것이 어머니와 결혼한 셈이 된 것이다. 그리고 2남 2녀(그 2남 2녀 중의 2녀가 이피게니아와 안티고네인데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소개한다)를 두고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해부터 돌림병의 재앙이 테베를 덮치게 되었고 이를 면하기 위해서 선왕의 살해자를 찾아야 한다는 신탁을 받게 되었다. 오이디푸스는 격하기 쉬운 기질이었지만 끝까지 자기의 힘을 신뢰하는 정의의 사나이였다. 자기 손에 죽은 사람이 바로 자기 아버지이자 선왕인 라이어스 왕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념으로 원인을 더듬어 가는 가운데 차츰 자기의 정체가 의심스럽게 되자, 당황하기 시작하지만 성급하면서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 기질은 그칠 줄 모르고 운명의 끝으로 자기 자신을 몰아간다. 급기야 모든 사건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음을 발견한 그는 “내가 두 눈을 뜨고 있었으나 진실을 보지 못했노라” 하면서 자신의 눈을 찌르고 유랑의 길을 떠난다.

이제 페퍼가 왜 어머니뻘 되는 여인을 사모하는 자신을 “오이디푸스”라고 부르라 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이처럼 오이디푸스는 마치 일반 명사처럼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현대의 많은 작가들이 기존의 오이디푸스 이야기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기도 한다. 일례로 몇 년 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 적이 있는 프랑스 페미니즘 작가 엘렌 식수의 <오이디푸스의 이름>이 있다. 우리나라 작품 중에는 김아라의 <이디푸스와의 여행>, 김명화의 <오이디푸스, 그것은 인간> 등이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정신분석 이론의 하나로 아버지에게 저항하여 자기 어머니에 대한 부자연스런 성적 충동을 품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이드는 오이디푸스 신화가 바로 인간의 이런 성향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과 쌍벽을 이루는 것이 바로 엘렉트라 콤플렉스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의 지면을 빌어야겠다.




글 김지명 jeem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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