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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인간 4] 희곡의 위기, 희곡의 존재방식 - 희곡 전통의 미약한 축적

 

[아래는 김방옥의 연극론집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를 일부 연재한 것이다. 기획연재 ‘연극과 인간’은 김방옥의 연극론집을 통해서 한국 연극의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전반적인 한국 공연문화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함이다.]

오늘날 우리 희곡의 불안한 현주소는 무엇보다 우리 희곡전통의 취약함에서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미 구십 년을 넘어선 우리 근대극사를 뒤돌아볼 때 그 가장 큰 취약점으로 끊임없이 지적되어 온 것이 다름 아닌 희곡창작의 부실함이다. 항상 지적되듯이 우리의 연극전통에는 말과 몸짓으로 전승된 연희만이 존재할 뿐 문자로 정착된 희곡문학의 전통이 거의 부재했고 일제치하의 개화기 때부터 비로소 서구적 의미의 근대극이 일본을 거쳐 우리에게 소개되기 시작했다. 당시로서 이처럼 생경했던 희곡문학이 우리에게 이식되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따라서 뿌리가 깊지 못한 한국희곡은 일제시대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항상 자탄의 대상이 되어왔다.

예를 들어 한 평자는 1920년대 토월회 몰락의 원인을 첫째로 “유력한 희곡작가가 업는” 까닭으로 잡고 있으며 30년대에 평론가 임화는 당대 최고의 극작가인 유치진을 평하면서 “솔직히 말하거니와 그 작품들이 희곡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소설로 쓰여졌다면 조선문학의 최고 도달점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비꼬고 있다. 여석기는 ‘신극 60주년’을 기념하는 글에서 “한국연극이 극작가의 부재와 작품의 기근을 탓해 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고 한탄하면서 그 첫째 원인을 ‘빈약한 희곡문학의 전통’과 ‘강렬한 휴먼 인테레스트’의 결여를 꼽고있다. 한상철은 1980년대의 희곡을 되돌아보는 자리에서 “그러나 어제의 그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고전으로 남아 한국연극의 레퍼토리가 될 작품은 몇 편이나 될는지 저으기 의심스럽다”라고 쓰고 있다.

우리 연극사를 뒤돌아 볼 때 희곡이 제법 씌어지고 공연되고 주목을 받던 기간은 겨우 오십 년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도 극예술연구회가 활약하던 30년대나 사실주의로부터 다양하며 탄력있는 몸짓으로 벗어나려했던 70년대 정도가 우리 희곡의 황금기였을 것이다.

희곡사에 남을만한 우리 극작가들을 간추려 본다면 해방전의 김우진과 유치진과 함세덕, 해방공간의 오영진이나 김영수가 있고 해방후 5~60년대에는 서구근대적 사실주의적 희곡을 어느 정도 성숙시킨 차범석과 노경식이 있으며 이후 계속해서 같은 계열의 희곡을 쓴 작가로 윤조병, 하유상들이 있었다. 70년대는 전통에 대한 관심의 부활과 함께 서구의 비 재현적 비언어적 실험극이 소개된 시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숫자의 신선한 충격을 몰아온 극작가들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 계보에는 일찌감치 30년대에 채만식의 파격이 있었고 해방 직후에 잠시나마 시공을 재구성한 이용찬의 감각도 빠뜨릴 수 없다. 제 사의 벽을 깨뜨린 희극을 쓴 이근삼과 역시 모던한 감각의 희극을 쓴 박조열이 60년대부터 활동해왔으며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오태석, 이현화, 이강백, 윤대성, 기국서 들이 그나름으로 모방적 재현을 벗어나 연극이라는 형식과 무대를 의식한 다채로운 작품들을 써내기 시작한다. 또한 70년대는 소설가 최인훈이 소설대신 ‘희곡이라는 형식’을 ‘선택’해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희곡과 연극의 황금기도 잠깐, 80년대는 벌써 희곡의 운명에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시기였다. ‘마당’이라는 공간개념의 득세와 함께 프로쎄니엄 아치가 부서져 나갔고 인물, 구성, 대사에 있어 기존의 전통적(서구 근대적) 미덕 역시 외세 추종적인 구시대의 산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오늘의 관점에서 볼 때 마당극의 미학은 -브레히트를 들출 것도 없이-한국적일 뿐더러 매우 현대적이기도 하다. 다만 정치적 강박증과, 앙상한 도식 혹은 유형의 틀에 걸려 풍요롭게 그려진 인간과 극적인 긴장감과 상상력 풍부한 대사들을 만나기 힘들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나 이 상실의 아쉬움은 그 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우리는 아직 그 충분한 대안을 발견해내지 못하고 있다.

90년대의 정치적 허무는 단숨에 그 도식과 유형들 마저 녹여 증발시켜버렸고 광기의 강풍은 언어와 의미를 날려보내는 대신 감각적 스펙터클을 몰아왔다. 이윤택은 아마도 가장 90년대 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자 평론가 출신인 그는 화려한 시어와 선동적일 정도의 자극적인 관념적 수사를 구사한 극작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언어와 전통적 극구성을 무산시킬 정도의 강력한 스펙터클과 유희성을 무대에 도입하기도 했다. 이윤택의《오구》,《바보각시》,《허재비놀이》들은 그 희곡의 독자적 가치보다는 공연의 해체적이며 물리적 특성으로서 더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었다. 80년대의 전통적 유희성에 대한 실험을 지나 90년대를 맞은 오태석은《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여우와 사랑을》,《천년의 수인》,《코소보, 그리고 유랑》등에서 역설적으로 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백마강 달밤에》,《백구야 훨훨 나지마라》등에서 보듯이 그의 희곡은 자신의 현란한 연출작업을 위한 대본이라는 성격이 여전히 강하다. 김미도는 “그(오태석)의 연극에서 여전히 당혹감을 느끼는 관객이 있다면 스토리의 중요한 계기들은 순간적으로 지나가고 사이사이의 연극적 유희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같은 시기의 희곡들은 희곡을 표방하고 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전통적 의미의 희곡의 분열과 위기에 관해 스스로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70년대의 서구 실험극 및 80년대 마당극의 영향과 90년대의 회의적, 허무적 분위기에 의해 짜임새 있는 구성, 분명한 정체성을 지닌 인물, 전달력 있는 대사들은 많이 사라졌으며 인과성과 종결성 대신 다층성, 복수관점, 열린 구조, 비종결성 형이 나타나고 인물들도 성격화와 관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자의식에 초점을 맞춘 메타성 연극들이 희곡의 위기를 예고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95년 서울 연극제에서 피크에 달했는데 8편의 참가작 중 관심을 모았던《오이디푸스와의 여행》,《영월행 일기》,《구테타》,《지상최대의 패션쇼》등 네 작품이 이런 경향을 보였다. 김방옥은 “‘무엇을 말하느냐’ 보다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대한 관심은 연극적 형식에 대한 과잉된 자의식을 불러 많은 작품들이 극중극이라는 메타드라마적 미로에서 불필요하게 허우적거렸으며 때로는 그것 자체가 내용없는 연극의 연극적 전언을 대신하기도 했다”고 보았다. 한편 창작극과 번역극의 구분이 흐려지면서 서구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들이 좋은 국내 희곡의 부재를 대신하기도 했다. 오태석의《로미오와 줄리엣》, 이윤택의《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미친 리어》,《햄릿》등을 비롯해 90년대는 역사나 원작을 패러디한 작품들이 러시를 이룬 시기이기도 했다. 또 이시기에 30대의 젊은 연극인들이 대거 작품활동을 시작했는데 제한된 극장공간 사정하에서 짧은 작품들을 선호하는 관객의 기호에 맞추어 단막극이나 옴니버스 형식의 희곡들을 즐겨 무대화하기도 했다. <혜화동 일번지>, <연우소극장>, <한강> 소극장들을 중심으로 한 윤영선, 박상현, 박근형 등의 희곡쓰기-무대 만들기가 여기 속한다. 이런 작업들은 가뜩이나 감각에만 의존하는 연극들을 더욱 단편화시킨다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자료출처: 연극과 인간, 21세기를 여는 연극 몸·퍼포먼스·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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