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우리나라에서 공연되었던 걸출한 외래춤의 내한공연을 되짚어보는 《황희정의 타임캡슐》, 그 다섯 번째 시간이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에 내한했던 두 현대무용가의 엇갈린 행보에 대해 풀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현대무용가는 누구일까. 유럽에서의 피나 바우쉬와 미국의 마사 그레이엄? 전자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전폭적으로 사랑받는 안무가이고 후자는 무용인들이 가장 많이 답습한 테크닉의 창시자이다.
피나 바우쉬는 2000년 <카네이션>, 2003년 <마주르카 포고>, 2005년 <러프컷>, 2008년 <네페스>, 이렇게 모두 ‘LG아트센터’의 기획아래 성공적으로 내한하였으며 여러 번에 걸친 공연 동안 최고의 티켓 파워를 자랑하며 흥행 불패를 이루었다. 피나 바우쉬는 유럽식 표현주의 현대무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신표현주의라는 장르를 창시한 안무가이다. 사소한 일상행위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 감수성과 이상, 규범을 나타내는 신표현주의 안무법은 무용수들에게 각자 주제에 맞는 움직임을 짜오라고 한 후 그것을 선정하고 꼴라주처럼 편집하여 무대에 올리는 ‘손안대고 코푸는’ 안무법이다. <마주르카 포고>, <러프컷>, <네페스>는 피나 바우쉬가 연작하고 있는 도시 시리즈 중 일부로 그녀의 네임벨류를 이용해 문화수출을 하고픈 도시들의 앞 다툰 후원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로 인해 피나 바우쉬는 각 도시의 재정지원을 받아 안무가로서 뿐만 아니라 흥행전략가로서도 손색없는 행보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피나 바우쉬가 우리나라에 첫 내한한 것은 그것보다 훨씬 이전인 1979년 <봄의 제전>을 들고서였다.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봄의 제전>은 지금의 피나 바우쉬가 명성을 얻게 일조한 작품으로, 일찌감치 한창 뜨는 시기에 한국을 방문했지만 우리나라에서의 반응은 미미했다. 너무 앞서갔던 것일까. 이때는 피나 바우쉬가 지금의 작품세계를 갖춰 나가는 형성기였고 우리나라 관객들도 이 새롭고 독특한 안무가를 알아보는 안목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마사 그레이엄의 내한은 늦어도 한참 늦은감이 있었다. 70~80년대 현대무용은 곧 마사 그레이엄 테크닉이라는 의식이 형성될 정도로 우리나라 현대무용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이 안무가의 실제 한국 방문은 1990년에 이루어졌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원래는 1974년 첫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당시 육영수 여사의 피격사건 때문에 취소되었다고 한다. 이 비극 이후 무려 16년 만에 내한의 이루어졌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현대무용 기법의 유입과 이 획일적인 테크닉이 식상해질 시기였으니, 그저 널리 행해진 현대무용 기법의 원조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마사 그레이엄은 피나 바우쉬와는 정반대로 손가락 하나, 숨결 하나까지 모두 본인이 안무하며 본인이 주로 주역을 맡아 공연 전면에 나서기를 좋아했다. 그녀의 독선적이고 전제적인 성격은 안무법에도 드러나 긴장(contraction)과 이완(relaxation)으로 이루어지는 테크닉은 무용수에게 고통스럽고 혹독한 움직임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발레의 기계같이 정형화된 움직임에 반발하여 일어난 장르인 현대무용은 개인의 자유로운 사상과 움직임을 중시하며 출발했지만 미국의 마사 그레이엄의 현대무용은 발레만큼이나 정형화되고 체계화된 테크닉을 완성시키고 이야기구조로 작품 주제를 서술함으로써 미국식 현대무용이라는 아이러니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편 마사 그레이엄은 한국 방문 이듬해인 1991년, 찬란하게 빛나던 생을 마감하는데 조금만 늦었어도 국내에서 그녀를 만나지 못 할 뻔하였다.
영화 <그녀에게>를 보면 피나 바우쉬의 작품 <카페 밀러>가 우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이 스페인 영화의 감수성과 어우러지며 영화에 독특한 색채를 더해준다. 또 김윤진이 출연하여 더욱 유명해진 미국 드라마 <로스트(Lost)>에서는 극중 쉐넌이 마사 그레이엄 무용단 인턴쉽 합격 통보를 받고 뛸 듯이 기뻐하는 장면이 나온다. 금전적인 사정 때문에 가지 못하게 되자 매우 좋은 기회이므로 가도록 도와달라고 남동생에게 부탁도 한다. 이런 일례는 무용계 최초의 작품 저작권 관련 분쟁과 더불어 마사 그레이엄 사후에도 그녀의 무용센터가 여전히 건재함을 알려주며, 피나 바우쉬 또한 그 유명세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두 대가(大家)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런 한국과의 인연으로 한 결 더 친근하게 느껴지길 바란다.
글_황희정 jutte96@dreamwiz.com
사진_현재 내한공연 중인 피나바우쉬의 ‘네페스’, LG아트센터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평택아트센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성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