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6.8.27 목 10:30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황희정의 타임캡슐 4] 세계발레의 양대 산맥, 영국로열발레 VS 러시아 발레

 

20세기 우리나라에서 공연되었던 걸출한 외래춤의 내한공연을 되짚어보는 《황희정의 타임캡슐》, 그 네 번째 시간이다. 첫 시간에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에서 발레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10년 전쯤으로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20년 전인 80년대 이미 국내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내한 공연이 있었으니, 바로 영국로열발레단(The Royal Ballet)의 내한 공연이다.

78년, 83년, 87년, 95년 등 시간을 두고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진 영국로열발레단의 고전 레퍼토리 전막 내한공연은 작품의 질과 특히 관객동원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고 진정한 고전발레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영국로열발레단은 1931년 창단된 유서 깊은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깊은 역사만큼이나 잘 보존된 고전레퍼토리와 훌륭한 신작으로 유럽발레의 자존심을 현재에도 지켜나가고 있다. 무용수들의 테크닉 뿐 만 아니라 스텝들의 체계적인 무대 역할분담, 무용수를 위해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물리치료사, 화려한 의상의 볼거리 등은 역사 깊은 선진 발레단의 운영 노하우를 보여주었고, 우리나라 발레계에 큰 자극을 주었다. 특히 1983년에는 5월 17일부터 21일까지 5일에 걸쳐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잠자는 숲속의 미녀’,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무려 2만 5천명의 관객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 2만 5천명이라는 관객 수는 우리나라 1년 동안의 총 무용관객 수에 육박하는 기록으로 그들의 인기는 가히 광풍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그 동안 발레 공연을 보지 않던 새로운 관객이 이 공연을 관람하였다는 의미이며, 80년대 우리나라의 예술계에서도 작은 위상을 점하고 있던 무용계의 이 공연에 대한 각 문화계의 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80년대 한국이 로열발레의 매력에 젖어 있었다면 90년대는 러시아 발레의 공습이 시작된다. 구 소련이 폐쇄적이고 비밀주의적인 긴장정책을 유지하며 꽁꽁 숨겨놨던 러시아 발레의 모습은 1991년 냉전이 종식되고 철의 장막이 걷히며 베일을 벗고 세계무대로 진출하게 되었다. 바로 그 해 이루어진 1991년의 키로프 발레단을 시작으로 볼쇼이 발레단, 상트 빼쩨르부르크 발레단 등은 해마다 내한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서구인들 중에서도 긴 팔다리를 가진 북방계통의 러시아 무용수들은 팔다리를 높이 들어 수직적인 선을 강조하는 러시아 발레를 보여주었고 이는 기하학적 미의 극상이었다. 또 마리우스 프티파에 의해 완성된 3+1 기법(3번의 반복 후 변형)과 코르 드 발레, 파드두, 그랑 파드두, 바이레이션 같은 고전발레 양식을 전수받은 러시아 발레는 화려한 안무를 뽐내며 한국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큰 키와 앙상한 몸, 극단적으로 긴 팔다리를 중시하는 러시아 발레리나의 신체구조는 유럽발레보다 이국적으로 국내에 어필되었다. 우리나라 발레학도들의 러시아 유학은 이들이 보여준 발레수준이 기폭제가 되었을 것이다.

세계에는 앞에서 언급한 발레단 못지않게 파리오페라극장발레단, 슈트트가르트발레단,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등 훌륭한 무용단이 물론 있다. 이들 중 누가 가장 위대한 발레단이냐고 묻는 것은 딸기가 맛있냐, 바나나가 맛있냐와 같은 질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발레 관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전 한국에 인상 깊은 족적을 남긴 발레단을 꼽으라면 영국로열발레와 러시아발레가 될 것이다.


글_황희정 jutte96@dreamwiz.com
사진_영국로열발레단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테이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