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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정의 타임캡슐 3] 우리나라에서 현대무용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Ⅱ

 

정식으로 무용만을 위한 무대 위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출하여 우리나라 지식인과 예술인들에게 깊은 각인을 심어준 예술로서의 현대무용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지난 주 한국에 처음으로 현대무용을 가져온 이시이 바쿠의 첫 번째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 이야기다.

이시이 바쿠 내한공연의 충격
이시이 바쿠라는 일본인 무용가의 공연을 통해 우리나라 관객들은 서양 현대무용의 이론과 기법의 토대위에서 성립된 순수무용, 즉 일본 근대무용의 시초가 되는 ‘무용시’를 접했다. 일본에서의 무용시 운동은 전통적인 일본무용과 발레에 대한 반발로써, 애초 출발부터 그것들과 대척점에 놓여 있었다. 무용시는 기존의 전통적인 일본무용, 즉 가부키가 문학적 표현의 주체인 ‘인간의 말’에 종속되어 있는 것임을 직시하고 그것을 부정하여 ‘언어의 신체’를 중시, 그 자체를 표현의 주체로 삼아 시(詩)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언어를 투명한 동작언어로 표현하려는 시성(詩性)을 본질로 한 것으로 묵극적인 지시어가 아닌, 투명한 신체 움직임 그 자체를 신봉한 것이다.
이런 투명한 신체 움직임을 매개로한 순수 무용지향의 무용시 개척자가 바로 이시이 바쿠였다. 그는 무용의 동작훈련과 창작에 리드믹 방법론을 차용하였으며 1916년 자신의 공연에 ‘무용시’라는 타이틀을 걸고 공연하였다. 1922년 이시이 바쿠는 동경을 떠나 유럽 순회공연을 하며 베를린에서 마리 뷔그만의 공연을 보고 크게 감흥을 받았다. 그는 마리 뷔그만이 추구한 표현주의 춤 미학에 반영된 사회현실에 대한 과감한 수용을 보고 여러 가지 자각을 하였으며 이것은 작품 창작으로 이어졌다. 이후 인간의 삶에서 도출되는 내면세계의 다양함을 순수 움직임으로 창작하여 인기를 끌었으며, 안무된 작품들도 예술적 완성도를 인정받아 독자적인 춤 양식을 확립해 나갈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배경을 가진 이시이 바쿠는 1926년 3월 21일 경성공회당에서 외래 예술춤으로서 첫 공연을 가졌다. 그의 무용 발표회는 이시이 바쿠가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신문들은 그의 동향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지만 그의 공연이 준 의의는 무척이나 화려하다. 이시이 바쿠의 공연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올려진 본격적인 새로운 무대 무용이었다는 점과 우리 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템포와 구성면에서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는 점에서 공연의 흥행 여부를 떠나 관객에게 새로움과 충격을 춘 공연이었다. 또한 춤의 제목과 음악도 서양의 예술적 분위기를 자아냈으며 공연이 경성공회당이라는 일급무대에 오름으로써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이미 동요되고 있던 기존의 춤 관념을 예술의 영역으로 다룸으로써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공연방식도 본격적인 무대춤 공연으로서 그때까지는 드문 사례의 하나였던 유료관람 방식이었다는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시이 바쿠 공연에 대한 평가
무용계 일각에서는 이시이 바쿠를 근대무용의 개척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재고(再考)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당시 우리나라의 사회적 환경을 미루어 보았을 때 분명 문화적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속셈과 아울러 동화정책, 민족문화 말살의 3중 효과를 거두려는 이른바 의도적이며 정략적인 행동의 촉수(觸手)였을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그의 최초 공연은 일본인으로 구성된 공연으로 흥행 면에서도 실패하였으며, 공연을 소개하고 후원한 것도 일제신문인 『경성일보』뿐이었다. 『경성일보』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가 통감부 서기관 이토 스게타나(伊東祐侃:전(前)오사카 『아사히신문』주필)로 하여금 『한성신보(漢城新報)』와 『대동신보(大東新報)』를 합병시켜 1906년 9월 1일에 창간한 신문으로, 『대만일일신문(臺灣日日新聞)』, 『만주일일신문(滿洲日日新聞)』과 더불어 일관된 논조로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 조선에 대한 식민지정책을 대변하고 선전하는 기관지로서 일제 침략의 선봉 역할을 하였다. 이런 경성일보만이 이시이 바쿠의 한국 공연을 보도한 것은 우리나라를 문화적으로도 일제 식민화 시키려는 저의(底意)가 깔려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시이 바쿠의 여러 번에 걸친 공연으로 그의 문하에서 최승희, 조택원 등의 신무용가들이 배출되었고 이들의 영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 근대춤을 이야기할 때 그의 비중을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글_황희정 jutte96@dreamwiz.com
사진_정기공연을 앞둔 LDP 무용단의 ‘Sound Ex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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