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는 한국인 입상자가 없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이제는 수상자가 없는 것이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한국은 최근 몇 년간 로잔 콩쿠르 파이널 진출은 물론 그랑프리 수상까지 발레 강국으로 떠올랐다. 최근 10년간 한국 발레의 수준은 국내를 넘어 기량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 발레의 수준이 높아진지는 가시적으로 오래되지 않았으나 그 역사는 어느 덧 백년을 넘어가고 있다.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1896년 민영환을 비롯한 한국 대표단이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하여 키로프 발레를 관람한 것이 첫 대면이다. 일행 중 한명이었던 김득련의 감상에 따르면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가냘픈 소녀가 까치발을 하고 빙빙 돌며 뛰기도 하고 멎기도 하는데, 가녀린 소녀를 학대하다니 서양 신사들은 참으로 짐승 같은 자들이로다.”라고 하였다. 여성이 속살을 보이는 것을 금기시하던 당시 한국 유교사회에서 소녀가 어깨부위와 팔다리를 노출하고 춤을 추고 그것을 즐기는 서양 신사들을 보고 ‘학대’라 느낀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문화적 이질감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민영환 일행이 러시아에서 발레와의 첫 조우를 하였지만 국내에 발레가 소개된 것은 그보다 3년 뒤인 일이다.
일본의 한반도 장악에 대항하려 러시아의 원조가 필요했던 우리나라는 황제 대관식을 계기로 러시아 특사를 파견하였고, 민영환 일행은 세달 간에 걸친 끈질긴 협상 끝에 13명의 러시아 교관을 데리고 귀국하였다. 그리고 정동 언덕에 러시아 공사관이 세워진 직후인 1899년 베베르 공사부인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무도회에서 발레가 일반에 소개되었다. 당시 러시아 공사였던 베베르의 부인은 공사관에 넓은 무도실을 두어 한국의 고관들과 서울 주재 외교관들을 불러 춤을 추며 무도외교를 하였다. 여흥으로 한 쌍의 러시아 발레 무용수가 축음기 음악에 맞추어 ‘발끝춤’이라는 것으로 추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발레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 이상의 기록이 없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성 판윤이던 이채연, 미국 공사를 역임한 이하영 등 갓 쓰고 도포 입은 우리네 고관들이 이 무도회에 참석하여 무도와 여흥을 즐겼다고 하니, 어떤 부조화한 풍경이 벌어졌을지는 한 번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또 1917 혹은 1918년쯤에는 헬렌이라는 14~5세의 백인 러시아 소녀가 송로의 우미관에서 영화 상영 중, 막간에 하얀 옷을 입고 나비춤을 추었다고 한다. 양쪽 어깨에 커다란 날개를 달고 나와서 두 팔로 그것을 훨훨 저으며 흡사 나비가 나는 시늉을 하는 것으로, 하얀 튀튀를 입고 토슈즈도 신었다고 한다. 음악은 당시 유행하던 <불어라 봄바람!>이라는 아주 느린 템포의 군악에 맞춰 형형색색의 조악한 광선을 쏘아 효과를 내었지만 관객들은 몹시 감탄하였다고 한다. 비록 막간 공연이었지만 무대에서 이루어진 첫 발레공연이었으며 이 헬렌이라는 소녀는 이후에도 막간공연과 자선모금을 위한 무도회에서 몇 차례 다양한 서양춤을 선보였다.
처음에는 그 문화적 충격에 해괴망측하다고 느꼈을 발레는 이렇게 한국에 소개되었으며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렇게 발레 강국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시절의 이야기이다.
글_황희정 jutte96@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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