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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시대’ - 조용신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 강의 Ⅳ

 

지난 9월 27일 충무아트홀에서 조용신 씨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역사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이날 강의는 뮤지컬 연출가의 영역이 확립된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 말까지의 연출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알아보면서 진행됐다. 뮤지컬에서 연출가는 여러 가지 기초 장르를 상업적 목적에 맞게 잘 융합하여 하나의 상품을 만들고, 시장에 내놓았을 때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창작자와 배우, 앙상블 등 팀의 통합과 조절의 역할도 있다. 뮤지컬의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난 1970년대 초반은 연출가가 작품의 콘셉트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춰 작품을 만들어나가게 될 정도로 연출가의 위치가 확립되었다. 따라서 조용신 씨는 이 시기를 ‘연출가의 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다음은 그의 강의를 요약한 내용이다.

- 뮤지컬 연출가의 영역의 확립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 말까지 뮤지컬에서 연출가들은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윌리엄 길버트, 조지 아보트 등은 뮤지컬 연출가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며 더욱 구체화시키기도 했다. 특히 뮤지컬의 혼란기이자 뉴 뮤지컬(New Musical)의 사조가 등장했던 6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은 과거에 비해 연출가들의 새로운 해석과 시도, 안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때 대중음악이 록 음악으로 대체되고 브로드웨이 음악이 노쇠하게 받아들여지면서 뮤지컬은 변화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그리하여 록, 컬트, 댄스, 콘셉트 뮤지컬 등 그 장르가 더욱 다양해 졌다.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제롬 로빈스
댄서 출신의 안무가의 선구자적 인물인 제롬 로빈스는 안무와 연출의 일원화를 위해 노력했다. 제롬 로빈스는 ‘온 더 타운’, ‘킹 앤 아이’, ‘피터 팬’ 등의 안무로 기본기를 다졌으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통해 춤으로 스토리 텔링을 시도하였다. 그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통해 비극이라는 뮤지컬의 새로운 주제를 도입했으며 노래, 춤, 연기가 조화된 안무가 겸 연출가의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당시 ‘뮤직맨’에 밀려 빛을 발휘하지 못한 비운의 작품이지만 훗날 오히려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의 넘버 중 ‘America'는 손드하임이 작사가로 데뷔한 곡이기도 하다.

- 밥 파시, 뮤지컬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안무가
‘피핀’, ‘카바레’, ‘시카고’ 등을 만든 밥 파시는 20여 년간 기념기적인 안무를 했다. 그의 춤은 골반의 범위를 적게 쓰고 어깨를 구부린 동작의 특징이 있어서 그의 춤을 보면 누구나 밥 파시의 안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보더빌의 댄서 출신이었던 그는 배우의 화려한 개인기와 어두운 주제를 병치시켰으며, 앙상블들이 만드는 몸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관절을 꺾고, 근육을 많이 사용해야 했던 그의 안무는 배우들에게는 오히려 곤욕이기도 했다.
보더빌 스타일의 뮤지컬 ‘시카고’는 무대 사용의 한계를 딛고 다양한 연기와 드라마를 모두 포함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나가서인지 당시 ‘코러스 라인’에 묻혔지만 차후에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TV용 뮤지컬을 만들기도 했던 밥 파시는 TV, 광고, 영화의 연출을 겸한 전 방위적인 활동을 펼쳤다.

- 비극적 요소를 부각시킨 해롤드 프린스
뮤지컬의 스태프로 시작하여 연출가가 된 해롤드 프린스는 무대를 총괄하고 사로잡는 방법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비극적인 요소가 관객들이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뮤지컬에서 잘 사용하지 않았던 비극적인 요소를 즐겨 사용하였다.
스타보다는 유망한 신인을 차용했던 해롤드 프린스는 신인 발굴에 동물적 감각을 지녔으며, 흥행 보증 수표로 인정받아 연출가의 힘을 보여주었다. 사전에 콘셉트를 정한 후 크레이티브팀과 의견을 조율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조화로움이 잘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후배 연출가들이 변형하기 어려웠다고 전해진다.
해롤드 프린스는 1970년부터 1982년까지 스티븐 손드하임과 협업을 통해 ‘컴퍼니’, ‘스위니 토드’, ‘Merrily We Roll Along'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 이후 손드하임과 결별한 해롤드 프린스는 1979년부터 1986년까지 앤드류 로이스 웨버와 함께 ‘에비타’, ‘오페라의 유령’을 만들었다. 1966년부터 1993년까지는 존칸더, 프레드 엡 콤비와의  협업을 통해 ‘카바레’, ‘거미여인의 키스’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카바레’에서 당시 시대를 풍자하기도 했다. 또한 ‘카바레’와 ‘컴퍼니’를 통해 뉴 뮤지컬과 콘셉트 뮤지컬을 확립시켜 나갔다.

- 송 앤 댄스 맨 ‘타미 튠’
2m의 장신인 타미 튠은 조지 엠 코핸 이후 노래, 연기, 안무, 연출, 제작 등 다방면에서 활동을 보인 송 앤 댄스 맨이다. 그는 전통에 기반으로 한 작품을 새롭게 현대화 했으며, 연기, 안무, 연출 세 분야에서 모두 토니상을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다. 미국이 좋아하는 가볍고도 럭셔리한 분위기를 잘 살렸던 그는 ‘Nine', 'My One & Only', 'Grand Hotel', 'Will Rogers Follies', 'Grease' 등을 만들었다. 타미 튠은 1980년대 브로드웨이 연출가들의 영향이 줄어들 때에도 꿋꿋이 연출가의 길을 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려했던 브로드웨이 연출가들의 활동도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장기 흥행작이 부재했으며, 그 시기에 대가들이 활동을 중단하거나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뮤지컬의 침체로 인해 관광객조차 줄어버린 브로드웨이 거리는 ‘I Love NY'라는 광고를 제작하고 뮤지컬을 부흥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다음에 계속...  


김유리 기자 yuri40021@hanmail.net
(사진 : 도서출판 숲 ‘뮤지컬 스토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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