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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황금기’ - 조용신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 강의 Ⅲ

 

9월 19일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조용신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에 대한 강의는 ‘뮤지컬의 황금기’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졌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1943년~1960년대 후반은 오늘날의 뮤지컬의 기본인 북 뮤지컬(book musical)이 확립된 시기다. 이때에는 뮤지컬 음악이 대중음악과 동일시되면서 뮤지컬이 문화적 소통의 중심이 되었다. 당대 뛰어난 무대 예술가들은 뮤지컬계에 적극적으로 투신하였고 뮤지컬 공연의 다수가 영화화되기도 했다. 또한 1947년에 토니상이 제정되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 강의 세 번째 시간이었던 이날은 리처드 로저스, 오스카 해머스타인Ⅱ, 어빙 벌린, 콜 포터 등 뮤지컬의 황금기를 이루었던 거장들과 주요 작품들을 알아보고, 10개 정도의 영상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이해시켰다.
다음은 그의 강의를 요약한 내용이다.

- 왜 황금기인가?
1943년 시작으로 1960년대 후반까지를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황금기라고 한다. 남북전쟁 이후로 브로드웨이 관광객이 크게 증가하여 뮤지컬 시장이 더욱 확대되었다. 작품 오클라호마를 시작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캐릭터의 진화와, 디바(Diva) 캐릭터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 리처드 로저스 & 오스카 해머스타인Ⅱ : 콤비 플레이 시대를 열다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Ⅱ는 뮤지컬 창작에 있어 콤비 플레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입증시킨 인물이다. 그들의 1943년 작 ‘오클라호마’는 뮤지컬 전성기의 문을 연 작품으로 꼽힌다. 기존 작품들이 오프닝 장면을 스펙터클로 시작했다면 ‘오클라호마’는 놀라울 정도로 담백하고 조용한 오프닝을 구성했으며, 연기와 음악과 대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대본과 가사를 먼저 만든 후 음악 작업을 한 이 작품은 음악이 없이도 대본만으로도 완성도가 높았다. 향후 이들의 작업 형태는 뮤지컬계에 정착되어갔다.
주요 작품은 남태평양, 왕과 나, 나와 줄리엣, 파이프 드림, 플라워 드럼송, 사운드 오브 뮤직을 들 수 있다.

- 어빙 벌린 : 디바(Diva) 캐릭터의 중요성
어빙 벌린은 디바의 캐릭터를 중요시하여 여배우 에델 머만을 단독으로 세우는 일이 많았다. 그는 ‘애니여 총을 들어라’, ‘마담이라 불러요’ 등의 작품을 창작했으며, 디바의 캐릭터를 내세운 공연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인기를 모았다.

- 콜 포터 : 대중음악의 기본 형식을 세우다.
대중음악의 기본적인 AABA 형식을 사용한 콜 포터는 코믹하면서도 미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히트작들을 내놓았다. 가사의 뜻 보다는 라임을 중요시 하여, 드라마적인 완성도 대신에 시적인 가사와 코믹한 에피소드를 넣었다. 대표작으로는 ‘현실을 보자!’, ‘키스 미 케이트’, ‘캉캉’ 등이 있다.

- 프랭크 뢰써 : 뉴욕 스토리의 대표 주자
브루클린 태생의 프랭크 뢰써는 소재 면에서 뉴욕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려고 했다. 그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대표작은 ‘아가씨와 건달들’, ‘가장 행복한 친구’, ‘노력하지 않고 출세하는 법’ 등이 있다.

- 리차드 아들러 & 제리 로스
이들은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몇 작품만으로도 후대에 널리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다. 그들은 밥 포시의 안무 데뷔작이기도 한 1954년 작 ‘파자마 게임’에서 공장의 노조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소재 확장에 기여했다. 또 ‘빌어먹을 양키스’라는 1955년 작품에서는 프로야구라는 현대적인 소재에 파우스트와 오디세이의 모티브를 패러디하여 기발함이 돋보이는 활동을 펼쳤다.

- 메리디스 윌슨 : 랩(Rap)을 도입하다
메리디스 윌슨은 1957년 작품 ‘뮤직 맨’에서 현재 젊은 작곡가들이 시도하는 음악을 이때에 모두 사용했다. 비트를 자유자재로 바꾸면서도 발음을 똑똑히 하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랩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아카펠라와 가스펠을 뮤지컬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행진곡 스타일을 추구하던 그는 유럽의 왈츠와 민요를 관악기 중심으로 심플하게 편곡한 작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 스타일은 어울리는 작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대중화 되지는 못했다.

- 알란 제이 러너 & 프레데릭 로위
이들은 유럽 출신으로 음악도 좀 더 클래식하다. 주제도 미국인과 유럽인들의 충돌과 화해 등을 다루었다. 대표작으로는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1956년 작 ‘마이 페어 레이디’가 있다.

- 레너드 번스타인 : 뮤지컬과 클래식의 결합
레너드 번스타인은 조지 거쉰부터 이어져 온 뉴욕적인 것을 연장시키고자 했다. 그의 1944년 작 ‘온 더 타운’은 뉴욕에 정박한 군함의 세 선원이 뉴욕을 관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온 더 타운’은 이 시기 사람들이 실제적인 것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세트가 아닌 뉴욕 거리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원더풀 타운’, ‘캉디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등이 있다.

- ‘황금기’의 쇠퇴 그 이후
1960대 말 이후 뮤지컬의 황금기는 서서히 막을 내렸다. 하지만 뮤지컬의 막이 내린 것은 아니다. 장르의 다변화로 인해 대중들이 관심사가 더 이상 뮤지컬에만 머무르지 않게 된 것이다. 황금기 이후의 뮤지컬은 TV, 록 콘서트, 각종 레저 산업과의 경쟁을 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또한 세계의 공연 장르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


김유리 기자 yuri40021@hanmail.net
(사진 : 도서출판 숲 ‘뮤지컬 스토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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