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1.2.25 목 13:00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쇼비즈니스의 새벽’ - 조용신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역사Ⅰ

 

지난 6일부터 충무아트홀에서 뮤지컬 칼럼니스트 조용신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역사’에 관한 강의가 펼쳐졌다.
첫 날 '쇼비즈니스의 새벽’이라는 주제로 19C말부터 20C초까지의 영국 뮤직홀, 버라이어티, 민스트럴, 보더빌, 벌레스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강의는 다양한 영상과 함께 이루어졌다. 준비된 영상은 ‘주디 갈란드’의 어릴 적 무대, 브로드웨이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속에 나타난 뮤지컬 역사 등으로 쉽고 빠른 이해를 도왔다.  
총 7회에 걸쳐 이루어질 이 강의는 한 세기에 걸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다음은 그의 강의를 요약한 내용이다.

- 유럽 뮤지컬의 등장, 영국의 뮤직홀(The British Music Hall)
산업혁명 이후로 신흥 중산층의 등장으로 소비 계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상업적 쇼(Show Business)가 싹트게 되었다. 이때에는 영국의 뮤직홀이 인기가 많았는데 초기에는 극장 식당의 구조를 띄었다. 이는 좌석이 서로의 얼굴을 향하고 있어 공연에 집중하기 보다는 식사 등 타 여흥에 더 집중하게 되는 구조였으며, 스토리보다는 짤막한 에피소드 여러 개를 묶어서 보여주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극장의 등장은 식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영국 뮤지컬의 발전을 이루게 했다.    
귀족중심의 오페라가 대중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쇼 비즈니스는 점점 변화를 맞게 된다. 좌석은 무대가 아닌 상대방의 얼굴을 향하게 되었고, 스펙터클한 서커스, 마술, 묘기 등 버라이어티(Variety)가 발생하게 되었다. 내용면에서도 클래식 오페라를 패러디 하는 등의 코믹한 플롯으로, 노래 중심에서 대사와 노래가 혼합된 형태로 변해갔다. 대표적인 작품인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는 뉴욕 브로드웨이가 조성될 무렵 가장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영국의 뮤지컬은 귀족 중심의 전통을 탈피하여 대중을 위한 예술로 발돋움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 미국 버라이어티(Variety)의 부상
진정한 뮤지컬의 시작은 미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상업적인 숙제를 위해 끊임없는 고민을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뮤지컬은 자국민 대부분이 이민자였기 때문에 각국의 문화를 모두 파악해야 하는 등 어떻게 하면 돈 되는 공연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치밀한 연구를 했다. 관객층은 주로 중장년 남성 중심으로 뉴욕 다운타운의 유흥가인 보워리(Bowery) 거리를 중심으로 극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마구간, 경마장, 홍등가가 공존하는 거리로 지금의 브로드웨이와는 거리가 좀 멀다. 미국 초기의 버라이어티는 저글링, 슬랩스틱, 동물이 등장하여 관객들이 졸리지 않을 잡다한 쇼를 모은 것이다.

- 건전한 보더빌(Vaudeville)의 시대
미국의 1880년부터 1930년대까지 보더빌 또는 보드빌 시대라 부른다. 이는 건전한 버라이어티가 공연되어진 시대다. 버라이어티는 서커스 등의 잡다한 것으로 구성된 반면 보더빌은 현재의 뮤지컬과 비슷한 특징이 있다. 이때의 극장들은 남성 노동자가 주를 이루는 관객층을 가족 단위로 확장시키기 위해 건전한 극을 만들고자 했다. 이는 공연에 대한 규제가 심했던 당시에 극장 측 스트레스 해소의 한 방편이 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노래와 춤과 연기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배우를 필요로 했다. 이는 현재 뮤지컬 배우의 덕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더빌은 가족 중심의 많은 관객을 유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쇠퇴를 맞는다. 그 첫 번째 원인은 라디오와 영상 매체의 등장이다. 영화계에서 보더빌을 영상화하였기 때문에 관객들은 직접 공연장에 가서 보더빌을 봐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두 번째 는 재즈의 발전에 그 원인을 둘 수 있다. 재즈라는 장르는 춤을 출 수 있는 음악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극장에 가는 발길을 무도회장으로 돌리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직접 춤을 배워 기본기를 갖췄기 때문에 스스로 극장 무대 위에서 춤추며 여가를 즐겼다.

- 민스트럴 쇼(Minstrel), 대중을 위한 뮤지컬의 시도  
민스트럴은 184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있었던 쇼로 흑인에 대한 편견을 희화화한 것이다. 이 시기에는 백인과 흑인이 함께 무대에 설 수 없었으므로 백인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여 흑인 역할을 소화했다. 이는 코미디와 성적인 코드가 결합된 벌레스크와 버라이어티가 결합된 형태였으며, 만담과 춤이 어우러진 단막 뮤지컬이 쇼에 포함되기도 했다.

- 벌레스크(Burlesque), 섹스와 코미디의 결합  
보더빌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벌레스크는 코미디와 섹스가 결합된 형태이다. 여배우의 섹시함을 강조했던 벌레스크는 극에서 서커스가 빠져나가고 아슬아슬한 의상의 여배우와 쇼걸로 비주얼을 채웠다. 이는 여배우의 매력을 물씬 드러나게 했으며, 극의 중심이 음악이라는 점에서 형식적으로 진보를 이루었다. 하지만 관객층은 거의 중산층의 남성이었고, 하나의 스토리로 된 뮤지컬은 아니었다. 이도 역시 보더빌과 비슷한 이유로 쇠퇴하였지만 라스베이거스의 무희 쇼, 스트립 클럽, 스탠딩 코미디라는 세 갈래로 뻗어나가 오늘날 대중문화의 줄기를 이루게 되었다.

- 스펙터클을 도입한 지그필드 폴리스
무대 세트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던 지그필드 폴리스는 제작자 플로렌즈 지그필드(Florenz Ziegfeld Jr.1867-1932)가 만든 시리즈 쇼이다. 그는 최고의 디자이너와 최고의 배우로 스펙터클함을 추구했다. 화려한 무대 콘셉트로 주로 유럽과 신화적인 소재를 차용하여 신선한 아이디어를 담아 A급 작곡가 및 스태프와 무희들을 고용해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하는 명품쇼를 만들었다. 드라마보다는 신화적인 모티브를 단순화 시켜 시리즈화 하여 대규모 엔터테인먼트로 부상했다. 하지만 지그필드는 끝까지 스펙터클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결국 드라마를 담아내지는 못했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뒤따르지 못해 쇠퇴를 맞게 되었지만 지금의 뮤지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뮤지컬의 전형적 흥행 공식의 확립
엑스트라버겐자(Extravaganzas)는 내용의 진행이나 등장인물이 크게 중요치 않고 노래와 드라마 간에 큰 연관이 없다. 내용은 환상 여행과 같은 주제의 볼거리를 주는 대형 쇼로 구성 되어 흥행을 주도했다. 이는 섹시함, 코미디, 스타 캐스팅을 추구한 벌레스크와 가족 중심의 건전한 특징을 가진 보더빌에 스펙터클한 무대효과가 주는 오락성을 모두 수용한 것이다. 브로드웨이는 엑스트라버겐자를 통해 뮤지컬의 전형적인 흥행 공식을 확립시키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


김유리 기자 yuri40021@hanmail.net
(사진 : 도서출판 숲 ‘뮤지컬 스토리’ 中)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테이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