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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이달의 문화인물 - 예술가 효명세자효명세자

 

2005년 11월 이달의 문화인물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 - 1830)

뛰어난 예술가였던 효명세자

효명세자는 왕 중심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세자였지만 정재(궁중무용)를 집대성하는 데 큰 공헌을 남겼다. 봄 꾀꼬리가 노는 것을 보고 창작했다는 춘앵전, 모란꽃을 들고 추는 대표적인 궁중무용 가인전목단, 고구려무, 향령무, 장생보연지무 등 정재를 집대성했다. 조선후기 정재에 황금기를 이뤘다는 공로로 문화관광부는 올해 11월의 문화인물로 효명세자를 선정했다.

효명세자는 왕 중심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세자였지만 정재(궁중무용)를 집대성하는 데 큰 공헌을 남겼다. 봄 꾀꼬리가 노는 것을 보고 창작했다는 춘앵전, 모란꽃을 들고 추는 대표적인 궁중무용 가인전목단, 고구려무, 향령무, 장생보연지무 등 정재를 집대성했다. 조선후기 정재에 황금기를 이뤘다는 공로로 문화관광부는 올해 11월의 문화인물로 효명세자를 선정했다.


11월21일-2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극장용에서 궁중무를 선보인다.


본 행사는 효명세자가 창작한 궁중정재를 그대로 재연함으로써 효명의 무용사적 중요성과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자부심을 고취하는데 그 의의를 둔다.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한 3년여 동안 매해 궁중연희가 열렸는데 그중 순조 29년 기축년(1829)에 행해진 진찬은 숙황후의 보령 40세를 축하와 순조가 등극한지 30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하기 위해 열린 궁중연희로 병약한 부왕과 노후한 숙황후의 건강과 안녕을 기리기 위해 효명세자가 새로이 예제한 정재를 찾아볼 수 있다.
이때 효명세자의 창작정재로 행하여진 만수무(萬壽舞), 춘앵전(春鶯囀), 박접무(撲蝶舞),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 무산향(舞山香),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을 무대 위에서 재연하고자 한다.


김말복(이화여대 교수, 한국무용예술학회 회장)

효명세자는 역대 국왕 중에 가장 예술적 문학적 조예가 깊고 뛰어났으며 무엇보다도 춤을 사랑한 왕이었다. 효명세자는 조선 제 23대 왕인 순조(純祖) 9년 8월 9일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의 제 1자로 태어나 순조 12년(1812년) 4세에 책봉되었으며 순조 27년 2월 18일부터 30년 5월 6일 급서하기 전까지 약 3년 3개월 동안 대리청정을 하였다. 그는 실제 왕위에 오르지는 못하였지만 대리청정기간 동안 아버지 순조의 정치적 염원을 거의 가시화하는 탁월한 정치적 역량을 증명해보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방대한 저술들이 왕들의 저술들만 기록되는 『열성어제(列聖御製)』로 편찬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가 실질적으로 국왕이었다고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짧은 통치기간에도 불구하고 전례없이 화려한 궁중잔치들을 벌이면서 궁중춤의 창사와 가사를 직접 짓고 전체 레파토리를 선정, 기획하고 직접 주관하는 등의 일련의 조처에서 보인 그의 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참여는 그가 궁중의식과 춤을 왕권 강화를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수단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대리청정을 통해 정치개혁을 시도하고자 효명은 왕실의 위엄을 보이기 위한 가시적인 조처로 여러 차례의 큰 궁중 연희를 개최하였다. 1827년과 1928년 그리고 1929년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대규모 연희를 열어 국가적인 행사를 개최한다. 가장 먼저 왕실행사로 ‘자경전진작의(慈慶殿進爵儀)’로 순조 내외에게 존호를 올리고 그와 함께 대규모의 국가적인 행사를 벌인 것은 국왕의 권위를 강화하고자하는 가시적인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어 1928년에는 순조비 순원왕후의 보령 40세를 기념하여 ‘무자진작의(戊子進爵儀)’를 열었으며 1829년에는 순조가 40세가 되는 동시에 재위 3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기축진찬의(己丑進饌儀)’를 열었다. 1829년의 진찬의를 거행할 때는 진찬행사를 총괄하는 진찬소의 당상에 김조순에 맞섰던 박종경의 아들을 임명하여 안동 김씨 세력을 견제하고 강력한 왕권 회복을 통한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다.
그리고 궁중 연향에서 쓰이는 악장(樂章)과 치사(致詞)들은 전통적으로 당대 문임(文任)들에 의해 창작되었는데 효성이 지극하고 부왕 순조에 대한 경외감 또한 남달랐던 효명은 궁중 연향에 쓰일 악장과 가사들을 자신이 직접 창작하고 써서 ‘예제(睿製)’하였을 뿐 아니라 연향에서 추어질 궁중춤의 단자들을 직접 고르고 1828년 진작과 1829년 진찬 등을 친히 관장하였다. 여러 궁중 의식을 주도하면서 정재무(呈才舞)를 창작하게 하고 규모를 더욱 화려하게 하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정재들도 화려하게 채색하게 하였으며 전통적인 악장을 버리고 자신이 창작한 다수의 한문 창사로 바꾸어 올렸다. 궁중연향에 쓰일 궁중춤을 위해 그는 20여종의 궁중 정재들을 새롭게 직접 예제하였을 뿐 아니라 이제까지 전해 내려오던 다수의 정재들의 가사와 내용을 한층 격조있게 다듬어 다시 재창작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이 대리청정한 3년여의 짧은 시기를 통하여 조선 궁중 정재의 수준을 정점으로 끌어올려 정재를 왕궁문화의 꽃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조선조 궁중 정재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효명이 직접 창작한 정재의 정확한 숫자에 관하여는 학자에 따라 다른 의견들이 있지마는 그가 자신의 대리청정기간 동안에 창작한 정재의 수는 30여 편에 조금 못 미친다. 이는 조선조 말까지 전해지는 정재의 수가 50여종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효명의 조선조 궁중 무용발전에 미친 영향은 가히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그는 「고구려무(高句麗舞)」처럼 중국 문헌들에 이름만 남아있고 그 실체가 전해지지 않는 춤들을 재창작하여 되살려 내고, 「사선무(四仙舞)」처럼 신라시대 사선으로 불린 화랑들의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이름만 전해오던 춤들을 모두 자신의 신작(新作)으로 되살려 내었을 뿐 아니라 전대로부터 전승되어오던 정재들도 다시금 화려하게 채색하고 무원들의 수도 늘려 규모를 확대하여 웅장하고 화려한 대규모의 연희에 적합한 정재의 성격을 만들었다. 그리고 중국의 문헌에서 전거한 당악정재의 경우도 향악화하여 종래 당악정재(唐樂呈才)와 향악정재(鄕樂呈才)간에 있었던 형식적 그리고 내용적인 차이를 불식시켰다. 이는 단지 중국에서 유래한 당악적 요소를 정치적으로 제거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춤이 중심이 되는 향악 정재의 예술적인 장점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진 결과라 생각한다. 그리고 조선조 초기의 정재들이 왕권 창업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도구로 쓰이던 정치적 색채를 퇴색시키고 효명의 문학작품 세계가 지녔던 자연대상과 사물들을 본 뒤의 감흥을 춤으로 묘사하거나 자연의 풍경과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는 춤 그리고 이제까지 궁중정재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독무 형태의 춤도 등장하며, 창사없이 전문적인 기교를 선보이고 시각적인 흥겨움을 강조하는 스펙타클한 성격의 정재도 늘어나 궁중 춤의 주제와 소재가 다양해지고 표현방식과 춤 형식 역시 다양해져서 그 예술적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 나아가 공연 구성에 있어서도 향악 정재의 비율을 당악정재에 비하여 월등히 높이고 조선적인 주제를 들여오는 등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춤에 있어서의 진경시대를 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가 조선조 그리고 나아가 우리나라 무용문화 발전에 기여한 바는 그의 짧은 통치기간을 고려해 본다면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할 가히 전무후무한 업적이라 하겠다. 그렇기에 효명세자와 같은 성군의 자질을 갖추고 뛰어난 예술적 안목을 지닌 왕의 애석한 죽음은 우리나라를 위해 매우 불행한 손실이었다. 그가 만수를 누려 오랫동안 집정하였다면 조선조의 말년은 오늘날과는 사뭇 달랐으리라 생각한다.

효명세자가 예제한 궁중정재 목록:

「춘앵전(春鶯囀)」,「무고(舞鼓)」, 「아박(牙拍)」,「무애(無㝵)」,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 「최화무(催花舞)」, 「보상무(寶相舞)」, 「경풍도(慶豐圖)」,「 만수무(萬壽舞)」, 「망선문(望仙門)」, 「무산향(舞山香)」, 「박접무(撲蝶舞)」, 「사선무(四仙舞)」,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 「영지무(影池舞)」,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 「제수창(帝壽昌)」, 「첩승무(疊勝舞)」, 「춘대옥촉(春臺玉燭)」, 「공막무(公莫舞)」, 「헌천화(獻天花)」, 「고구려무(高句麗舞)」, 「연화무(蓮花舞)」, 「춘광호(春光好)」,「 침향춘(沈香春)」, 「향령무(響鈴舞)」

효명세자의 연향의식용 작품집: 『예제(睿製)』

효명세자의 문집 및 저술: 『경헌시초(敬軒詩抄)』, 『학석집(鶴石集)』, 『경헌집(敬軒集)』, 『담여헌시집(淡如軒詩集)』, 『열성어제(列 聖御製)』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5년 9월 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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