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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에 관한 담론

 

▷ 시

▲담벼락 사내

오래된 담벼락을 지날 때는 조심해야한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내는 얼핏 찌든 세월의 오줌자국이나 부식된 시간이 만들어놓은 얼룩처럼도 보이지만 항상 그의 눈이 담벼락에 박혀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혹시 쫒기 던 사람이 담벼락 근처 그늘 속으로 휙 사라져버렸다면 일단 사내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언젠가 취객 하나가 고궁의 어둠 속을 지나다 그의 그림자가 담벼락에 드리워지는 순간 사내에게 덜미를 잡힌 적이 있다 때마침 불어 닥친 비바람에 취객은 고장 난 우산처럼 담벼락을 따라 굴러다녔다 사람들은 그것이 날개가 꺽 인 커다란 박쥐인 줄 알았다고 증언했다 몸만 빠져나가 사라진 옷을 발견한 건 다음 날이었다 옷은 아직 온전히 몸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담벼락 사내가 담벼락 속으로 취객을 끌고 들어갔다는 사실을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며칠 동안 몸서리치며 담벼락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어느 밤 으슥한 담벼락에 기대 키스를 하다 문득 사라진 젊은 사내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하다 밀가루 반죽처럼 물렁물렁해진 미처 사라지지 않은 애인의 손 하나를 부여안고 남은 여인은 담벼락 앞에서 오래 울었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오래된 담벼락을 지날 때는 조심해야한다 자신의 그림자가 구겨지지 않도록 아무도 실제로 본 사람은 없지만 오늘도 담벼락엔 껌 딱지처럼 달라붙어 사내 하나가 그의 주민을 물색 중이다

- 김 근




▷ 담론
▲담벼락은 도시공간의 어두운 이미지와 불안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늘 스쳐가는 일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도시의 담벼락은 욕망의 노출과 무의식의 우회작용이 가장 왕성하게 일어난 곳이다. 노오란 참외의 하루를 파는 과일가게 김씨, 삶의 주름을 펴는 세탁소 이씨, 박스를 정리하는 우진 수퍼 박씨, 갓 굽은 빵을 고르는 바케트빵집의 강씨 등 담벼락을 끼고 생산되는 골목길의 아침은 분주하고 키 낮은 것들의 일상들이 베여있다. 하지만 도시공간 속에 밤의 담벼락은 일상의 일탈과 스산한 불안이 항상 목덜미를 덮칠 듯 다가온다. 공안정국 속에 담벼락은 실종, 억압, 탄압, 체포, 납치가 그림자처럼 달라붙는다. 이렇듯 도시 공간속의 담벼락의 일상은 양면성이 공존에 있다.

담벼락은 공간의 경계이다. 건물과 건물의 경계, 길과 길의 경계이다. 벽이 내재된 자아의 경계라면 담벼락은 사회적 관계의 경계이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에 고기가 가장 많고 만남과 만남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곳에 가장 많은 삶의 에너지가 숨어 있듯이 담벼락 속에 우리들의 일상의 생산이 가장 왕성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도시문명의 담벼락과 농촌문화의 담벼락은 반대적인 측면이 있다. 도시의 담벼락이 불안과 스산함이라면 농촌의 담벼락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따뜻한 상징의 공간이다. 도시 공간에서는 담벼락이 길을 생산한다면 농촌에서는 나무, 풀, 물, 대지가 길을 생산한다. 농촌의 담벼락은 벽을 타고 오르며 하얀 이를 드러내는 오이꽃, 키 높이를 재며 담 너머 세계를 동경하는 옥수수잎, 바람 불 때 마다 쏠리는 지푸라기가 있다. 겨울이면 배꼽마당 담벼락에 앉아 함안댁 계돈 탄 이야기, 젊은 날 사랑 이야기, 성공한 자식이야기 등이 모여 있는 곳이다.

편집부/객원기자 조성윤 sungyunid@hotmail.com



※ 비엠뉴스가(Bmnews)가 뉴스테이지(Newstage)로 2007년 7월 23일 개편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비엠뉴스(Bmnews)의 2006년 3월 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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